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Culture letter 05. 당신의 감정을 채울, 풍부한 색감의 세계 [영화]

영화 <아멜리에>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글 입력 2019.08.21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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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름 하늘.jpg
 


올해 여름은 유난히 해가 길었다. 혹시나 싶어 일몰 시간을 검색해보니 생각과는 달리 작년과 큰 차이는 없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올 여름 나는 유난히도 저녁 하늘을 마주하지 못했다.


여름 저녁의 하늘은 색이 짙고 경계가 커서 봄가을의 하늘보다 더 강한 인상을 준다. 봄과 가을의 하늘이 연한 파스텔 빛이라면 여름의 하늘은 짙은 크레용으로 그어 놓은 그림과 같다. 여름의 저녁 하늘을 고스란히 즐길 여유가 없어서, 어쩌면 더 올 여름의 낮이 길게 느껴진 게 아닐까?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여름의 끝,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여름 하늘이 궁금하다. 여름이라 유난히 더 빠르게 해가 떨어지는 저녁 하늘을 충분히 즐기곤 했는지, 혹여나 바쁜 일정에 쫓겨, 무더위에 지쳐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 오래 전 일이 되지는 않았는지.


오늘은 소개할 두 영화는 색이 짙은 여름 저녁 하늘을 떠올리게 하는 예쁜 색감의 영화들이다. 놓쳐버린 여름 저녁의 하늘과, 더욱 풍성하게 다가올 가을 하늘을 그리며, 우리의 마음을 풍성하게 채울 풍부한 색감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아멜리에 - 한없이 밝은 노랑, 외로움에서 나아가다.



2) 아멜리에 포스터.jpg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작가의 장편 소설 제목이기도 한 이 문장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 중 하나다. 사람들은 누구나 내면에 외로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크기가 어떠하든 외로움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주춤거리며 주변을 돌아보곤 한다. 나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고, 감정을 나눌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서.

 

아멜리에는 오두리두트의 톡톡 튀는 연기가 돋보이는 과즙미가 넘치는 작품이자, 샛노란 밝음을 자랑하는 영화다. 이야기는 ‘아멜리에’라는 여자 주인공을 필두로 진행된다. 어린 시절 ‘딸이 심장병을 가지고 있다’는 아버지의 오해로 인해 성인이 될 때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집안에서만 보낸 아멜리에는 다소 독특한 사고를 가진 어른으로 자란다.


그녀는 독립한 후 카페에서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영화는 성인이 된 아멜리에와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3) 아멜리에 1.jpg



혼자 놀기의 달인인 아멜리에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이상한 행동을 펼친다.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들 모두가 그녀의 엉뚱한 행동에 피식 피식 웃음을 지을 테다. 공중 전화기에 전화를 걸고, 커플을 만들기 위해 이리 저리 뛰어다니고,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을 질주한다. 아버지의 인형을 세계 각지로 여행 보내고, 우연히 주운 추억이 깃든 상자의 주인을 찾기 위해 사방팔방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이렇게 영화 속을 종횡무진 활보하는 그녀를 보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궁금증 하나.


“굳이 왜 저럴까?”

“굳이 저렇게까지?”



4) 아멜리에 2.jpg
 


이 영화는 오드리두트의 톡톡 튀는 연기와 노랑과 초록 톤이 이루어진 밝은 색감, 아멜리에 특유의 재기 발랄한 매력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내면의 고독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아멜리에의 모든 행동에 묻어 있는 엉뚱함의 기저에는 외로움을 떨쳐 내기 위한 그녀만의 노력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5) 어린 아멜리에.jpg
 


초반부에서 어린 아멜리에는 다양한 혼자 놀기 방법을 시도한다. 동전을 굴리고 종이를 불고 풀피리도 분다. 상상해보라. 에너지가 넘치는 어린 아이가 집 안에서 얼마나 외롭고 심심했을까? 아멜리에는 어린 시절부터 내면에 외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나 자유로운 성인이 되어서는 그녀 특유의 에너지를 발산하며 내면의 외로움을 잊어 나간다.


그녀의 이름이자 영화 제목인 ‘아멜리에’의 원래 어원은 불어 améliorer 인데, ‘개선하다’, ‘향상시키다’라는 뜻이 있다. 아멜리에는 이름처럼 스스로 내면의 공허를 다양하게 채워 나간다.



6) 아멜리에 3.jpg
 


그렇다고 그녀의 노력이 애잔해 보이거나 안쓰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녀는 늘 에너지가 넘치고 심지어 그녀 주변 인물들의 외로움을 함께 풀어 나가기도 한다.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 평가받는 지점은 바로 여기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인 환경과 성격에 의해 그 크기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면에 외로움이 존재한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사정과 이유로 점철된 공허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아멜리에는 그 내면의 외로움과 공허를 저 멀-리, 가뿐하게 발로 차버린다. 그리곤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또 다른 엉뚱한 행동을 저지른다. 영화가 끝날 때쯤이면 고개를 갸웃거리던 사람들도 이런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결국 영화 <아멜리에>는 프랑스의 한 소녀가 자신의 외로움을 극복해나가는 이야기다. 다소 엉뚱하고 발랄한 소녀의 일상을 따라 가다 보면 어느새 웃고 있는 그런 영화. 가슴이 먹먹해지는 외로움의 순간이 찾아올 때 우리는 소녀를 만나야 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 동화 같은 색감 뒤에 숨은 강렬한 이야기



7)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 포스터.jpg
 


사실 색감하면 바로 떠오르는 영화는 이 작품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아마 다들 이 영화를 떠올리면 가장 떠오르는 색이 있을 것이다. 엘리베이터의 강렬한 빨간색, 호텔 직원들의 제복과도 같은 진한 보라색도 좋지만, 나는 아무래도 호텔의 외관을 나타내는 솜사탕과 같은 연한 핑크색과 하늘색의 조합을 가장 먼저 떠올리곤 한다.



8) 로즈쿼츠 세레니티.jpg
 


이 색은 팬톤에서 2016년 올해의 색으로 지정한 로즈쿼츠와 세레니티 색 조합과도 유사한데, 마치 마시멜로우와 사탕, 아이스크림 등 부드러움을 연상시키는 색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부드러운 외관과는 다르게 강렬한 색이 돋보이는 내부 모습을 지니고 있기에, 반전과도 같은 강렬한 색의 대비는 영화의 분위기와도 썩 잘 어울린다. 이 영화는 코미디이면서 동시에 미스터리 장르에 속하고 가벼운 듯 예쁘게 정돈된 영상미 속에 진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반전과 대비로 가득 찬 아주 흥미로운 작품이다.



9) 부다페스트호텔.jpg
 


이야기는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라는 책을 든 한 소녀가 등장하고 이어서 책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등장한다. 영화는 이 작가가 보고 들은 내용을 필두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중요한 건 이 작가 역시 ‘제로 무스타파’라는 호텔 주인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는 점이다.


시간을 거슬러, 이야기는 제로가 벨보이로 그랜드 부타페스트 호텔에 근무하던 시절에서부터 출발한다. 당시 지배인이었던 구스타브는 매우 유능하고 낭만적인 인물로 호텔을 찾는 귀부인들을 담당했는데, 어느 날 호텔의 주요 고객인 마담 D가 갑작스레 살해 당하면서 스토리가 진행된다.



10) 엘레베이터.jpg
 


이 영화는 줄거리만 보면 완벽한 추리극이자, 미스터리, 탈출물이다. 범인으로 오해받는 구스타브, 그를 구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는 제로, 두 명이서 진범을 찾아 나가는 과정은 아무리 보아도 추리극의 형태를 벗어나지 않지만, 재미있는 지점은 이 과정을 그려내는 방식이다.


화면은 급박한 서사와는 다르게 늘 잔잔한 것으로 모자라 완벽한 구도와 아름다운 색감을 그려낸다. 이 어울리지 않을 듯 자연스러운 대비가 이 영화를 즐기는 묘미가 된다.



11) 구스타브.jpg
 


영화에 대한 해석은 무척 다양하다. 이 부다페스트 호텔의 배경이 동유럽과 서유럽이 만나는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가상의 국가 ‘주브로브카’라는 점, 시점이 두 전쟁을 사이에 둔 시기라는 점에서 당시 유럽의 정황과 관련된 해석이 많이 나온다.


2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기 전 문화적으로 풍요로웠던 낭만 주의 시대에 대한 향수를 그린 작품, 독일의 나치즘과 홀로코스트를 비유적인 기법으로 조용히 비판하는 작품, 강렬한 서사를 동화 같은 매력으로 풀어낸 작품 등 여러 평가가 있는데, 다양한 평가만큼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은 상당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화면 비율과 풍부한 색감, 숨막히는 서스펜스가 어우러진 다채로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한 번쯤 놀러가볼 만한 곳이다.



[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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