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to X] episode 6.

글 입력 2019.10.1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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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A to X

episode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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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은영

『불한당들의 모험』

 

 

언제나 모험 중인 사람들에게, 사랑과 실망이 그득한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좋은 말을 모아서 편지를 쓴다면 꼭 이럴 거라 생각했다. 떠오른 얼굴들에게 옮겨 적어 보낸다.

 

*

 

시인의 말

 

가을, 나직하게 옷 속으로 스며드는 햇살은 여전하구나

이곳에 온전히 돌아왔다는 사실에 눈물이 나

절름발이가 되었고

허리도 굽었지만

 

혀도 잘리지 않았고

발가락도 그대로이니

충분해

이십 번 절망해도 한 번 사랑할 수 있으니

 

프리패스,

이 제국의 프리패스를 쥐고 있었으나

돌아오지 못했지

바람 속 0.5그램 먼지 같은 이야기만 만든 채

 

때때로 구설을 자초했고 헛된 말들의 씁쓸함에 부끄러웠지만

아직도 정착이란 단어를 몰라서

사막의 아침에는 신발 속 전갈부터 털어내라는 말밖에 못 하지만

왜 그 바다에 와서 고래가 죽는지 아직도 모른다고 털어놓지만

 

그래, 우리 모두 가지고 있는

늦겨울 들불에 충실했을 뿐

두터워진 손껍질과 느린 발걸음으로 여기 돌아왔지만

많은 걸 태운 뒤

응시를 알게 됐지

 

언덕 끝까지 이어지는 길

돌 하나

모든 곳에 함께 있었던 하늘

 

그래서 지금, 여기 모두들

있어줘서

 

고마워

 

2012년 11월 

트렁크에 담아온 편지

 

*

 

비극의 첫 페이지가 무심하게 시작된다. 당신과 나는 너른 강을 끼고 서로를 부단히 쫓는다. 우리는 함께 냉랭한 세계와 맞서기도 하고 얼어붙은 세계를 와르르 녹여내기도 하며 작은 성공을 맛보지만.

 

그러나 내가 선 땅은 줄곧 꽝꽝 얼어붙어 있고 당신이 선 땅으로부터 멀어지거나 아득해지는 지경에 이른다. 당신에게로 향하는 항해는 언제나 난항을 겪고, 깊은 물 아래로부터 표면을 둥둥 떠다니는 죽은 사람들과 저 멀리서부터 불어오는 검은 폭풍. 그런 것은 극복할 수 없을 만큼 두렵다. 사랑과 실망이 그득한 하루다. 결국에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걸 깨달을 때쯤, 내 죄목은 관계의 방치. 강은 더 넓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직한 햇살을 믿고 이곳에 돌아왔음에 감동하며 절름발이가 되고 허리도 굽었지만 혀도 발가락도 그대로라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십 번 절망해도 한 번 사랑할 수 있다는 가느다란 진실을 말하는 사람.

 

*

 

관둬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때려치는 거 말고 다른 방법을 찾고 싶어졌다. 의심하는 대신 세계가 운영되는 가장 간단한 원리, 가령 꿀벌이 꿀을 모으는 루틴 같은 걸 믿고 싶다. 내가 속상해, 하고 말하면 엄마는 뭐가 속상해, 하고 말했고 아쉬울 거 없다고 했다. 그 말이 어떤 때는 야속하게 들렸고 어제와 오늘은 참 다행스럽게 들렸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게 뭔지, 뭘 태우며, 어떤 화력으로 지내는지도 영 모르겠지만 충실했을 뿐이라는 말을 믿고 싶다.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했더니, 친구는 그건 잘 모르겠다고 했다. 모두들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뎌냈는지 차마 가늠하기 민망해서 별다른 질문도 못 했지만 다들 여기에 돌아왔다는 걸 믿고 싶다.

 

그러면 안 때려치고 좀 더 해볼 만 하다. 물을 파르르 한소끔 끓이는 일처럼 시간이 지난다. 내가 시를 읽을 때 그는 밤거리를 걸었다고 했다. 우리는 같은 궤도를 끼고 돌고 있다. 같은 공간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우리가 빙글빙글 도는 일을 사랑스러워 차마 관두지 못하게 될 것이라 믿고 싶다. 우리가 응시하는 곳 끝에서 우연과 필연이 만나는 작은 점이 있다고 믿고 싶다.

 

너를 많이 생각했다는, 그의 말을 움켜쥐고 있다.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던 그 시간이 지나며 뭘 남기고 갔을까. 벌써 시월이 됐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자주 듣는다.

 

 



[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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