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많이 먹어야 잘 먹는 건가요? [문화 전반]

글 입력 2019.09.14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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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다. 그동안 꾹꾹 눌러 왔던 식욕을 봉인해제할 합법적 이유가 생겼다. 매끼가 마지막인 것처럼 명절 음식을 먹는다. 열심히 먹음에도 밥 먹을 때 종종 핀잔을 듣는다. 밥을 깨작깨작 먹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젓가락질 잘 해야만 밥을 먹나요 / 잘 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 / 그러나 주위 사람 / 내가 밥 먹을 때 한 마디씩 하죠 / 너 밥상에 불만있냐?


90년대 나온 DJ DOC - ‘DOC와 춤을’의 가사 일부다. 지금도 이 가사가 공감이 되는 이유는 유독 우리 문화가 밥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깨작깨작 먹으면 밥 맛 없다고 하고, 숟가락 가득 밥을 담아야 뭘 좀 먹을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야근을 많이 시키는 것보다 야근할 때 밥 안 먹이면 나쁜 놈의 회사가 된다. 음식을 사랑하는 민족답게 먹방, 쿡방 트렌드가 우후죽순 생겼다. 대결에서 살아남은 건 먹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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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간 먹방 검색량 증가 (출처: 구글 트렌드)



먹방을 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리만족하기 위해 먹방을 보는 경우. 둘째, 혼밥인구의 증가다. 혼자 밥 먹는 게 좋지만, 외롭다. 그럴 때 먹방을 틀어놓고 있으면 함께 식사하는 기분이 든다.


실제로 많은 유튜브 브이로그를 보면 혼자 밥먹을 때 심심해서 먹방 콘텐츠를 소비한다. 자취하는 친구들도 적적해서 먹방이나 다른 음식 프로그램을 보며 식사한다는 말을 종종 한다. 각자의 방에서 즐기는 저녁 식사*는 온라인 방송을 넘어 공중파, 그리고 유튜브에 'Mukbang'이라는 영어 단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파급력이 높아졌다.(The Koreans who televise themselves eating dinner, BBC Seoul, 2019-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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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 콘텐츠에 주로 등장하는 음식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유튜브에 먹방을 검색하면 주로 라면, 떡볶이, 햄버거, 피자, 중국 음식이 상대적으로 많이 나온다. 탄수화물을 많이 소비하는 건 기본이다. 이에 더해 맵고 짜고, 단 음식이 주를 이룬다.


사는 게 팍팍해졌기 때문일까. 점점 더 자극적인 음식이 유행한다. 많이 먹어도 배가 헛헛하고, 간식을 찾게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맛있는 걸 먹으면 행복하고, 그 감정을 조명하는 건 좋다. 문제는 마른 사람이 많이 먹는 모습이 미덕처럼 포장된다는 점이다.


먹방은 대리 만족이다.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 보는 쾌감이 있다. 저 많은 게 한 입에 들어간다고? 하는 신기함도 있다. ‘한 입만!’ 을 보면 웬지 나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따라해본다. 한 입만 그렇게 먹었던 게 두 입이 되고 결국 먹는 양이 늘어난다.

미디어에서 음식을 다루는 행태가 변화함에 따라 개인이 음식을 보는 관점도 달라졌다. 변화를 체감한 건 #먹스타그램이다. 이전엔 ‘이렇게 예쁜 걸 내가 먹는다!’ 였다면, 지금은 ‘이렇게 많이 먹는다!’를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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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kg 대왕문어 먹방을 한 키즈 유튜버


인기있는 먹방 BJ나 먹방 유튜버를 보면 대게 마르거나 몸이 좋다. TV에는 마른 연예인이 나와 ‘복스럽게’ 많이 먹는다. 많이 먹어도 살찌지 않는 그들을 보며 폭식해도 마른 상태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연예인이 마른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평소에 초절식하는 건 전파를 타지 않는다. 많이 먹어도 살찌지 않는 그들을 동경한다. 식사와 몸에 대한 미디어의 왜곡된 시선은 고스란히 10대 여성에 영향을 준다. 이들은 날씬해지기 위해 먹고 토하거나, 아예 밥을 먹지 않는 식이 장애를 겪는다.

최근엔 어린이 유튜버도 먹방에 가세했다. 어린이가 먹기엔 양이 많은 음식을 해치우는 영상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다. 대식가면서 말라야한다는 기준이 어린이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혼자 밥먹다 외로울 때, 먹방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 정도를 지키지 못하는 순간 먹방은 폭력이 된다. 명절에 “결혼은 언제하니?”, “취직은 언제하니?”, “애는 언제 낳니?” 같은 관심을 가장한 폭력처럼 말이다. 복스럽고 털털하게 많이 먹으면서 날씬한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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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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