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90년대 어바웃타임, 사랑의 블랙홀 [영화]

영화 사랑의 블랙홀을 본 후
글 입력 2019.10.03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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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거나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등 시간여행에 관해 다룬 영화는 너무나 많다.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벅찰 만큼 수 많은 영화에서 사용되었기에 어쩌면 진부한 소재이기도 하다. 그 중 최근에는 2013년에 개봉한 ‘어바웃타임’이 시간여행과 로맨스를 결합해 꾸준한 인기를 끌었다. 어수룩한 모습의 남자 주인공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사용해 사랑을 이루어가는 모습에 많은 관객들이 빠져들었다.

그러나 이 보다 훨씬 전인 1993년에 이미 시간여행 로맨스가 있었다. 만약 어바웃타임을 재미있게 보았던 사람이라면, 비슷한 듯 다른 이 로맨스 영화에도 주목하길 바란다. 바로 '사랑의 블랙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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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 통보관 필 코너스는 매년 2월 2일에 열리는 성촉절 취재를 위해 펑추니아 마을로 간다. 그는 아주 부정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의 주변사람들은 물론 함께 취재를 떠난 PD 리타 또한 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여느 때처럼 툴툴거리며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때, 폭설로 인해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없어 다시 펑추니아로 돌아오게 된다. 그렇게 다시 같은 호텔에서 하루 밤을 보낸 뒤 다음 날, 필은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다.

어제와 같은 라디오 방송, 같은 사람들의 행동, 심지어 성촉절 축제마저 다시 열리고 있다. 바로 전날인 2월 2일로 돌아와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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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면 매일 2월 2일 아침 6시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된 필은 당황스러워 하지만 그도 잠시, 이를 기회 삼아 여러 가지 일들을 벌이기 시작한다. 정보를 알아내 여자를 꼬시고, 돈을 훔치기도 하고, 성촉절 축제 취재를 망쳐버리기도 한다.

그러던 와중 그는 PD 리타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매진하기 시작한다. 반복되는 하루하루 속에서 그녀에 대한 정보를 알아낸다. 그렇게 알아낸 리타의 취향을 이용해 그녀에게 꼭 맞는 ‘맞춤형 남자’인 척 다가가지만, 좋게 흘러가던 분위기 속에서도 번번히 마지막에 퇴짜를 맞는다. 아무리 시도해도 그녀와의 사랑이 실패로 돌아가고 하루하루는 늘 반복되면서 필은 고통스러워한다.

건물에서 뛰어내리기, 불에 타기, 전기에 감전되기 등 여러 가지 자살 방법을 시도하지만 눈을 뜨면 여전히 2월 2일로 돌아와있고 그는 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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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이런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하루가 반복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평범한 사람들은 필과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처음엔 당황하다 이내 당혹감이 흥미로움으로 바뀌고, 평소 하지 못했던 일들을 벌이다가, 영원히 반복되는 하루에 절망할 것이다.

결국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던 필은 포기하게 되고, 늘 같은 ‘하루’를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에 전념한다. 이미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에 대해 모두 알고 있던 필은 마을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책을 읽고 피아노를 배우는 등 스스로가 즐길 수 있는 일들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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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반복되던 하루 중 어느 날, 발 벗고 나서 마을 사람들을 도울 만큼 친절하고 다재다능해진 그에게 매력을 느낀 리타가 드디어 그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함께 잠에 든 필은 다음 날인 2월 3일에 눈을 뜨게 된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자주 처음의 필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바쁜 하루 속에서 남들이야 어떻게 되던 관심이 없고 나의 일을 처리하기에도 급급하다. 그렇다고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일들로 가득 채워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일, 또 내일로 이어지는 여느 때와 같은 하루 중 하나일 뿐이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그제 같아진다. 아침에 일어나 늘 씻던 순서대로 씻고 준비를 하고, 나가서 일을 하거나 학교를 가고, 늘 같은 동선으로 움직이고 비슷한 사람들과 비슷한 일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와 잠든다. 또 다음날이 되면 같은 일을 반복한다. 이러한 날들이 반복되다 보니 점심으로 우동을 먹은 게 3일전인지 4일전인지, 당장 저번 주 수요일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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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늘 2월 2일이 반복되는 필과 우리들은 별만 다르지 않을지 모르겠다. 마치 하루가 반복되듯이 비슷한 행동과 대화들이 일과 내내 계속된다. 다만 필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우리들은 우리 자신의 하루하루가 반복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반복되는 하루를 자각한 필은 그 상황을 벗어나려 발버둥치며 결국 그 다음날을 맞이할 기회를 얻게 되지만 어쩌면 우리들은 평생 같은 하루의 사이클에 갇혀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내일을 만나지 못하며 일생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어제와 오늘이 구별되지 않는 날들의 연속이라면, 내일이 진정한 내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늘과 다른 내일을 살고 싶지만 사실 이러한 문제는 현실과 직결된다.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살아갈 수 있는 시대에서 도대체 어떠한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다르게 살아갈 수 있을지 막막하다. 그렇다고 아무런 목표도 없이 일을 그만두고 즐기며 산다는 것은 사실 비현실적인 이야기이다. 그것이 어려운 일이기에 과감히 사이클을 박차고 나온 사람들을 동경하고 그들에게 열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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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의 블랙홀’은 판타지 요소가 들어간 영화이지만, 굉장히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는다. 필은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흔히 우리가 ‘색다른 하루’라고 생각하면 떠올릴 법한 일들을 먼저 실행한다. 일을 나가지 않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그러나 결국 그는 이런 날들에 지겨워져 버린다.

현실도 그렇다. 만약 우리가 이제부터 다른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가진 채로 저런 일들을 벌인다면, 행복하고 재미있는 건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생각보다 우리의 뇌는 새로움에 금방 익숙해지고 질려버린다.

결국 필은 다른 방식의 행복을 찾아낸다. 그러나 그것은 무작정 자유롭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일터로 가 일을 하고 동료들을 만난다. 그리 반갑지 않은 사람에게도 티를 내는 대신 오히려 친절하게 대한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별다르지 않은 하루’에서 그는 진정한 행복을 찾게 된다. 일에 진심을 담아 조금 더 완성도 있게 만들고자 할 때, 남들에게 도움을 줄 때, 잠깐이지만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내어 피아노를 배울 때, 그는 조금씩 성장했고 그의 하루는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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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기에는 결국 같은 하루의 반복이었을지 모른다. 매일 배우러 찾아간 피아노 선생님은 늘 그를 처음 보는 듯 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점점 느는 피아노 실력이 남았다. 늘 같은 사람들을 도와주었고 그들은 다음 날이면 기억조차 못했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행복함이 쌓였을 것이다.

현실 속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당장은 사소해 보이는 일들로 색다른 하루를 살 수 있다는 것에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은 이런 사소 함들이 쌓이고 쌓여 나의 하루를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인생의 가치관을 바꾸어 줄지 모른다.

설사 인생이 뒤바뀔만한 변화가 없다 해도 손해는 아닐 것이다. 그러한 일들을 시도하는 동안 우리에게는 일에 대한 열정과 솜씨 좋은 취미, 그리고 좋은 평판이 남아있을 것이니 말이다. 행복은 그리 거창하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면 우리들도 언젠가 필이 다음 날을 맞이했을 때와 같은 말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Today is tom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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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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