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억 속 푸에게 생기를 - 안녕, 푸 [전시]

안녕, 푸 전시 리뷰
글 입력 2019.09.06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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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



이 이름을 보자마자 버퍼링 없이 머릿속에서는 빨간 상의를 입은 노란 곰돌이 이미지가 떠오른다. 여유롭고 느긋하며 행복해 보이는 얼굴의 곰돌이가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곰돌이 '푸'의 팬은 아닐지라도, '푸'를 싫어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푸를 모르는 사람은 더욱더 찾기 힘들다. 그런 푸가 가득한 전시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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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의 시작을 따라서



소마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안녕, 푸'전시는 지금의 대중들에게 가장 익숙한 디즈니의 푸보단, 원작 속 푸의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정확히는 '푸'의 시작을 엿볼 수 있다.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푸'의 시작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글과 그림이 있는 '책'이 원작이다. (나는 몰랐다.) 그래서 이번 전시 역시 단순히 푸와 친구들의 캐릭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작'이 어떻게 제작되었는지도 보여준다. 가끔 영화가 새로 개봉하면 예고편 말고도 제작기 영상이 올라올 때가 있다. 딱 그 느낌이다. 다만 영상이 아닌 전시로 책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는 느낌이려나.


그렇기에 당연히 '푸'의 '스토리'도 보여준다. (일부지만) 지금의 푸는 푸라는 '캐릭터'의 존재감이 '스토리'보다 강하다. 자연스레 '푸'를 떠올리면 위에 적었듯이 캐릭터의 단편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 이미지에 캐릭터의 성격이나 분위기도 포함되어있긴 하지만 그 깊이가 얕다. 하지만 전시에서 보여주는 원작 속 푸는 캐릭터가 아닌 "이야기 속 등장인물"로서의 푸다.


이야기 속 푸와 친구들은 그저 캐릭터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모험을 겪었고,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독자들은 그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등장인물-캐릭터 들은 생명을 얻는다. 훨씬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이번 전시의 구성이 이야기보다 삽화 즉 시각적인 이미지에 치우쳐져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원작의 푸를 (이야기 속 푸) 다뤘다는 점에서 좀 더 생동감 있고 입체적인 푸와 친구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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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한 스케치



전시는 전 세계 팬들의 소장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위에 적은 "전시 구성이 이야기보다 시각적인 이미지에 치우쳐져 있는 것"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실물로 남아있는 소장품들, 그리고 '전시할만한' 어떤 것은 글이나 이야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상품이나 이미지가 자연스레 많을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필자로 하여금 단점과 장점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단점은 뒤에서 이어 이야기하도록 하고, 장점을 먼저 언급하자면, 아무래도 시각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다 보니 원작 삽화가인 쉐퍼드의 푸와 친구들 스케치가 전시 작품의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는 점이었다. 정확히는 책의 한 페이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삽화를 구상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담겨있는 스케치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과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건 대단히 흥미로웠다.


가장 인상 깊었던 구간은 푸의 탄생비화(?) 부분인데, 실제로 푸의 작가 밀른의 아들이 가지고 놀던 인형들의 모습과 포즈를 반영하여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을 스케치로 확인할 수 있다. (푸의 주인공 소년인 로빈 역시 실제로 밀른의 아들 로빈을 모티브로 삼았다.) 밀른의 위트 있는 문장을 센스 있게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쉐퍼드의 능력 역시 인상 깊다. 글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삽화지만 쉐퍼드는 단순히 글의 장면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닌 글과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발휘하는 그림을 그린다. 어느 한쪽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닌 둘 다 중요하게 느껴지게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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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원작에서 푸와 친구들의 모습은 모티브가 된 인형과 닮아있었는데, 인형 특유의 단순함과 투박함을 살렸으면서도 각 캐릭터의 성격을 살려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정말 인형 같다는 설명은 이런 뜻이다. 위의 이미지처럼 표정을 알 수 없고, 표정을 가장 쉽게 나타낼 수 있는 '눈' 역시 단순한 까만 점으로 표현했다. 관절이 단순한 인형이기에 다양한 행동도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쉐퍼드는 그들의 행동과 몸짓으로 그들의 성격을 드러낸다. 어떻게 서있고, 어디를 바라보고 있고, 그림에서 어디에 있는지 등으로 각 등장인물들의 고유한 성격을 드러낸다.


단순함으로 디테일을 담아내는 일은 어렵고 대단한 일이다. 비슷한 예로 픽사와 디즈니의 합작으로 탄생한 '월 E'는 애니메이션을 들고 싶은데, '월 E'라는 장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로봇 두 명(?)으로 그들은 사람의 몸과 얼굴을 가지지 않았고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대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화는 다양한 스토리라인과 섬세한 감정표현을 담아낸다. 그들의 행동만으로 말이다. "단순하지만 깊은" 것들은 접근성이 좋다. 더 많은 이들의 마음을 건드리고 이해시키기 편하다는 소리다. '월 E'에선 애니메이션으로 단순함의 디테일함을 표현했다면, 그 어려운 걸 쉐퍼드는 낱장의 그림들로 탁월하게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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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E>의 주인공 로봇들




푸-이야기가 없는 푸-전시



아쉬운 점도 있었다. 사실 위에 말한 장점이 단점으로 이어지는데, 이미지 중심의 전시 작품들이 주였기에 정작 원작 '푸'의 이야기는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다. 곳곳에는 원작자인 '밀른'의 문체와 글솜씨에 대한 (찬사) 언급이 많이 등장하지만 그의 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전시장 중간중간 원작의 글을 인용한 구간이 있긴 하지만, 말 그대로 '인용'한 느낌에 그쳤을 뿐이다.


전시의 전체적인 구성을 적자면 이런 식이었다.


- 푸라는 이야기(원작)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 (모티브가 된 인형, 사람, 장소)

- 푸의 제작 과정 (주로 쉐퍼드와 삽화 스케치들로 확인할 수 있는 작업 과정)

- 푸의 인기를 보여주는 각종 소장품 (동시에 푸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다양하게 상업화되었는지도 확인 가능)


푸의 이야기는 전시 구성에 포함되지 않았다. 결코 적지 않은 전시 작품의 수에 비해 이 전시에는 원작의 '푸' 이야기에 집중한 공간이 부족했다.


최근 다양한 방법으로 전시를 감상할 수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전시는 '시각'이라는 감각을 가장 많이 활용한다는 점에서 '이야기'라는 비시각적 매체를 전시하긴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아쉽긴 하다. 전시에 가기 전부터 "밀른의 리드미컬하고 위트 있고 단순해 보이지만 철학이 담겨있는" 글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를 했는데.. (전시에 사용된 어휘를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가장 아쉬운 건 '액자에 담긴 채 벽에 걸려있는 전시 작품'의 제한이 없는 '영상실' 구간이 있었음에도, 원작의 이야기와 글들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책으로 치면 목차 정도를 보는 느낌으로, 각 챕터의 이야기 중 일부를 예고편처럼 삽화와 짧은 글로 보여주는 게 전부였다. 저작권 문제 때문일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상당히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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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웠던 영상실. 이야기 맛보기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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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안녕, 푸' 전시는 이미지와 상품으로만 존재하게 된 (필자 기준) '푸'의 잊혀진 삶을 찾아준 것만 같았다.


마치 화보처럼 여러 멋진 포즈로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있는 상품 패키지 속 푸가 아닌, 여유롭고 긍정적인 살아있는 푸를 본 것 같다.


기억 속 '푸'에게 생기를 찾아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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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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