[Opinion] 코를 훌쩍, 가을이 왔나 보다 [사람]

요즘 이런 생각을 합니다.
글 입력 2019.10.14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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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부터 기관지가 안 좋다. 나에게 환절기를 알리는 것은 기온의 변화가 아닌 나의 몸 상태다. 몸이 괜히 으슬으슬 춥거나, 평소에 켜고 자던 전기 매트의 온도가 평소보다 미지근하게 느껴지면 나는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그리고 숨만 쉬었을 뿐인데 맑은 콧물이 주룩 흐를 때 마침내 확신한다. 아 계절이 지났구나.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테이블에 휴지를 쌓아두고 열심히 코를 틀어막고 있다. 이제는 슬슬 다른 사람의 눈치가 보인다. 하지만 집에 가면 나는 강아지를 끌어안고 매트 위에서 몸을 지지다가 잠들어 버릴 것이 분명하다.

 

 

 

자전거 타기 좋은 요즘


 

사실 잘 껴입고 다녀도 환절기만 되면 목이 붓고 콧물을 줄줄 흘리고 다니는 나지만, 이번 감기에 지대한 공을 세운 것이 있다.  바로 자전거다. 내가 살고 있는 안산은 다른 지역의 사람도 잘 알듯이 많은 공단이 들어서 있다. 그래서인지 도시를 계획할 때  도시 구석구석에 많은 공원을 만들어놨다. 2년 전 살던 동네(물론 이곳도 안산이다)는 집 주변에 있는 공원만 3개라서 강아지와 산책할 때마다 선택을 도와줄 척척박사님을 불러야만 했다. 이사 온 동네는 나름 안산의 중심지라서 전에 살던 곳만큼 공원이 많지는 않지만, 그전에 다니던 공원 세 개를 합친 것보다 더 큰 호수 공원이 집 근처에 있다.

 

스무 살에 재수를 하면서 이따금 차오르는 이유 모를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무작정 걷곤 했건 곳이기도 하다. 소속 집단이 없어 자기혐오에 쪄들어 있던 그때에 비해 비교적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호수 공원을 걷는다. 아무 생각 없이 가진 않지만 엄마의 자전거를 빌려 열심히 패달을 밟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나는 기계다. 기계니까

아무것도 느낄 필요 없다.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고

되뇌었다.

체내의 모든 기관이

강한 불만을 품고

반란의 기미를 보였다.

그런데 75km 부근에서

뭔가가 슥 하고 빠져 나갔다.

마치 돌벽을 빠져나가는 것처럼

저쪽으로 몸이 통과해 버렸다.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지금 무엇을 하는지,

그런 것조차 머릿속에서

대부분 사라졌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지만

이상하다는 것조차

느낄 수 없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한 바퀴를 도는데 걸어서 한 시간도 더 걸리는 공원을 질주하고 있으면 나를 집 밖으로 내몰았던 것들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열심히 뛰거나 걷는 사람들은 서서히 사라지고 마치 자전거와 한 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선선한 바람에 내 머리카락이 날리는 것도,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공기도 모두 마음에 든다. 저질인 내 체력에 맞춰 변속기를 돌리자면 내가 대단한 사이클 선수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웃는다. 자전거를 타며 듣고 있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며 아무튼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내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호수공원.jpg

 

 

이렇게 요즘 몇 주간 자전거에 중독 된 것 마냥 돈 주고 끊은 헬스장은 가지도 않고 자전거만 열심히 탔다. 살이 조금 빠지고, 나는 감기에 걸렸다. 결정적인 원인은 입을 벌리고 탔기 때문이다. 아무리 감기에 걸리지 않겠노라 옷을 따뜻하게 입고 나가면 뭐할까. 날 때부터 큰 편도선을 가지고 있던 내가 ‘아~~~’ 하고 쌩쌩 자전거를 타는 건 감기에 걸리겠다고 마중 나가는 행위일 뿐이다.

 

슬슬 이마에 열이 오르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내일은 마스크를 끼고 자전거를 탈까 하고 궁리한다. 이렇게 자전거 타기 좋은 계절을 집에서만 떠나보낼 순 없다.

 

 

 

오피니언 쓰기 어려운 요즘


 

에디터 활동을 시작할 때, 오피니언 주제를 정리해 놓은 리스트가 있다. 여섯 개 정도 미리 준비했기 때문에 한 달은 든든할 줄 알았다. 하지만 2주 만에 주제가 고갈되었다. 막상 써보니 일기 수준의 내용만 줄줄 써져 차마 기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에디터가 된 첫 달은 다른 에디터분들의 글을 열심히 읽었다. 이런 주제와 내용으로 글을 쓰시는구나라고 감탄하며 내가 앞으로 쓸 오피니언의 갈피를 잡았다.

 

더 많은 영감을 받고자 VOD 스트리밍 서비스를 구독했다. 집과 가까운 영화관도 자주 갔다. 영상매체에서 오피니언의 소재를 찾을 수 없을 땐 오랫동안 장바구니에 담겨있던 책들을 구매해서 읽곤 했다. 그리고 신나게 오피니언을 썼다.

 

하지만 지금은 약간 망설여진다.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 활동을 하며 나의 시야가 많이 넓어졌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몰랐던 좋은 책, 영화, 사람을 많이 알게 되었다. 에디터가 되지 않았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들도 요즘은 관심 있게 본다. 나보다 훨씬 생각이 깊고 풍부한 분들의 글을 많이 읽다 보니 문외한이었던 분야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고민.jpg

 

 

문제는 노트북과 마주한 ‘나’이다. 더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선뜻 첫 문장을 쓰기 힘들다. 어렵게 느껴져 읽지 않았던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명작이라 손꼽히는 영화를 괜히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사이에 나의 본질이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금세 그만둔다. 며칠 동안 머리를 싸매다가 겨우 몇 시간 만에 쓴 오피니언을 기고하기도 한다.

 

되게 별거 아닌 것 같은, 갑자기 느껴지는 이 압박이 싫지는 않다. 글 쓰는 과정이 괴로워졌지만 전보다 좋다. 더 많이 고민하고, 더 자주 글을 엎는다. 내가 견디지 못하는 것은, 그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 ‘고작’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오피니언은 나에 대해 써보기로 했다. 내가 표현하는 것이 전부고 나보다 더 잘 쓸 수 없는 소재인 나에 대해. 내가 요즘 이런 생각을 하고 이렇게 살고 있다고. 아무도 압박하지 않았지만 나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하는 지금, 훨씬 홀가분한 느낌이 든다.

 

 



[김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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