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료함의 낭만 [문화 전반]

진정한 휴식이란 무엇인가
글 입력 2019.08.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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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곤을 싫어한다. 어느 누가 좋아하겠냐만, 피곤을 참고참고 하루의 끝에서 침대에 픽-하고 쓰러지는 느낌이 싫다. 그건 휴식이 아니라 도피 또는 내일을 위한 의무 같은 느낌이 든 달까. 그래서 억지로 잠을 미뤄본 적-새벽에 스마트폰을 하는 행위라던가- 도 많다.


그런데 요즘 나는 이러한 니즈를 완벽히 충족시킨 삶을 살고 있다. 누워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다가 피곤하면 그대로 스르르 잠들고, 먹고 싶은 것을 원하는 때에 섭취하는, -뭐 남들이 보면 먹고대학생, 한량 같이 보일 수도 있는- 바로 그런 삶 말이다.


요즘 사람들은 항상 바쁘게 살고자 노력한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쉼과 휴식에 대해 너무도 무관심하다는 것 또한 사실인 듯 하다. 나 또한 남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쉼 없이 일상을 달려온 사람 중 하나였기에, 쉼 없이 달려가는 일상이란 얼마나 공허한가를 피부로 느낀 경험이 있다.


혹자는 그랬다. 밤늦게까지 잠들지 못하고 뭔가를 하려는 것은, 대부분 그날 하루가 본인에게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초를 다투며 바쁘게 살아가는 나의 과거 일상에서는 침대에 누웠을 때 오늘도 잘 '버텨냈다'는 생각이 들며, 자연스레 '휴식다운 휴식'을 할 수 없는 '도피성' 수면을 청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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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에게는 이번 방학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평소보다 몇 배는 많아진 자유시간에,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고, 원하는 것을 먹고, 원하는 곳에 가고, 잠을 잘 수 있는 이 일상이 앞으로 내가 가지게 될 직업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오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달콤한 것일지도.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 사람의 성격에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같으면 바쁘고, 또는 귀찮다는 이유로 ‘굳이’ 눈길 주지 않았을 주변의 사물, 자연, 하물며 집의 사소한 부분들까지 보듬어보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멍하니 매미소리를 들으며 창 밖을 내다보기도 하고, 버스 기다리는 시간 10분이 아까워 마음 속으로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일상 말이다.


그래서 무료함은 낭만적이다. 무료함은 효율성만을 따지던 내 생활에 빈틈을 넣어주었고, 곧 그 빈틈은 생각과 경험을 할 수 있는 틈들로, 낭만으로 채워지게 되었다. 풀 한 포기, 어스름한 달무리에 감탄할 수 있는 그런 여유와 낭만은 진정한 휴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치열하게 사는 것도 청춘이지만, 느리게 세상을 바라보며 낭만에 젖는 것도 청춘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경험이 아닐까. 어떤 것이든지 한 가지 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이, ‘무료함’이라는 단어는 기존까지는 나에게 경계의 대상이었지만, 이번 방학을 계기로 완전히 새로운 의미의 단어로 다가오게 되었다.


여행도 좋고, 봉사도 좋고, 알바도 좋고, 다 좋다. 모두 인생의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쉬지 않고 하나의 경험이라도 더 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청년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듯 하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에 발을 동동거리지 않고 쉬는 것. 피로를 참지않는 것. -잠시라도, 심지어 쉬는 시간에라도 무엇인가를 하지않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우리의 2030세대들에게 필요한 휴식의 형태가 아닐까.


이 달콤한 쉼을 마무리하고 다시 나의 숨가쁜 일상 -개강- 으로 돌아가기까지 이제 일주일 남짓 남았다. '시원섭섭'이라는 양가적 감정이 드는 걸 보니 잘 쉬었다는 증거이려나.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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