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잘 써서 길이 남기다,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글 입력 2019.10.03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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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 작가들이 쓰는 비소설 작품을 좋아한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대단한 이유는 사물을 다르게 보는 능력 때문이라고 보는데, 사실 소설을 읽을 때는 그 서사의 흐름에 집중하느라 그들의 천재적이고 섬세한 관점을 뜯어보기보다는 흘려 보내기 일쑤다. 서사를 제거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늘어놓은 비소설 산문에서는 오히려 그래서 작가의 관점이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건 위화가 엄숙히 지적하는 바처럼 나의 얄팍한 견해에 불과하지만, 어쨌거나 내가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을 읽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작가가 말하는 문학, 작가가 말하는 음악은 어떨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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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게 분류하자면 이 책은 각각 문학과 음악이라는 두 주제로 나뉜다. 위화의 글쓰기에 영향을 준 작가와 작품을 이야기하며 문학사를 숙고하다가, 음악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로 포문을 열며 주제를 달리하는 식이다.

재미있는 건 책의 제목이다. 문학은 선율로, 음악은 서술이라고 말한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위화는 음악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문학을 함께 거론하거나, 때로는 아예 음악가와 작가를 동등하게 바라보며 비교 서술해나가기도 한다.

우선 전반부에서는 문학 비평을 다루고 있다. 각 챕터마다 유사하게 적용되는 형식이 있는데, 위화 본인이 생각하기에 같이 묶어야 한다고 판단되는 두세 작가를 비교하는 것이다.

이 기준은 때로는 매우 개인적이다. 가령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프란츠 카프카는 일반적으로 함께 놓여야 한다고 여겨지는 이들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위화의 말에 따르면 그 두 작가는 공통적으로 한계를 뛰어넘는 서술방식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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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소개하는 작가의 작품들을 모두 읽어본 열혈 문학도가 아니더라도 그의 관점을 따라가는 데엔 무리가 없다. 왜 그에게 특정 작가들이 강렬하게 다가왔는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간혹 문학 비평을 읽을 때면 ‘아는 만큼 보여요’ 식의 서술에 지쳐 나가떨어지곤 하는 나같은 인내심 없는 독자에게는 고마울 따름이다.

음악을 이야기할 때에는 결이 살짝 달라진다. 문학에서 작가들의 내밀한 작품세계를 파고들어가듯 서술한 것과는 달리, 음악사를 조명하거나 음악가들 사이의 교류를 말하고, 문학과 회화를 함께 엮어내기도 한다.

어쩌면 제목이 이런 곳에서 다시 빛을 발하는지도 모르겠다. 문학을 말하면서는 텅 빈 방 한가운데서 선율을 느끼도록 하고, 음악을 말할 때는 오히려 음악에서 한 발짝 물러나 그를 둘러싼 것들에 주목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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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가 제시한 네 가지의 독서 방식을 소개하는데, 그 중 네 번째이자 가장 이상적인 독서 방식은 책에서 자신 뿐 아니라 타인도 혜택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독서이다.

위화는 분명히 네 번째에 속하는 독자일 것이다. 그의 글쓰기에 영향을 준 작품들은 그에게 스쳐지나가는 감흥에 머물지 않았고, 그는 이처럼 멋진 글을 남겨 다른 사람들도 같은 감흥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영감을 받은 작품에 대해 앵무새처럼 설명하기란 비교적 쉽다. 그러나 정말 자기만의 책읽기를 한 사람은 그 이상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게 바로 위화가 말한 ‘모든 독자는 자신의 독서사로 자신의 문학사를 편찬한다’라는 것이 아닐까.





<책 소개>


'가장 세계적인 중국 작가' 위화(余華). 그가 젊은 날 책과 음악 속으로 떠났던 다채한 여정을 담은 에세이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로 한국 독자를 만난다. 젊은 시절 책과 음악의 세계로 떠난 여정에서 즐겨 읽은 고전문학과 좋아한 고전음악에서 얻은 위화 문학의 자양분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여행기다.

1993년 <인생>, 1996년 <허삼관 매혈기>를 출간하고 명실상부 중국문학을 선두에서 이끄는 작가로 손꼽히던 30대에 쓴 글을 모은 만큼 생명과 열정의 냄새가 코 끝 가득 차오른다. 이 책은 1997년 위화의 장편소설 <인생>(당시 제목 '살아간다는 것')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고 <허삼관 매혈기> <가랑비 속의 외침> <제7일> <형제>와 소설집 <내게는 이름이 없다> 등 위화의 소설을 꾸준히 출간해온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에 이어 두 번째로 출간하는 산문집이다.

지금은 거장이 된 작가의 젊은 시절, 갓 벼려진 칼날 같은 통찰력을 시적인 문장에 담아냈다. 스스로 따스하고 만감이 교차하는 여정이라 칭하는 글이니만큼, 위화를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흥미로운 안내서가 될 것이다.


*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 생生을 헐어 쓴 글의 힘 -


지은이 : 위화余華

옮긴이 : 문현선

출판사 : 푸른숲

분야
작가에세이 / 중국 문학

규격
137*194

쪽 수 : 404쪽

발행일
2019년 09월 02일

정가 : 16,800원

ISBN
979-11-5675-793-1 (03820)


[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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