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재주는 곰이 부리고 [문화전반]

돈은 곰에게 가지 않는다.
글 입력 2019.08.0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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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불법 복제 및 배포를 금지하는 경고를 본 건 아주 어릴때였다. 그때는 DVD보다 비디오테이프를 더 자주 봤는데, 만화방에서 빌려보거나 사서 볼 때마다 처음에 비디오테이프 모양의 캐릭터가 나왔다. 음률을 듣고 즐거워하던 캐릭터는 끼익하는 소리가 나오자 괴로워한다. 영상 마지막에서, 캐릭터는 불법 비디오 추방은 건강한 사회의 기본입니다, 말하며 끝난다.





비디오의 시대가 가고 CD의 시대, 그리고 이젠 VOD의 시대까지 왔지만 불법 복제에 관한 문제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불법적으로 웹툰을 기재하는 사이트 여럿이 적발되어 큰 파장을 주기도 했다. 대부분, 저작권이 있는 영상, 음악, 만화 등의 예술 작품을 불법 복제 및 배포하는 행위는 법에 따른 제재를 가하면 수그러들다가 다시 어느새 슬그머니 머리를 내민다.


다행히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많이 높아져 어떤 예술 작품이든 정당한 금전을 지불하고 보려는 사람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월정액, 혹은 개별 판매하는 넷플렉스, 왓챠, 옥수수 등의 다양한 앱이 등장했다. 웹툰 시장도 무료였으나 일정 기간이 지난 이후 유료로 바뀌는 형식을 취하거나 애당초 유료로 올리는 일이 늘었다.  불법 복제 및 배포를 막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재주는 곰이 부리는데 돈은 사람이 받는 일을 최대한 방지하고, 예술가 개개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유튜브를 보면 개인이 하는 방송이 주를 이룬다. 먹방, 미술 작품 만들기, 사연읽기, 요리하기, 서핑, 삶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유튜브에서 누군가가 콘텐츠로 다루고 있다. 다소 애매한 부분은, 기존에 있는 영상이나 게임을 요약하여 혹은 여과 없이 보여주는 방송이다.

 

모두가 잘 아는 콩쥐팥쥐 이야기로 예를 들어보자. 영화 ‘콩쥐팥쥐’가 개봉하고 한참 지나면, 누군가 유튜브에 ‘인간장이 된 계모 이야기’처럼 흥미를 유도하는 자극적이고 영화 내용을 압축한 제목을 붙인다. 어떤 것도 제목이 될 수 있지만 대부분 영화의 본래 제목인 ‘콩쥐팥쥐’가 들어가지는 않는다. 영상은 영화의 큰 줄기 부분을 간추려 10분에서 15분 정도로 압축한다. 콩쥐가 어머니를 잃는 장면, 계모와 새언니에게 학대받는 장면, 그러나 꿋꿋이 살아가는 장면, 수많은 일에 좌절하는 장면, 조력자가 나오는 장면, 소와 참새, 두꺼비가 도움을 주는 장면 등등이 흘러나오는 동안 유튜버는 잘린 이야기의 부분을 자신의 목소리로 채워 넣는다.


옛날옛날에 콩쥐가 살았습니다. 마음씨 좋은 콩쥐는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는 새어머니와 혼인을 합니다, 하는 식이다. 결말은 출발 비디오 게임처럼 어떻게 될까요라며 끝나는 영상도 있지만 대부분은 결말까지 모두 알려준다. 2시간짜리 영화를 쭉 볼만큼 시간 여유가 없지만 영화를 보고 싶거나 시간을 때우고 싶은 사람은 ‘인간장이 된 계모이야기’ 영상을 시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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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수업 발표에서 학우가 영화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일이 있었다. 영화를 분석하고 장단점, 이 영화에서 수업의 내용을 대입할 수 있는 부분 등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영화의 줄거리를 알려주었다. 사진과 글이 같이 있었고 필요한 장면은 영상을 삽입하기도 했다. 꽤 재미있어 보였던 나는 언젠가 그 영화를 봐야지, 생각하면서도 이미 영화를 다 본 기분이 되어 찾아보지 않았다.


그러다 다른 수업에서 과제를 제출해야 할 때 전에 발표에서 들었던 영화의 줄거리가 도움이 될 것 같아 영화를 시청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본 영화는 발표할 때 들었던 것과 매우 달랐다. 줄거리는 똑같았지만 영화를 설명해주던 발표자가 느낀 감정과 내가 영화를 직접 보며 느낀 감정이 달랐다. 줄거리를 세세하게 설명했음에도 실제로 보는 영화는 지루하지 않고 되려 그때 들은 줄거리가 이해를 도와주었다.


그러나 또 다른 수업에서 누군가 다른 영화를 설명하며 줄거리를 말한다면, 흥미를 느껴도 그 영화를 찾아보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보통 발표에서 영화 줄거리를 설명할 때엔 불가피하게 큰 반전 요소, 주요하게 넣어둔 캐릭터의 감정선,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말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학교 때의 일화를 떠올리며 두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줄거리와 영화 장면, 대사까지 모두 다 나오는 유튜브의 영화 요약정리 영상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실제 영화는 보지 않을 것이다. 두번째, 아무리 콘텐츠 제작자가 개인적인 의견 없이 스토리만 정리해 올린다고 해도 실제 영화를 볼 때와 감상평은 다를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요약본만 시청한다면 영화 제작자의 의도나 내용 등을 왜곡해 받아들일수 있다.

 

영화만의 이야기일까. 게임 실황의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나오는 경우가 많다. 몹시 재미없는 부분을 잘라내기도 하지만, 그럴 땐 보통 실시간으로 시청자와 소통하며 즐긴 게임을 간추려 올리는 경우다. 몇 번이고 다시 해도 질리지 않는 ‘애니팡’ 부류의 게임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스토리 게임의 경우 이야기가 다르다. 나보다 게임을 더 잘 하는 사람이 스토리 게임 ‘콩쥐팥쥐’의 큰 줄거리와 반전 요소, 숨겨진 이스터 에그, 결말까지 모조리 보여주면 게임을 못하는 내가 굳이 돈을 들여 스토리 게임을 살 필요는 없다.


게다가 혼자 게임을 할 때와 달리 콘텐츠의 제작자가 놀라는 모습, 우는 모습, 실수를 해서 당황하는 모습이나 게임을 해서 짜증 나는 모든 모습이 같이 들어가기 때문에 게임과 콘텐츠 제작자 두 명의 오락을 누워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즐길 수 있다. 그러니 게임 영상을 본 사람이 게임을 사는 경우는 드물다. 이미 게임에 들어간 요소와 묘미를 충분히 만끽했기 때문에 게임을 한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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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경우 시집은 잘 팔리지 않는데 시에서 힘주어 쓴 문장들은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시의 전체 의미와 무관하게, 감성적이거나 자신의 상황에 맞는 문구 몇 개를 가져와 사용하기 때문에 시의 맥락은 사라지고 공들여 쓴 시인의 노력마저도 빼앗는 게 된다. 때론 시구절 전체가 인터넷에 올라온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서점에 가서 시집을 읽는 긴 시간을 선택하기보다 인터넷으로 단번에 읽고 끝내는 걸 선택한다. 시가 아무리 좋아도, 어쩌면 좋을수록 시인은 가난해진다.

 

예술가는 고달플 수 있고 가난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을 빼앗긴 사람들은 확실하게 가난하다. 언제까지 예술은 배고프다는 거짓말 아래 자신의 노력을, 일의 대가를 빼앗겨야 하나. 기획서를 열심히 썼는데 상사가 멋대로 가져가 공을 가로채거나, 조별 발표를 혼자 다 준비했는데 미리 준비한 글을 읽고 발표만 한 아이가 교수님의 칭찬과 높은 점수를 받고,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는데 돈은 다른 사람이 모두 가로챈다면, 기분이 분명 나쁠 것이다.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창작물도 똑같다. 예술가는 고달플 수 있고 가난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가는 가난하다는 말이 창작물을 멋대로 앗아가 사용하면서 방어막으로 쓰면 안된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가지면 안 되는 것처럼.


혹자는 곰도 재주를 부렸지만 사람도 일했다고 말할 수있다. 영화를 편집하고 목소리를 집어넣는 일, 게임을 진행하며 모든 스토리를 깨고 이스터에그까지 살피는 일, 좋은 시를 탐색해서 그 중 괜찮은 구절을 사진에 담아넣거나 그림에 추가해 붙이는 일도 노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도 일했다고 해도 정작 곰은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받는 형태와 뭐가 다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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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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