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의 머리카락에게 [사람]

내가 사랑하지 못하던 나에게
글 입력 2019.09.19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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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고 험난하다. 아주 어릴 때, 내가 기억도 못 하는, 나의 첫 시작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나와 떨어져 산 적이 없다. 당연한 일이다. 머리를 다 민다고 해도 뿌리까지 뽑는 건 아니니까. 그러나 너는 나의 나이만큼 살았으면서 환영받은 적이 드물다. 사춘기의 나는 너를 싫어했고 종종 사람들은 너의 겉모습만 보고 말을 얹었다.


갓 태어나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즈음의 나는 머리카락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솜털보다 조금 더 많고 짙어서 여기 이게 머리카락이구나 구별할 수 있는 정도. 당시 사진의 대부분은 모자를 써서 민둥한 머리 위에 붙어있는 솜사탕만치 얇은 머리카락을 모두 가렸다. 엄마의 육아일기에 딱 한 번만 아이의 머리를 묶어보는 게 소원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렇게 너는 가려졌다.


나이가 들자 엄마의 걱정이 무색하게 너는 자랐다. 잡초보다도 더 빠르고 많이. 엄마는 내가 유치원을 다니는 동안과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기 전에는 꼬박꼬박 열심히 머리를 묶어주시다가, 내가 묶을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전처럼 자주 묶어주지 않으셨던 거로 기억한다. 물어보자 어릴 때는 정말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을 뿐이라고 대답했던 걸 보면. 너는 잘 자랐는데, 항상 뒤로 꽉 묶어서인지 이마를 넓은 공터처럼 휑하게 만들었다. 이마가 넓고 반질거린다며 놀림을 많이 받았다. 너를 다듬어 모양을 낸다는 생각조차 못 했던 나는 그저 너를 미워하고, 넓은 이마를 미워하며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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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년에 한 번씩 미용실에 갔다. 원체 구부정하게 태어난 너에게 화학 약품을 먹이고, 뜨겁게 지져 곧서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야말로 매직이었다. 나는 미용실에 가는 게 싫었다. 한 자리에 오래 앉아있는 게 싫었고, 지루함이 싫었고, 말을 걸어오는 게 싫었고, 미용실에서 나올 때 너의 모습이 싫었다. 너는 곧게 펴있었지만 데친 콩나물처럼 축 쳐져 있었다. 얼굴에 달싹 붙은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얼굴이 길어 보였다. 그러다 몇 주가 지나면 키가 커진 너의 윗부분이 다시 구부정해서 위는 곱슬곱슬하고 아래는 쭉 펴져 어정쩡했다. 그 모습도 싫었다. 고등학생 때까지 꾸준히 1년에 한 번, 반년에 한 번 미용실에 간 건 순전히 엄마의 선택이었다.


엄마는 내 머리가 사방으로 날리는 걸 보지 못하셨다. 하긴, 사방으로 날릴 때의 너는 사자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붕 떴다. 지저분해 보이고 어수룩해 보였다. 나조차도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매직은 며칠밖에 가지 못했고, 고데기는 오후가 되면 부스스해졌다. 아무리 애써도 내가 원하는 너, 선망하는 사람과 닮은 너를 가지지 못했다. 최고의 선택은 키가 몹시 커진 너를 한데 모아 묶는 거였다. 적당히 깔끔해 보이고, 부스스하지도 않고. 엄마와 나의 바람을 모두 이룰 수 있었다. 이마는 여전히 애국가에 나오는 가을 하늘처럼 넓고 공활하게 느껴져서 이따금 너로 공터를 가렸다. 누군가의 앞머리를 보면서 나도 예쁜 앞머리를 가질 수 있길 기대하며 잘랐다. 그러나 대게는 뒷머리는 깔끔한데 앞머리는 부스스해서 다시 어수룩해 보이는 내가 되었다. 그런 너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기르고, 이마가 보기 싫어 다시 자르고, 또 기르고. 무한 반복이었다.


누구나 마음속 깊이 원하는 너의 모습이 있다. 어쩌면 선망하는 대상이 너무 어울리게 했던 머리여서 그럴 수도 있고, 잘은 모르지만 유전자에 박힌 듯 아주 오래전부터 취향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는 쇼트커트였다. 단발보다도 더 짧아 귀밑 0.1cm도 안 되는 길이. 시크하고 활동적으로 보이는 머리. 미용실만 가면 한 번씩 슬쩍 여쭤보곤 했는데, 언제나 곱슬머리라 그렇게 짧게 자르면 머리가 붕 떠서 정리하기 힘들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의 완고한 생각으로 결국 쇼트커트를 하면 미용사분의 말씀이 맞았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볼 때마다 동물의 왕국이 따로 없었다. 너는 갈기가 되어 나를 꾸며주었고 나는 사자가 되어 하품했다. 이다음은 위와 똑같다. 그런 너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기르고, 이번에는 그토록 원하던 너와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자르고, 다시 또 기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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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매직을 하는 주기가 점점 띄엄띄엄해졌다. 오랜 시간 앉아있는 것도 싫었지만, 매직이라는 것 자체에 이골이 났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오랫동안 매직을 하느라 하지 못했던, 염색에 심취했다. 너는 한 달에도 몇 번씩 나뭇잎처럼 색이 바뀌었다.


네가 맨 처음 입었던 색은 얼룩덜룩한 카키색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미술을 하는 친구에게 머리 탈색을 부탁했다. 아주 오랫동안 해보고 싶었던 파란색 머리를 하기 위해서였다. 미술을 하는 친구는 승낙했고,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 손으로 하는 모든 걸 잘하는 편은 아니라는 걸. 친구는 탈색을 도와주는 일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평상시에 꼼꼼하고 손이 느린 편이었는데, 우리 중 누구도 탈색은 약을 신속하고 균등하게 묻혀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어찌 되었건 시작을 했으니 염색약도 발랐다. 역시 하나의 사실을 더 깨달았는데, 머리에 색을 입히는 것도 미술이라는 사실이다. 노란색에 파란색을 섞으면 초록색이 나온다. 도화지, 셀로판지, 머리카락 할 것 없이 모든 곳에서. 빛은 제외하고. 그래도 나는 네 모습이 퍽 마음에 들었다. 얼룩진 것마저 독특하게 느껴졌다. 내가 기억하는 한 처음으로 검은 벗어났다. 네 몸이 더더욱 심하게 고부라졌지만 싫지 않았다.


수영장이나 바다의 색이 파란 이유는 물이 파란색을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머리도 물이 좋아하는 색인만큼 빠르게 빠졌다. 몇 번 새로운 색을 입혔지만, 그것도 빠르게 사라졌다. 슬슬 귀찮아졌다. 무슨 색을 입혀도 결국 너는 쨍한 주황색과 전에 입혔던 색이 희미하게 남은 상태 어딘가에서 꼬불거렸다. 의외로 신경이 쓰이진 않았다. 머리의 강렬함 때문인지 이제 막 성인이 되었는데도 주민등록증 검사를 자주 하지 않았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이지만.



“머리 왜 그렇게 괴롭혀요. 부모님이 속상하시겠다.”



그저 웃어넘겼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당시에 한국에서 탈색에 대한 이미지가 그랬던 건지, 그 시기에 이상한 사람을 자주 만난 건지 몰라도, 나보다 너에 대한 안부를 듣는 날이 더 많았다. 노란색이 검은색보다 더 눈에 많이 띈다는 사실을 천천히 알게 되었다. 나는 그저 네 색이 마음에 들었을 뿐인데, 시선을 끌까 봐 자꾸만 걱정되었다. 결국 노란 네 모습을 모두 잘라내고, 다시 길렀다.


탈색했을 때만 들은 건 아니다. 네가 다시 검고 건강한 단발이 되었을 때, 굵은 웨이브를 상상하며 파마를 한 적 있다. 그 누구도 네가 이토록 파마에 강한 존재라는 걸 몰랐을 것이다. 나는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집에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 평상시처럼 밖을 돌아다녔다.


버스 정류장이었다. 친구와 전화하던 어떤 사람이 작게 소곤거렸다. 사실 작진 않았다. 소곤거린 것도 아니다. 내 귀에도 똑똑히 들릴 만큼 크고 평범하게 말했다. 지나치게 구불구불한 너를 비웃는 말이었다. 순간 몸이 굳었다. 주변에는 그 사람과 나밖에 없고, 뭐라고 말할 용기도 없고, 머리는 복잡했다. 마침 버스가 와서 탔으나, 모자라도 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네가 미웠다. 남들의 너처럼 길고 윤기 나는 머리라면 좋았을 텐데. 앞머리도 예쁘게 내보고, 쇼트커트도 하고, 파마도 예쁘게 해보고, 머리를 그냥 놔두기도 했을 텐데 무슨 머리를 해도 너와 나에게 어울리지 않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관리하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모든 게 네 잘못 같았다. 그 뒤로는 한동안 머리를 가만히 길렀던 것 같다. 가끔 검은색이 지루해지면 밝게 염색만 하는 정도였다. 미국에 가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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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유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늘 그렇듯이 주기적으로 ‘염색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서 그랬던 건지, 미국에 사는 친구가 추천해준 염색약으로 진한 색상의 머리를 얻을 수 있다는 말에, 항상 실패해서 약 5번 정도 카키~갈색에 머무르던 파란색을 또 도전해보고 싶었는지, 또다시 탈색과 염색을 했다. 너는 6번째 초록이 되었다. 그러나 이전과 달랐다. 정말 진한 초록색이었고, 드문드문 파란빛도 보였다. 꽤 만족스러웠다. 그나마 가장 파란색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나의 만족에는 사람들의 반응이 컸다. 이전에는 머리에 너무 심한 짓을 했다, 색깔이 왜 그러냐는 말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예쁘다거나 잘 어울린다는 말을 더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지나가며 I like your hair, 하는 말을 들을 때는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미국은 미용실 가격이 제법 비싼 편이다. 싸다고 해도 누군가 밀어 넣지 않는, 자유로운 몸이 된 나는 귀찮아서 가지 않았겠지만. 시간이 지나 너는 또다시 노랗게 변했고, 사방으로 뻗어 더 염색할 수 없다는 파업 의지를 강하게 보여주었다.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손을 넣었을 때 밑으로 매끄럽게 내려가지 않으면 않는 대로. 때론 땋고 다니고, 때론 그냥 구불거리고 샛노란 머리를 풀고 다녔다. 그래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비록 색을 빼긴 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너 자체로 있는 느낌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너의 긴 곱슬머리가 생각보다 예쁘다는 걸 알아차렸다. 머리가 길어지자 사방으로 뻗어 사자 갈기를 만들지 않고 축 늘어져 굵게 구불거렸다. 여전히 어디로 굽을지는 너만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참 좋았다. 그게 너니까.


오랫동안 나는 구부정한 너 그대로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 이제야 보았다. 꼭, 너는 눈이 없고 있다면 징그럽겠지만 눈이 마주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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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한 번도 매직을 하지 않았다.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 가끔 단발이 하고 싶을 때 축 처져서 남들처럼 찰랑거리는 머리가 부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네가 싫은 건 아니었다.


탈색과 염색은 자주 했다. 네가 싫어서 모습을 바꾸기 위해 하던 것이 아니었으니까. 검은 머리라도 좋겠지만, 그냥 다양한 색을 네게 끼얹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아름답고 색이 빠지며 변화하는 걸 보는 게 좋았다. 이제는 누군가 대놓고, 혹은 뒤에서 머리의 색을 가지고 말하는 일이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염색을 계속할 것이다. 누군가 너와 나의 모습을 지적한다고 해도 너를 싫어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너는 나의 일부다. 아주 어릴 때, 내가 기억도 못 하는, 나의 첫 시작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나와 떨어져 산 적이 없다. 그러니 너를 부끄러워하는 건 나를 부끄러워하는 일이고, 네가 미운 건 나를 미워하는 일이었다. 곱슬곱슬한 네 모습을 다른 모습으로 바꾸는 건 상관없지만, 널 싫어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아주 늦게야 깨달았다.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걸 어쩔까.


앞으로도 여전히 나는 너를 바꿀 것이다. 물론 항상 너를 사랑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네 본래 모습을 싫어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려서 바꾸는 게 아니다. 네가 그것만은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네가 어떤 모습이든 지금의 모습과 본래의 모습을 모두 사랑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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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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