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는 목격자이자 승리자였다 - 전쟁의 목격자 [도서]

글 입력 2019.10.08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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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여성, 붙여보면 왠지 익숙하지 않은 낯선 관계의 단어들이다. 전쟁, 즉 병력에 의한 국가 간 싸움 속 전선에서 몸소 싸우며 목숨을 바친 병사들은 대부분 남성이었고 여성은 그들을 지원하는 존재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전쟁에 대한 기록, 혹은 전쟁 상황을 재현한 창작물에서 전선에서 싸우는 여성의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 전쟁은 언제나 여성의 영역과 동떨어진 것처럼 간주되었고 전쟁의 기록 및 재현 등 사후적인 개입에서도 여성은 배제되어 왔다.


“여자들이 전선 주위에서 뛰어다닐 만한 전쟁이 아니오.” 책의 주인공, 마거리트 히긴스 역시 비슷한 말을 들었다. 종군기자인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콩고내전, 베트남 전쟁 등 대규모 전쟁이 발발했을 때 직접 전선을 발로 뛰며 현장을 취재하고 소식을 알린 공로로 여성 최초 퓰리처상을 받았다. 전쟁 병사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면 마거리트 히긴스는 진실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전쟁의 민낯을 드러내기 위해 온몸으로 싸운 또 하나의 병사인 그에게마저, 사람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전쟁에의 참여를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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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목격자》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앙투아네트 메이가 마거리트 히긴스의 생애를 그의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와 증언을 바탕으로 펼쳐낸 전기 형식의 책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온갖 종류의 전쟁을 맞닥뜨려야 했다.

 

당시 ‘남성들의 세계’라고 불렸던 저널리즘 세계에 간신히 입성한 그는 기자가 된 후에도 여전히 편견과 싸워야 했다. 소식을 알아내는 것이 일의 단초가 되는 직업 특성상 그 매개체로 기능하는 ‘인맥’은 차별적인 카르텔을 공고히 구축했고 마거리트는 그에 소외되었다. 취재하고자 하는 전쟁 현장에도 쉽사리 나갈 수 없었다. 그는 뒤처져도 한참 뒤처진 출발선에서 시작해야 했다.


척박한 환경에도 그는 좌절하지 않고 오로지 기자로서의 사명에 집중했다. 국가 간 긴장감 있게 흐르는 정치적 흐름을 예리하게 읽어내고 이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는 신속함을 갖춰나갔다. 이미 다른 의미의 전쟁을 홍역처럼 치른 그는 전쟁이 무섭지 않았고, 전쟁을 취재로써 경험하고 싶다는 일념 하에 제2차 세계대전에 ‘트리뷴’의 런던 특파원으로 파견되면서 종군기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면 스스로 전쟁을 경험해보겠노라고, 그리하여 한 사람의 마음에 그토록 깊고 영원한 상처를 남긴 힘이 무엇인지 직접 알아내겠노라고 생각했다.”

 

- 110p

 


생동감 있는 현장 취재와 연이은 특종으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전쟁에서 포탄처럼 오가는 부정의의 실체에 직면하려 했던 그의 야심은 그에게 현실의 무거움을 일깨워주었다. 그는 전쟁 후 트럭에서 쏟아져 나오는 시체들을 보고 ‘도덕적 분노와 역겨움, 육체적인 반응은 뒤로’ 미룬 채 ‘정확하게 자신의 업무를 꾸역꾸역 수행했다.’ 아버지로부터 제1차 세계대전의 이야기를 전설처럼 들으며 환상에 부풀었던 어린아이는 사라지고 그 자리엔 끔찍한 참상에 직면한 ‘전쟁의 목격자’만이 남았다.

 

 

"그녀가 목격한 공포가 유토피아 사회를 약속했던 체제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다는 점이 더욱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것으로 꿈이 또 하나 죽었다."

 

- 167p

 


거듭되는 전쟁과 그에 따른 종군 활동은 계속해서 ‘그녀의 일부’를 죽였다. 공산주의에 대한 낙관을 품고 있었던 그는 폴란드 공산당의 테러리즘을 목격하고 또다시 자기 안의 전쟁과 마주해야 했다. 전쟁이 만약 각자가 주장하는 유토피아를 굽히지 못해 발생하는 것이라면, 그 역시도 또 하나의 전쟁을 치렀다고 할 수 있으리라.

 

객관적인 정보의 전달이라는 기자로서의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오랜 꿈을, 그리고 유토피아를 죽였다. ‘영원한 상처’가 될지도 모르는 전쟁이 할퀸 흔적을 그는 모른 체하지 않고 온 힘을 기울여 고통스러워함으로써 지면에 상처를 다시금 아로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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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죽이고, 더욱 진실에 가까운 자아를 만나는 과정을 통해 겹겹이 두터워진 객관성과 신뢰성만이 그의 장점은 아니었다. 그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특유의 민첩함으로 한국의 최초 총선거와 한국을 둘러싼 열강들의 세력다툼을 포착한 그는, 미국과 러시아의 충돌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탓에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한국이라는 나라의 분단에 주목했다. 결국 한국에 온 그는 곧 일어난 한국 전쟁의 최전선을 취재하게 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내려진 철수 명령을 당당히 기각시키며 맥아더 장군을 취재하고 인천상륙작전을 함께하기까지 한 그는 그러나 작전을 주도하고 정치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과 함께하지만은 않았다. 죽어가는 병사들의 절규를 들었고 잠시 통역을 해준 남한 소녀가 들려준 사소한 이야기를 기사에 실었다. 마거리트가 여러 의미의 전쟁에서 소외되었듯이 실제적 의미의 전쟁에서도 소외되는 이들이 있었고, 그는 그들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며 전쟁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했다.

 

베트남에서 일어난 승려의 분신자살로 백인 세계에서 베트남 내 불교에 대한 탄압 논란이 일자 그는 직접 베트남 승려를 찾아가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백인들의 평면적인 생각과 대치되는 의견을 발견하여 그간 종교적 차원에서 읽혔던 투쟁을 정치적 차원으로 확장시키는 데 성공한다. 마거리트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접근법으로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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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마거리트의 기자로서의 삶뿐 아니라 복잡한 개인사를 담아내며 실로 파란만장했던 그의 인생을 눈앞에 데려다 놓는다. 사회 구조적인 어려움뿐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서도 그는 거듭되는 시련을 맞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 무엇도 회피하지 않았다. 삶에 펼쳐지는 끝없는 전쟁을 그게 어떤 종류의 것이든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는 방식을 택한 그의 삶은 실패마저 낙천적인 것으로 정도다. 취재 현장에서 물린 벌레로 인해 감염된 병으로 생을 마감한 그는 삶의 끝자락까지 이기고 지기를 반복하는 자신과의 싸움을 피하지 않고 생애의 소임을 다했다.


“총에 맞을까 봐 걱정해서는

결코 기사를 따낼 수 없다”


전쟁은 그것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이 승리자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누구 하나를 굴복시키거나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되며, 본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전쟁이라는 악의 모순을 포착하고 실체를 드러내어 존재 자체를 무효화시키는 방향으로 성취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거리트 히긴스는 수많은 전쟁에 직면하고 그것을 고발함으로써 전쟁의 허구성을 알린 진정한 승리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에게서 이김의 의미를 담은 목격의 가치를 발견한다. 자신뿐 아니라 언론의 영향을 받는 수많은 사람의 삶에 펼쳐지는 전쟁의 실체를 회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맞닥뜨리기를 택한 그는 전쟁의 목격자이자, 진정한 의미의 승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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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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