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가을밤에 만난 아름다운 바이올린의 노래, 양고운 바이올린 리사이틀

글 입력 2019.09.07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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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여름비마냥 쏟아져 내리길 반복했던 지난 9월 5일 목요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을 찾았다. 바이올리니스트 양고운의 리사이틀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음대와 무관한 삶을 살았던 나로서는 토너스 트리오로 활동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양고운의 모습만 보았기 때문에 리사이틀은 어떨지 기대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번 무대에 같은 토너스 트리오 멤버인 피아니스트 주희성과 함께 서기에 또다시 그 호흡을 볼 수 있는 매력이 있지만, 무엇보다 바이올린의 선율이 부각되는 작품들로 선곡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에 매료되리라는 기대로 무대를 찾았다.

적당히 비 오는 저녁이었다면 좀 괜찮았을텐데, 가을비가 유독 많이 내리는 날이라 조금은 걱정이 됐다. 공연장으로 가는 발걸음들이 지체될 수도 있고, 공연장 내에서도 습도 때문에 바이올린의 피치가 혹여나 떨어지지는 않을까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공연에는 지각하는 관객들이 많았다. 첫 곡인 모차르트 연주 때 피치가 다소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연주회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프로그램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내림나장조 K.378
Mozart Violin Sonata in B-flat Major K.378
I. Allegro moderato
II. Andantino sostenuto e cantabile
III. Rondeau. Allegro

프로코피예프 다섯개의 멜로디
Prokofiev 5 Melodies
I. Andante
II. Lento ma non troppo
III. Animato ma non allegro
IV. Allegretto leggero e scherzando
V. Andante non troppo

-  INTERMISSION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바이올린 소나타 내림마장조 작품번호 18번
R. Strauss Violin Sonata in E-Flat Major, Op.18
I. Allegro ma non troppo
II. Improvisation - Andante cantabile
III. Finale – Andante - Allegro





이번 리사이틀의 시작은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B플랫이었다. 모차르트가 피아노뿐만이 아니라 바이올린에도 정말 뛰어난 음악가였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1악장은 아주 서정적이고도 활기찬 피아노 선율로 시작했다. 피아노의 주선율과 바이올린의 반주에서 뒤바뀌어 바이올린이 주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하고 피아노가 반주하기 시작하는 대목은 음원으로 들어도, 현장에서 들어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렇게 통통 튀는 듯한 아름다운 선율을 어떻게 그려냈을까 싶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귀가 청명하게 트이는 듯한 선율이 1악장 내내 객석을 가득 채웠다.

보통은 그러지 않지만, 이번 공연에는 지각한 관객이 꽤나 많았는지 1악장이 끝나고 지각한 관객들이 입장했다. 1악장의 맥을 바로 이어나갈 수 있다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아쉬움은 2악장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불식됐다. 바이올리니스트 양고운도, 피아니스트 주희성도 이런 사소한 것에 흔들리기엔 이미 너무나 단단한 연주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 본인의 작품인 오페라 마술피리 중 파미나의 아리아를 연상시키는 멜로디로부터 시작되는 2악장은 소스테누토 그리고 칸타빌레답게 아주 몽글몽글한 피아노 선율에 부드러운 바이올린이 살포시 내려앉는 듯했다.

마지막 론도는 리듬과 박자부터 피날레라는 걸 절감할 수 있는 악장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산뜻해지는 3악장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양고운과 피아니스트 주희성이 서로 음악적 동반자로 많은 호흡을 맞췄다는 게 잘 느껴졌다. 강약과 템포 조절, 그 무엇 하나 자연스럽게 흐르지 않은 게 없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모차르트가 마무리되었다.

*

1부의 두 번째 곡은 프로코피에프의 다섯 개의 멜로디였다. 시니컬하기도 하고 신랄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프로코피에프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굉장히 서정적이고 신비한 분위기가 녹아있는 이 작품은 무대를 보기 전에 가장 기대감을 가진 작품이기도 했다. 그런 기대감을 안고 들은 첫 번째 멜로디는 순식간에 객석의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아주 조심스러운 피아니스트 주희성의 터치와 바이올리니스트 양고운이 그려내는,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고뇌가 묻어나는 것 같은 선율은 정말로 오묘했다. 이어 마치 일렁이는 물결처럼 피아노 선율로 부드럽게 시작하는 두 번째 멜로디에서는 또 다시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가 있었다. 마치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분위기가 녹아있는 두번째 멜로디는 음원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오묘했다.

세 번째 멜로디는 강렬한 도입부로 음원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았던 멜로디였다. 두 번째 멜로디와 연결되는 듯하면서도 바이올린 선율이 보다 강렬해서 가을날의 을씨년스러움과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코피에프 하면 떠올릴 만한 음의 진행이기도 했다. 이어진 네 번째 멜로디는 다시금 음의 전개를 예측할 수 없는 신비한 분위기가 한가득이었다. 아주 섬약한 바이올린의 마지막 음으로 끝날 때에는 왠지 모를 짜릿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 끝에서 만난 마지막 멜로디는 다시금 차분하고도 사색하는 듯한 분위기로 시작했다. 그러나 시종일관 회상하는 분위기로 흐르지 않고, 다시금 여러 조성을 넘나드는 상승부를 지나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선율이 강렬하게 얽혀드는 대목으로 발전되어갔다. 이를 다시 침잠하는 듯한 멜로디로 받아 종지부를 찍은 바이올리니스트 양고운과 피아니스트 주희성은, 너무나 오묘하고 아름다운 프로코피에프의 세계를 객석에 전달해주며 1부를 마무리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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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내림마장조였다. 이 작품은 네 달 전, 동일한 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과 피아니스트 문지영의 조합으로 들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고전적인 느낌과 후기 낭만의 풍취가 아주 절묘하게 녹아있는 이 작품을, 음대 교수이자 아주 오랜 시간동안 안정적으로 작품활동을 해 온 중견 연주자들의 손끝으로 만나게 되면 어떤 느낌으로 와 닿을지 궁금했다.

아주 우아하게 시작하는 1악장. 진지하면서도 사랑스러운 감정이 함께 녹아 있는 이 악장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실내악이라고 하기엔 굉장히 현란하다. 피아노 파트의 현란함과 더불어 바이올린의 소리 역시 매우 풍성하고 폭넓은 음역대를 커버한다. 이런 상태로 두 악기가 만나 빼곡하게 맞물리는 1악장은 언제 들어도 시적이다.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특히나 바이올리니스트 양고운과 피아니스트 주희성이 힘을 빼고 아주 자연스럽게 연주해줘서 더욱 풍성했다.

이어지는 2악장은 바이올린이 서정적인 노래를 하는 것 같이 진행된다. 즉흥곡적인 면모도 담겨 있는 2악장에서 즉흥성이 요구되는 대목이 시작되는 순간, 변덕스러우면서도 재치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양고운의 선율이 홀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분위기는 다시금 서정적이고도 사색하는 듯한 바이올린의 노래로 다시 돌아온다. A-B-A 형식으로 진행된 2악장은 세 개의 악장 중 가장 늦게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왠지 모르게 슈트라우스의 고민이 많이 묻어나는 악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름다운 작품에서 가장 선율의 아름다움이 정점에 달하는 악장이기도 하고, 연주자들의 음악적 대화를 엿볼 수 있는 악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양고운과 피아니스트 주희성의 연주에서도 너무나 빛나는 2악장이었다.

대망의 피날레는 조심스러운 듯한 피아노의 첫 터치에서 강렬함으로 발전해나간 뒤 바이올린의 힘있는 상승 곡선으로 화려하게 시작한다. 바이올리니스트 양고운의 힘있는 보잉과 선율이 너무 좋았다. 도입부에서뿐만이 아니라 3악장에서는 시종일관 격정적이고도 기개가 넘치는 바이올린을 만날 수 있다. 어쩌면 영웅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미래지향적이면서도 낙관적인 3악장은 도입부에서부터 예견되었던 것처럼, 점차 상승되어간다. 도입부의 선율이 재현되고, 함께 음을 쌓아가며 대미를 향해 나아가는 두 연주자의 모습을 보며 객석도 함께 고조되었다. 그리고 아름답고도 성대하게, 슈트라우스 소나타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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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의 뜨거운 박수와 환호에 화답한 바이올리니스트 양고운은 이번 무대의 앵콜 곡으로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를 선곡했다. 앵콜곡을 연주하기에 앞서, 바이올리니스트 양고운은 적당히 스며드는 가을비에 어울리게 이 곡을 선곡했는데 비가 쏟아지듯 내려서 다소 당황스러운 듯했다. 그러나 비가 추적추적 내리든, 쏟아지며 내리든 어떠랴. 비 오는 가을날에 듣는 보칼리제는 언제고 옳다.


그렇게, 서글프고도 아름다운 선율이 다시 한 번 객석을 휘감았다. 그 누구에게라도 익숙할 바이올린 선율이, 각자의 마음에 필요한 양분을 채워주는 시간이었다.


*


바이올리니스트 양고운은 올해로 바이올린과 함께 한 시간이 43년이 되었다는 것을 프로그램 북에 담담히 써 놓았다. 이번 무대에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인 모차르트를 더불어 새로운 기획으로 프로코피에프와 슈트라우스의 작품까지 선곡했다고 한다. 바이올린의 노래를 객석에게 들려주기 위해 그가 새로운 시도를 해준 덕분에, 9월 첫 목요일의 저녁이 이토록 풍성해질 수 있었다. 어느 작품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고 그 매력에 압도되지 않은 게 없었다.


무대를 같이 꾸민 피아니스트 주희성과도 서로 음악적 동반자로서 함께 하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 연주해왔기 때문인지 호흡도 너무나 편했고, 무엇보다 두 연주자 모두 굳이 힘을 들이지 않고 연주하는 게 너무나 보고 듣기 편했다. 관록이라는 게 바로 이게 아닐까 하고, 그 자리를 채웠던 관객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양고운과 피아니스트 주희성 덕분에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아름다움을 목도하는 가을 밤이었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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