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소소한 가을 예찬론 [사람]

가을이 아름다운 이유
글 입력 2019.09.05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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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가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이라고 표현한 계절, 만물이 무르익고 농밀해지는 계절, 여름과 겨울 사이를 이어주듯 스쳐지나 그런 날들이 존재했었나 싶게 짧은 계절,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 계절, 바로 가을이다.

많은 이들이 가을이라는 계절을 좋아한다고 꼽겠지만 사실 원래 나의 선택은 겨울이었다. 원체 더위를 싫어하기도 했고 내가 태어난 계절이라는 사실과 겨울 옷을 더 좋아하는 나에게 여름보다 겨울인 것은 고민할 여지도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더위는 물론 추위도 심하게 타기 시작하면서 겨울이 약간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겨울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가을이 좋아졌다. 자고로 행복은 나눠야 배가 된다고 했던가, 그런 의미에서 이 감동스러운 계절에 대해 소소한 예찬론을 펼쳐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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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완벽한 날씨


과연 가을보다 완벽한 날씨의 계절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한국의 사계절에서 여름과 겨울은 말할 것도 없이 너무 극단적이다. 한여름의 햇빛은 너무 강해서 피부에 너무나 강하게 내리쬔다. 더운 것 보다 더 나를 신경질적으로 만드는 건 도시 전체를 어항 속에 넣은 듯 습한 공기다. 덕분에 실제 온도보다 더 더운 것은 물론 불쾌지수까지 상승한다. 아무리 헤어스타일을 만져도 나오자마자 풀리기 일쑤다.

겨울은 그 칼 바람에 얼굴을 베이다 보면 나가기 두려워진다. 아침에 눈을 뜰 때도 추워서 더욱 오래 걸리고 샤워를 해도 너무 추워 벌벌 떨면서 드라이기부터 키곤 한다. 나처럼 손발이 차기라도 한다면 손끝에서부터 아려오는 냉기에 동상이 걸리기도 한다. 사실 겨울의 연말 분위기는 좋아하지만 길고 긴 겨울에서 축제 같은 연말은 너무 짧다.

봄과 가을은 나들이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그러나 봄은 이따금 꽃샘추위가 찾아와 다시 겨울로 돌아간 듯 하다가 더워진다. 가을은 서서히 시원해지는 일만 남았기에 덜 변덕스러운 편이다.

사계절 중 가장 아름다운 하늘은 가을만이 가질 수 있다. 높디 높은 하늘이 저 멀리서 터키석의 하늘색으로 푸르게 빛나면 여름 내내 습기로 옥죄어 오던 공기가 드디어 거리를 벌려주는 듯 하다. 숨통이 트여 고개를 들면 광활한 푸른 대지가 거꾸로 매달려있다.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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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알맞게 시원해서 덥거나 추워 불쾌하지 않고 쾌적하다. 마치 에어컨을 틀어놓고 폭신한 이불을 덮고 있는 느낌이랄까. 더운가 싶으면 바람이 불어주고 추운가 하면 햇빛으로 몇 걸음 나서면 된다. 그 균형의 조화를 맞추기란 너무 힘들어서 가을이 그토록 짧게 설계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종종 들 정도로 완벽하다.

이런 날씨 덕분에 외부 활동을 하기에 적합하다. 나는 따로 약속이 없더라도 집보다는 밖에 나가서 산책이라도 하는 걸 선호하는 편인데, 여름과 겨울엔 그 짧은 산책에도 기운이 빠진다. 덕분에 나가기만 하면 카페같이 시원하거나 따뜻한 실내만 찾아서 다시 들어가게 된다.

가을에는 이런 날씨의 제약이 적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 이상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한강에서 여유롭게 피크닉을 할 수도, 루프탑에 앉아서 노을을 감상할 수도 있다. 거창할 필요 없이 산책만 해도 예쁜 하늘과 선선한 날씨에 마음이 저절로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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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에 틀어박혀 가을 햇살만큼 소중한 것을 낭비하는 일을 견딜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낮 시간을 밖에서 보낸다.”


- 너새니얼 호손





2. 멋스러운 옷


솔직히 인정한다, 이건 지극히 내 개인적인 취향이란 것을.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을과 겨울의 옷들이 아름답다는 걸 난 부정하지 못하겠다. 여름 옷들은 너무 가볍다. 그 가벼운 분위기가 그리울 때도 있지만 조금은 쉽게 질리는 편이다.
 
가을겨울의 옷들은 묵직하다. 옷의 질감과 두께도 풍부하다. 보송한 앙고라 니트, 흐르는 질감의 셔츠, 안정감 있는 터틀넥, 광택감 있는 자켓까지 서늘한 날씨 덕분에 모든 종류의 옷을 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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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지 않기 때문에 니트 위에 또 니트를, 그리고 그 위에 코트를 입듯이 자유자재로 레이어드 한다. 실내에서 겉 옷을 벗으면 새로운 옷을 입은 듯 새롭게 연출할 수 있고 같은 옷으로도 나만의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실크 스카프와 캐시미어 머플러, 가죽 벨트와 스웨이드 구두. 이 모든걸 자유롭게 걸치고 꾸밀 수 있는 계절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산다는 건 행운이다.



3. 분위기



“아무리 떼를 써보고 물어봐도 너는 너만의 그 곳으로 도망가 가을이 오는 냄새 코 앞에 오면 넌 슬퍼지나 봐”


- 정인, '가을남자' 중



단풍, 천고마비, 트렌치 코트 등등 가을이 연상되는 단어는 많지만 가을을 가장 대표하는 이미지는 단연코 ‘외로움’이다. 그래서일까 수많은 노래 속 가을은 고독의 계절로 표현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소위 ‘가을 탄다’고 말할 만큼 가을이 오면 묘한 감정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바로 이런 점이 가을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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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새로이 시작하는 계절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푸릇한 새싹이 올라오고 꽃이 핀다. 아직 한 해의 초반이기도 하기에 새로운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봄에는 가을과는 다른 의미의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다들 삼삼오오 모여 꽃놀이를 가거나 연애를 시작하는데 왜 나는 무엇인가 부족해 보이는지 씁쓸해 한다.

반면 가을은 자연스럽게 외로울 수 있는 계절이다. 찬 바람이 슬쩍 겉 옷을 파고들 때, 단풍이 피고 낙엽이 져 걸을 때마다 바스락거릴 때, 나무들이 하나 둘 헐 벗기 시작할 때, 자연스럽게 쓸쓸함이 와 닿는다. 여기서 말하는 외로움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혼자 있을 때 그리고 생각이 많아질 때는 그 동안 정리가 되지 않던 생각들이 정리가 되고 해보지 못했던 방향을 따라갈 수 있을 확률이 높아진다. 여름 내내 뜨거웠던 긴장감을 내려놓고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의 빈 틈을 만들 수 있다.

나는 노래를 듣는 것을 좋아해 걸어다닐때면 늘 음악을 듣고 있는데 그 어느 계절보다 가을이 되면 쓸쓸한 가을의 분위기에 기분이 센치해져 음악에 몰입도가 배가 되곤 한다. 이별을 하면 모든 사랑노래가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음악에 있어서 몰입이 되는 바탕이 굉장히 중요하다. 클럽에서 클래식을 듣거나 콘서트 홀에 가만히 앉아 클럽음악을 듣는다면 집중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환경만 바뀌어도 더 많은 노래들을 마음에 와 닿게 감상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가을의 분위기는 감성적인 노래와 그 가사들을 조금 더 오래도록 곱씹을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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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을을 유달리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을 나열해 보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글을 위해 계절들에 대해 생각할수록 가을뿐만 아니라 나머지 계절들 각자가 가지는 분위기가 떠오르며 애정이 깊어졌다. 그 동안은 그리 깊게 나의 계절 호불호에 대해 따져 볼 일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떠올려보니, 모든 계절에는 내가 사랑할만한, 사랑해야하는 이유들로 가득했다. 이 글을 읽었다면 한번쯤 좋아하는 계절에 대해 세심히 떠올려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히려 사계절 일년 내내 행복할 이유들로 가득 차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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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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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바다녹색고양이곰
    • 좋은 글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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