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호크니 세계의 호크니 - 영화 "호크니"

호크니의 세계에 어서오세요!
글 입력 2019.08.07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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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화요일은 일명 '호크니 데이', 호크니로 가득찬 하루였다. 회사 일로 데이비드호크니전시 를 보고난 후, 일정이 맞아 저녁에 영화 <호크니> 시사회까지 경험한, 호크니로 시작해 호크니로 끝난 하루. 한 달 여만에 다시 만난 서울에서 호크니만 보고 돌아온 셈이었다.

호크니, 호크니, 호크니. 지금은 전시가 끝나서 아마 덜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이 작가의 이름을 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름은 몰라도 아마 아래의 그림, <더 큰 첨벙>은 한 번쯤 지나가다 보았을 것이다. 한국에선 한번 인기를 몰이를 하면 폭풍처럼 번져 나가기에, 웬만큼 둔하지 않고서야 그를 모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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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첨벙 (A Bigger Splash)_ 1963



그렇다면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인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어떤 사람일까? 호크니를 상상하면 '호크니 세계의 호크니'란 단어가 떠오른다. 호크니는 너무나 독특해서 그저 호크니의 이름을 딴 세계가 존재할 것만 같다.


호크니 세계에는 예술가들만이 살아간다. 그들은 모두 금발이다. 모두가 금발로 태어나지는 않지만, 모두가 금발로 염색해야만 한다. 금발은 즐거우니까. 또 호크니 세계의 예술가들은 담배를 신봉한다. 담배는 인생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자, 삶의 근원이다. 그리고 그들은 늘 새벽 2시에 무언가를 결심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새벽 4시는 무언가를 결심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니까.



호크니의 세계는 대략 이런 느낌이 아닐까? 마치 '호크니 세계에 어서와' 라는 말을 전하는 듯한 이 작품은 3000장의 사진을 이어붙인 커다란 드로잉이다. 호크니는 굉장히 다변적인 스타일과 안주하지 않는 작품 경향으로 유명한데, 끊임없이 변화하는 작품 스타일과 본질을 꿰뚫어보는 시선, 단순한 외곽 아래 숨겨진 디테일하고 세밀한 선의 밀집, 자연의 색을 능가하는 독특한 컬러감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


그래도 어렵다면 한 가지만 기억하라. 현존하는 화가 중 두 번째로 비싼 화가! (그의 작품 <예술가의 초상>은 1019억에 낙찰되었다. 현존 화가 중 최고가의 작품은 제프쿤스의 <토끼>, 1085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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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_2017


영화와 미디어에서 만나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첫 인상은 영국 드라마에 나오는 똘똘한 괴짜 소년같다. 동그란 안경에 작은 체구, 번쩍이는 금발, 어딘지 모르게 사차원인 인물. 그러면서도 친구들은 많다. 친구들은 그를 독특하게 생각하지만서도 '원래 저런 친구'라면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오묘한 인물. 젊은 날의 호크니는 정확하게 이 캐릭터에 들어맞는다. 그는 철저하게 괴짜이지만, 세상과 소통할 줄 아는 유능한 예술가였다.

영화 <호크니>는 본인과 다양한 지인들의 인터뷰, 작품에 대한 뒷 이야기, 호크니의 과거사를 중심으로 그의 삶을 재조명한다. 시간 순서가 아니라 뒤죽박죽 순서가 섞여있는 점은 사전에 지식이 없다면 다소 헷갈릴 수 있기에 영화와 함께 호크니의 일대기를 그린 책 《다시 그림이다》를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영화의 분위기가 꽤나 진지해서 호크니를 탐구하려는 사람들에겐 꽤 친절한 지표가 될 것이다. 다만 메모는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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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항상 새로움을 추구했고, 변주되는 다양한 스타일 속에 당시 그의 철학과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호크니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제 2의 앤디 워홀을 보는 듯 했다. 탁 튀는 금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혁신성, 안주하지 않는 전진 등. 워홀이 2000년 대 이전의 미술계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듯, 호크니 역시 그 정도의 파워를 지닌 예술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기 직전에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에 다녀왔기에, 영화는 전시에서 본 작품들의 뒷 이야기를 바로 바로 풀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전시와 영화를 통해 호크니에 대해 받은 전체적인 인상은 아래와 같다.



1.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단순화하는 능력


호크니의 작품들 대부분은 선이 깔끔하고 심플하다. 화려한 색채가 얹어져도 전체적인 구도가 흐트러짐 없이 정리된 느낌을 주는 것은 호크니 특유의 정리된 펜선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2.

단순한 구도 아래 숨은 치밀한 묘사


예를 들어 <더 큰 첨벙> 등의 수영장 시리즈는 포스터처럼 찍어낸 기법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품을 이루는 미세한 펜선들을 볼 수 있다.


3.

자연스러운 듯 독특한 색에 대한 감각


나무에 형광 파란색을 칠한 다거나, 자줏빛이 감도는 그랜드 캐니언 등은 상상도 못한 색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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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그랜드 캐니언_1998


이 작품을 실제로 보고선 거의 탄성을 내질렀는데, 심해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색감이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끈다.

또한 그는 흑백사진으로만 작업을 진행하곤 했는데, 흑백 사진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사진에서 보이는 색과 실제의 색은 다르다는 답변을 했다. 그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색을 실제로 믿었고 이를 바탕으로 작품의 내면 세계를 투영했다. 이 발언에서 그가 가지는 독특한 색 철학을 알 수 있다.



​4.

공간과 시간에 대한 독특한 관념



시간은 실재하지만,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시간이 스치는 공간은

독특한 존재이며

덕분에 공간은

매 시간마다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 전제를 아래에 깔고 호크니는 공간을 벗어나는 다양한 시도를 한다. 프레임이 되는 캔버스를 자르고 붙이며 전통적인 프레임을 거부하고, 프레임 속에 유리 구조물을 끼워넣어 관객에게 더욱 더 적극적인 작품 개입을 유도하기도 한다.

그의 공간 관념 중 가장 유명한 특징은 소실점의 상실인데, 소실점이란 쉽게 망해 시선이 모이는 지점이다. 그의 작품 속에 소실점이 없다. 그의 작품은 관객이 작품 앞에 서면 비로소 완성되는데 관객의 좌우, 위 아래의 시야를 작품이 둘러싸면서 마치 실제로 작품 속 세계를 보는 듯한 공간감각을 주는 특징이 있다. 특히 <더 큰 그랜드 캐니언>과 같은 큰 작품들일수록 그런 효과가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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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니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은 카메라를 이용한 포토 콜라쥬 작품 경향이다. 앞서 언급했듯 그는 독특한 시공간 개념은 가지고 있었는데 카메라는 여러 시간을 담은 공간을 붙잡아 두기에 매우 적절한 도구였다.


그가 여러 장의 사진을 이용해 만들어내는 하나의 풍경은 현실과는 다른, 각각의 시간이 담긴 일종의 시간 기록물이다. 각 사진마다 빛의 구도와 양, 각도와 시선이 달라져있기에 60장으로 이루어진 포토 콜라쥬 작품은 60개의 시선이, 100개의 사진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100개의 시선이 담겨있는 셈이다.


영화 속에서 포토 콜라쥬에 대한 설명이 한창일 때

속으로 조용히 지나가는 말들을 되뇌었다.


여러 장의 사진,

그 안에 담긴 여러 개의 시간,

그 속에 담긴 여러 겹의 공간,

그 속에 담긴 여러 겹의 시선


그가 가진 시공간 철학은 아주 가뿐히

일반적인 규칙을 넘어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5.

물에 대한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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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니가 지닌 또 다른 특징은 물에 대한 사유다. 이 특징은 특히 LA에서 그려진 수영장 시리즈에서 두드러지는데 물에 대한 호크니의 발언은 꽤나 인상깊다.


물은 눈에 보일 때 다면적으로 존재한다. 물 표면 자체, 물에 비치는 잔상, 물 속의 모습 등 다양한 형태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이는 하나의 형태가 다면적으로 존재하는 현실과 닮아있다.



이 말로 미루어 보건대, 물은 호크니의 예술 세계를 단번에 반영하는 소재가 아닐까 싶다. 그가 가장 존경하던 과거의 화가는 피카소, 큐비즘의 대가다. 피카소는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기'로 유명한 화가인데 그가 추구하던 예술을 (아주 아주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눈을 넘어선 다면적 본질에 대한 이해다.


피카소가 도형으로 이를 풀어냈다면, 호크니는 다양한 구도와 물이라는 소재를 활용해 조금 더 현실적으로 접근한다. 물은 정적이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동적인 존재이기에, 모순이 난무하는 변화무쌍한 세상을 잔잔히 드러내기에 아주 적격인 소재다.



예술가의 초상 (Portrait of an Artist - Pool With Two Figures, 1972).jpg
 


초기에는 선들이 마주보며 춤추는 듯한 느낌으로, 햇살을 받으면 노란 빛이 도는 물결로 표현해내던 물에 대한 묘사는 <예술가의 초상>에서 절정을 이룬다. 오랜 연인 피터와 헤어지고 나서 그린 그림으로 유명한 이 작품은 조용히 연인 피터를 내려다보는 시선에서 연인을 잃은 그의 슬픔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다. 유영하는 물처럼 잔잔히 흐르는 슬픔을 절제된 톤으로 드러내고 있다. (앞서 언급한 1019억짜리 작품이다. 현존 작가의 작품들 중 2번째로 비싼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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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니의 특징은 이외에도 다양하다. 아이패드를 활용한 드로잉부터 여러 형태의 펜화, 여러 캔버스를 이어 붙인 작품들과 사진에 그림을 덧씌운 작품들까지. 그는 호크니 세계에 사는 호크니다. 흐크니 세계에 사는 예술가들은 다양한 형태의 분신들이고, 데이비드 호크니라는 작가가 추구하는 여러 예술관을 반영하는 개체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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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니의 한 지인은 그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그려야 하는 것을 그리는 화가.

여러 매체는 그를 이렇게 평가한다.

존재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되어 버린 화가.


*


영화 <호크니>는 그런 화가를 그리는 영화다.

전시의 여운을 느끼고 싶다면,

전시를 놓쳐 아쉽다면

꼭 봐줘야 하는 영화.



[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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