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유리천장을 부순 여성 "전쟁의 목격자"

글 입력 2019.10.06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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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나 사상에서 다른 사람보다 앞선 이를 우리는 선구자라고 부른다. <전쟁의 목격자>는 그러한 선구자의 분투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마거리트 히긴스는 종군기자로서 가장 첨예했던 20세기 전쟁 곳곳을 누볐다. 제2차 세계대전, 한국 전쟁, 콩고 내전,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전쟁이 벌어진 현장에는 언제나 마거리트가 있었다. 동시에 차별과 편견 어린 시선도 줄곧 그를 따라다녔다. 여성과 전쟁터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선에서 퇴출 요구를 받고, 갖가지 루머에 휩싸이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마거리트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유리천장에 부딪힐 때마다 망설임 없이 두드리고 깨뜨렸다.


그의 주변 인물은 마거리트가 시대를 30년쯤 앞서간 여성이라고 평한다. 그런데 고작 그 정도일까. 그가 떠나고 50년이 훌쩍 지났지만, 나는 현실에서 마거리트만큼 야망이 들끓는 여성을 본 적이 드물다. 거기엔 나 역시 포함되어 있다. 그의 치열한 삶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가며 절로 자문하게 된다. 마거리트처럼 내 꿈과 목표에 절실하게 매달린 순간이 있었는지 말이다.

 

여성이 있어야 할 올바른 위치는 가정이라고 세뇌하던 시대에 순응하지 않던 마거리트 히긴스. 그는 평생을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열망을 품고 살았다. 이 불도저 같은 여성이 지닌 강건한 태도, 저항심, 자신을 향한 믿음은 현대 여성에게도 여전히 필요하다.

 

 

 

유리천장을 깬 여성, 마거리트 히긴스



 

"여성에게 야심이란 그 당시에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단어였어요. 경력이란 흠잡을 데 없는 남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노닥거리는 것에 불과했고요. 매기는 그 게임이 돌아가는 방식을 알지 못했죠. 그녀는 성심껏, 전력을 다했어요."

 

 

마거리트가 걷는 길은 대부분 최초의 연속이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컬럼비아 대학원 저널리즘 학과에 입학을 신청한다. 하지만 당시 여성에게 할당된 정원은 고작 11명뿐이다. 교육의 기회에서부터 여성을 공공연히 배제하던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마거리트 또한 외부 요인이 자신을 좌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는 인원수를 모두 채웠다는 거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학장을 설득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다음 단계는 여성을 채용하지 않는다던 <트리뷴>의 기자가 되는 일이다. 그는 이번에도 고지식하고 성차별주의자로 가득한 곳을 무장해제시킨다. 전쟁으로 차출된 남성의 빈자리를 메우겠다는 설득력이 먹힌 셈이다.


이는 남성 중심적인 언론계에 진정으로 여성을 위한 자리가 없었다는 의미다. 그가 남성 기자들 간의 연대 의식에서 소외당하는 일은 이미 예견된 사건이다. 그 점이 오히려 마거리트의 전의를 더욱 불태운다. 그는 일개미처럼 밤샘 노동을 자처하며 많은 양의 기사를 작성한다. 다하우 강제 수용소, 폴란드 공산당 테러리즘 등 특종 기사를 보도함으로써 실력을 입증해낸다. 그리고 노력의 결실은 베를린 지국장이라는 승진으로 맺어진다.


그러나 뛰어난 성과에도 불구하고 사내 정치에는 미숙하다는 이유로 좌천된다. 진짜 속내는 마거리트가 권력 지향적이고 남성과의 경쟁도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통념을 뒤흔드는 여성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거북한 존재다. 가정주부가 여성의 일로 여겨진 시대에서 그의 열정을 이해해줄 사람은 극소수였다.

 

무엇보다 그가 한국전쟁을 취재한 시기. 이 기간의 일화들은 투철한 직업 정신과 경쟁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거리트는 생사가 달린 급박한 상황에서도 타자기를 붙들고 특종 경쟁을 벌인다. 그에게는 죽음보다 특종을 놓치는 것이 더 공포였다. 그의 앞뒤 가리지 않는 성미가 표출될 때는 심각한 분위기에도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존경의 미소였다. 얼마나 드문 존재인가.

 

 

"왜 마거리트가 그처럼 악랄한 공격의 목표물이 된 거죠? 나는 처음에는 공포 때문이었을 거라고 봅니다. 그녀의 맹렬한 야심이 경쟁자들을 그들 자신도 딱히 즐기지 않는 자리로 몰아넣은 겁니다. 나중에는 질투 때문이었죠. 그녀가 성공했으니까요."

 


한국 전쟁 당시 그의 기사는 매일 <트리뷴>의 1면을 장식한다. 하지만 여성의 성취를 인정하기 어려웠던 남성 임원들은 복귀 명령을 내린다. 심지어 그를 대체할 연륜 있는 남성 특파원을 보내 심리적으로 고립시킨다. 마거리트는 늘 그랬듯이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총탄이 눈앞에서 교차하는 상황을 장병들과 함께하며 묵묵히 전쟁의 이면을 기사에 담는다. 결국 공로를 인정받아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 국제 보도 부문 수상자가 된다.


이렇듯 독보적인 마거리트는 항상 가십의 대상이었다. 인터뷰한 모든 남성과 잠자리한다는 악의적 루머가 소설의 소재로 쓰일 정도였다. 맥아더 장군과 동침하여 정보를 얻었다는 소문도 암암리에 퍼졌다. 물론 사실과 전혀 맞지 않았다.


여성의 성취를 깎아내리고 모욕하는 행동은 과거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다. 지금까지도 버젓이 성공한 여성을 공격하는 도구로 쓰인다. 일례로 전 UN 대사인 니키 헤일리가 출세를 위해 트럼프와 잠을 잤다는 낭설이 돈 게 불과 얼마 전이다. 여성을 동등한 동료로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성적 대상으로만 폄하하는 의식 때문에 벌어지는 참사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경쟁심 있고 과감하며, 그들을 뛰어넘는 능력이 있을 거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낡은 사고방식에서 조금도 진일보하지 않은 현재의 모습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걸 증명한다.


*


1950년대 미국 여성의 의무는 좋은 아내가 되는 것이다. 훌륭한 임무 수행에 따르는 규칙은 무려 10가지가 넘는다. 그중 몇 개를 추려보자면, 아내는 남편이 오기 전에 화장과 식사 준비를 마쳐야 한다. 불평은 금물이며 웃는 얼굴로 남편을 맞이해야 한다. 오로지 남편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여성의 숙명이었다.

 

그렇기에 가부장적 사회에 굴복하지 않고 공적 영역에서 마땅히 자신의 몫을 쟁취한 여성의 스토리는 언제나 새롭다. 싸우는 여성이 항상 존재했다는 점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여성 억압과 차별이 만연한 세상에서 앞으로도 싸울 일이 많을 나에게 적잖은 위안을 준다. 당신도 이 책을 펼쳐 먼저 투쟁한 여성의 인생을 돌아보기를. 그리고 용기를 얻길. 여성의 용기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테니.

 

 



[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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