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따뜻한 분위기 뒤에 남는 찝찝함, 영화 "우리의 20세기"

글 입력 2019.08.24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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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가난과 정신적 불안은 점점 더 현대인의 움직일 수 없는 특징이 되어가고 있으며, 우리는 이런 현대인을 정신적 무능력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과잉의 시대지만 우리가 손에 움켜쥘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우리는 데이터로 둘러싸여 있다. 돈을 낼 땐 지폐 대신 ‘페이 앱’이나 ‘앱카드’를 내고, 생일 축하를 카카오톡으로 보낸다. 선물도 직접 보낼 필요가 없다. 카카오 선물하기나 택배를 보내면 되니까.


디지털은 우리에게 허상을 제공하여 대상을 “소유하고 있다”라는 착각을 일으킨다. 집, 영화, 책 심지어는 예술작품까지, 지불한 순간만큼은 내 것이 된다. 그리하여 갖지 못함에 대한 고통을 덜 수 있다. 우리는 매끄러운 사회를 살아가고 있고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의 좋아요는 이를 가속화 하여 우리의 결핍을 매끄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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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의 20세기(20th Century Women)>은 세 여성 인물을 통해 미국의 20세기를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 도로티아는 남편과 이혼하고 늦둥이 아들 제이미와 살고 있다. 도로티아는 편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바르게 자라길 바라며 애비와 줄리에게 제이미의 양육을 도와달라고 한다. 도로티아는 아들 제이미가 여성들의 삶을 간접 체험하고 이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남성으로 크길 바란다.


나는 이 영화가 매끄러움을 표방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 모두가 사춘기를 겪지만, 적정선을 넘지 않는다. 페미니즘과 그들의 일탈까지도. 배우들의 연기, 미장센 그리고 음악까지 매끈한 이 영화에 유일한 균열은 다이닝 시퀀스다.



‘우리는 역사의 전환점에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정부에 대한 경멸감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감의 위기입니다. 우리는 이 위기를 우리 삶의 의미에 대해 의심이 커지는 것에서 우리 조국의 목적의 단일성이 손실되는 것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를 자유의 추구에 관한 인류의 위대한 움직임의 일부라고 여겼습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아이들의 시대는 우리 시대보다 나을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소유하고 무엇을 소비하는 것이 우리의 의미에 대한 갈망을 만족하게 하지 못함을 깨달았습니다.’


- 지미 카터, 「자신감의 위기」 연설 중



지미 카터의 연설을 보고 도로티아는 명연설이라고 하지만, 애비는 동의하지 않는다. 한 지붕 아래 살아도 달라도 너무 다른 인물들. <우리의 20세기> 주인공을 중심으로 여성의 삶을 조명해보려 한다.




버켄스탁을 신지만 정신없는 록은 싫어!



도로티아는 1924년생이다. 대공황부터 히피 세대까지 도로티아는 미국 역사를 상징하는 인물로 볼 수 있을 만큼 격변의 삶을 살았다. 그녀는 대공황과 전쟁 그리고 히피와 호황기를 모두 겪은 인물이다. 그녀의 삶은 무너짐과 재건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다.


도로티아가 집을 재건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고 보인다. 과거의 것을 없애고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는 것. 쿨하고 힙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보수적이다. 버켄스탁을 신지만, 20년대의 재즈 음악을 듣는 것. 제이미에게 페미니즘 책을 권한 애비에게 더는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하거나, 생리”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못 꺼내게 하고, 지미 카터 대통령의 「자신감의 위기」 연설이 명연설이라고 말하는 점에서 그녀는 기존 세대의 보수적인 틀을 깨기 어려워 보인다.




생리를 생리라고 말하는 게 어때서요?



애비는 자본주의 황금기인 1955년에 태어난 인물이다. 냉전을 경험한 비트 세대로 세상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그녀는 유독 빨간색 혹은 보라색의 옷을 자주 입고 등장한다. 게다가 빨간 머리-중간에 염색이 빠지기도 하지만-를 고수한다.


애비의 세상은 활기차며 다이내믹하다. 냉전 종식처럼 이전엔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된 일을 몸소 경험한 인물이다. 지금의 낡은 관습은 버리고 더 자유로운 세계가 올 거라 희망한다. 그래서 그녀는 생리를 생리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자유로운 성관계를 추구한다.


그러나 자궁경부암으로 아이를 가지기 어려운 몸이 되고, 상심한다. 영화의 마지막, 애비는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 불가능하다고 들었던 출산에도 성공한다. 애비가 결혼한 지 한 달이 지나 새는 죽는다. 이는 자유를 갈망하던 그녀가 결혼과 출산이라는 기존의 관념에 종속됨을 암시한다.




연애는 별로, 애도 안 낳을 거야.



제이미와 비슷한 나잇대인 줄리는 2차 대전 이후 발전하고 성장하는 시대에 태어난 인물이다. 줄리는 주로 노란색과 남색 옷을 입고 나오는데, 이는 어딘가에 희망이 있다고 믿지만 우울한 세대임을 암시한다. 줄리가 성장하는 시기에는 소련과 미국이 달에 착륙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던 시기다.


반대급부로 히피 문화가 인기를 끌며 줄리는 경쟁과 평화 사이에서 가장 불안한 사춘기를 보낸다. 줄리는 세 여성 인물 중 가장 ‘현대’적인 여성으로, 양극단의 입장을 객관적에서 본다. 그녀는 페미니즘 도서를 즐겨보며, 가정과 자녀 양육의 부당함을 직접 경험한다. 그리고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다.




반 정도의 페미니즘, 반 정도의 일탈.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도로티아의 집이다. 그녀의 집은 20세기 초반에 지어져 1979년-아마도 80년대 초까지-까지 등장한다. 도로티아의 집은 각기 다른 세대가 모여 산다는 점에서 미국을 뜻한다. 마호가니 나무라던가 옛날식 목조들은 아직도 그녀가 구세대에 머물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집은 끝까지 재건할 수 없다. 집이 완성되기엔 너무나도 다양한 생각과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살고 있음으로. 세 여성 모두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오히려 제이미가 안정적으로 보인다. 제이미는 도로티아, 애비 그리고 줄리와의 관계를 통해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시각을 만들어나간다.


제이미는 의인화된 도로티아의 집이라고 볼 수 있다. 도로티아의 집에서 남성들은 주체적이라기 보다는 수동적인 태도를 보인다. 제이미와 윌리엄은 적극적으로 구애 하지 않는다. 윌리엄은 도로티아의 한 발 뒤에 서서 그녀가 좋아하는 행동-등을 쓰다듬는-을 하고, 제이미는 줄리가 자신의 방에서 자고 싶다고 말하면 언제든 허락한다.


이런 점에서 결말이 모든 등장인물의 결혼, 그리고 아이를 낳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관객들에게 진통제를 놓아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공허를 채우기 위해 섹스를 했던 인물들처럼, 이 결말은 상실을 채우기 위한 강박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의 분위기, 추천하는 책과 음악이 내 취향임에도 불구하고 찝찝한 감정이 남는 이유다.





[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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