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p_readymade_1000.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1909/826b140d752f6e42a640cf15da99aeaf_B1VkvQxnYAhDKoHb.jpg)
일하는 여성을 통해 본 모던타임즈,
역사를 통과하는 여성의 몸과 말
경성 제일의 미용사, 임형선
부산 패션계의 큰손 양재사, 이종수
카네보 상사의 유일한 조선인 타이피스트, 양충자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를 살아간
보통 여성들의
일상적인 노동이야기
보통 여성들의 삶과 노동 이야기. 그런데 도대체 그 보통이 무엇이란 말일까. 특별히 운이 좋거나, 특별히 비극적인 삶을 살거나, 혹은 이도 저도 아닌 중간이거나. 가끔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보통인 것인지 보통이 아닌지 가늠하기 어려운 경우도 왕왕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사는 현실의 사람들에게 종종 ‘너 정말 보통이 아니다’, 라고 말하고는 한다지만 때론 쉬이 던지기에는 어려운 말이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니까 대게 보통이라고 말하면 개개인이 느끼는 '우리' 안에 포함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우리와 같은 여성들의 삶과 노동이야기, 모던걸타임즈는 그렇게 시작한다.
보통 사람들
카네보 상사의 유일한 조선인 타이피스트 양충자, 부산 패션계의 큰손 양재사 이종수, 그리고 경성 제일의 미용사 임형선. 말만 들으면 정말 보통이 아닌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특별히 뛰어난 사람들 같고, 다른 이들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아왔을 것만 같은 문장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지배와 해방, 그리고 전쟁이라는 시대의 굵직한 사건들 사이에서 어쩌면 그들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삶을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문장을 듣는 순간에는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기에 보통 이상의 사람으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한 시간 동안 극장에 앉아 같은 시대를 살아가던 서로 다른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들은 정말 우리와 같은,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걸어 나갈 삶을 살아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어떤 공감이 다가온다.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마치 그 시대의 사람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그들과 같은 공간으로 뛰어든다. 마치 한 편의 영화, 혹은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그 시대의 관객이 된 것처럼 시작 전에 짧은 대화를 가지고, 또 막간의 화장품 광고를 감상하게 되기도 한다.
병렬적으로 이어지는 세 인물의 이야기는 어쩌면 극적이고 커다란 사건으로 그려질 수 있었을 이야기조차 담담히 펼쳐지고, 어쩌면 사소하게 스쳐 지날 수 있었을 법한 이야기마저 꼼꼼히 다뤄진다. 언뜻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달리 생각하자면 일상이란 그런 게 아닐까.
양충자, 임형선, 이종수 이 세 인물이 서로 간의 접점은 없을지라도 동시에 무대 위에 존재하는 것처럼, 그리고 시대를 공유하는 여성의 이야기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처럼 극장을 찾아온 우리 모두 그렇다.
지금의 우리, 그때의 우리
극 중간중간 계속해서 드러나는 모던걸의 치장에 대한 이야기에는 묘한 양가감정이 들기도 한다. 나는 날씬하니까, 세련되게 입으니까, 화장을 거의 하지 않아도 화장을 했느냐고 사람들이 물으니까. 치장하고, 그 치장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자신을 뽐내는 세 인물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보기 안타깝기도 하였고 한편으로는 공감이 가기도 하였고, 지금도 그때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장면들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분명히, 매체에서 종종 그려지는 남성에 의해 객체화된 모던걸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그들의 치장과 그들의 뽐냄은 솔직하고, 겉모습 외의 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알고 있기에, 인형 같은 모던걸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의 어떤 현실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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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치장에 대한 이야기에서만 현재를 이어본 것은 아니다. 프리뷰에서 일하는 여성에 대한 말을 짧게 언급한 적이 있다. 일하는 여성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은 현재와 다른 것이 아니어서, 임신에 대한 두려움과 결혼으로 인한 경력단절, 노처녀라는 조롱과 잘 알지 못하는 남성에게서 오는 의문의 추파 등 현재에 대입시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비극들은 시대의 특수성 외에도 여전히 우리의 일상과 닿아있다.
일하는 여성이 가지는 자부심 또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어떤 고양감을 선사한다. 자신의 기술로, 자신이 손을 놀리면 온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자부심, 하기만 하면 뭐든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가진 여성의 모습을 무대 위에서 보는 것은 언제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경험이다.
지금도 이어지는 모던걸 타임즈
마지막의 인터뷰 영상 역시 잔잔하지만 선명한 인상으로 남았다. 극 중의 인물들이 노인이 된 현재의 모습은 친근한 할머니의 모습이기도 하고 존경스러운 인생의 선배의 모습이기도하다. 여성에게는 여성 롤모델이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세 분의 삶에서 우러나온 진실한 격려의 말에서, 그리고 그 세 분의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그 시절, 그 이야기 속의 세 인물과 우리의 강렬한 연결선을 찾을 수 있다. 보통 여자의 일상적 노동 이야기, 모던걸 타임즈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