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년만에 우리, 다시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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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야, 이 밤엔 여름의 끝자락 놓지 못한 때늦은 장맛비가 모든 세상의 시공간을 적시고 있다. 조용히 창밖을 보다가, 비가 오던 서귀포의 그 날들이 떠올라 향초를 켜고 우리의 여행 사진을 천천히 넘겨봤어.
원앙폭포, 황우지 해안, 함덕, 섭지코지, 아부오름, 김녕. 이틀이나 비가 왔는데도 참 알차게 돌아다녔네. Y야, 너의 제주는 어땠어? 아, 질문이 조금 어려웠나. 그러면 다시 물어볼게. 넌 어디가 가장 좋았어?
나는 2년 만에 우리 함께 다시 찾은 함덕의 노을이 가장 좋았어.
'재작년에 우리 _____했잖아. 기억나?'라고 재잘대던 모습이 일주일이 지난 지금, 아직도 선하다. 기억나? 라고 끝나는 말들의 끝에는 항상 코끝 시큰한 향수가 뒤따라와 순간 마음이 멈추곤 했어. 그래서 그때마다 애써 티 내지 않으려 네 얼굴이 아닌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말한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2017년의 흔적들, 딱 눈물 나지 않을 만큼 바래져있던 그 기억들을 마주하는 순간에 드는 감정을 바로 표현하기에 나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람인가 봐.
아부오름은 또 어땠어?
서로 본인이 더 튼튼하다며 가벼운 짐 들기를 미루던 모습은,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따뜻하고 귀여운 순간인지. 사각 앵글 속 픽셀 하나하나 영화이지 않은 순간이 없었던 그 공간에서 공유한 여유는 얼마나 소중했는지.
보이지 않는 순간을 물리적 형태의 무언가로 바꾸어 내 손에 꼭 쥐고 다니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어.
같이 배웠던 훌라도 재미있지 않았어?
우리 춤이라곤 중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 억제로 나간 장기자랑이 다였잖아. 실수할 때마다, 어려울 때마다, 웃기고 어이없어서 새어 나온 웃음 하나하나에 난 너무 행복했어.
그 웃음 사이에는 우리가 열아홉부터 지금까지 고민하고 고민했던 행복이 깃들어있었던 거야. 행복 참 별거 아니다? 그때 알게 되었어.
아, 그리고 절대 잊지 못할 제주의 마지막 날 밤, 달콤한 요거트향 막걸리에 취한 건지, 함께한 편안한 시간에 물들어서인지 죽어도 꺼내기 싫었던 심해의 이야기까지 네 앞에서 엉엉 울면서 꺼내는 나를 보면, 널 정말 믿고 있긴 하나 봐.
누군가를 생각하며 쓰는 글이 이렇게 웃음 나올 정도로 재미있고 뿌듯하다는 건, 참 축복받은 일이야.
비가 온다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침대에서 뒹굴던 시간도,
잠결에 눈도 제대로 못 뜬 내게 창밖을 보라며 서귀포의 일출을 내어준 아침도,
2년 전 제주의 그 순간처럼 별거 아닌 것들로 킬킬거렸던 그 밤도,
훌라에 어울리지 않는, 삐걱거리는 골반에 최대한 힘을 주려고 미간을 찡그리던 순간도,
그 시간, 공간, 그리고 느낌, 생각이 하나의 공간이 되어 우리가 힘들 때 맘 놓고 찾을 수 있는 집이 되길 바라. 참, 나랑 여행 스타일 맞는 것 같다고 했지. 그럼 이제 마음 놓고 물어볼 수 있겠다.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가고 싶어?
[태예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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