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떻게 사랑이 같나요? - "수수께끼 변주곡" [도서]

글 입력 2019.08.0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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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편의 사랑 이야기를 읽고




변주 - (명사) 어떤 주제를 바탕으로, 선율ㆍ리듬ㆍ화성 따위를 여러 가지로 변형하여 연주함. 또는 그런 연주.



다섯 편의 사랑 이야기를 읽었다. 각각 다른 스토리를 지니고 있지만 교차되고 그럼에도 완벽하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왜 수수께끼 변주곡인지 이제 알겠다. 이야기가 변주되고 있구나. 그것을 깨닫곤 제목과 내가 읽으며 느낀 바와 겹쳐져 더 흥미로웠다.


작가는 결국 사랑으로 관통되는 하나의 책을 썼지만 서로 다른 형태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네 사랑처럼. 어떤 사랑은 그저 설레고 어떤 사랑은 미스터리하다. 어떤 사랑은 오래도록 끈질기게 반복되고 또 어떤 사랑은 안개같이 잡히지 않는다.


그런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수수께끼 변주곡』이라는 책 안에 담겨있다. 이 책은 『그해, 여름 손님(call me by your name)』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 ‘안드레 애치먼’의 또 다른 작품이다. 불과 며칠 전 영화 <call me by your name>을 보고 글을 썼던 터라 책을 읽으며 영화의 잔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아니었지만 신기하게도 같은 작가의 작품을 두 차례 연속으로 접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예술 세계를 깊게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여러 작품을 연속해서 빠져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래서인지 ‘안드레 애치먼’의 작품에 대한 색이나 결을 마음속에서 조금이나마 정리할 수 있었다.


‘안드레 애치먼’의 작품에서 개성 있다고 생각한 부분은 여러 개가 있다. 먼저 상대에 대한 화자의 심리 묘사가 굉장히 섬세하다고 느껴진다. 여기서 두드러지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감정뿐만 상대를 좋아함으로써 화자가 가지는 자기 혐오감이나 불안함, 혼란스러움과 같은 조금 어둡고 깊숙한 감정들이 세밀한 표현으로 묘사되어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사랑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사랑에 있어 낭만은 찰나일 뿐 사랑으로 인해 생기는 호기심, 두려움, 슬픔, 걱정들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 과정들을 겪어내는 것이 본디 사랑이다. 그의 작품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은 휘몰아치는 감정들이 잘 묘사되어 빠져들도록 한다.


또한 작가의 두 작품은 남성과 남성의 사랑에 대한 시선을 내게 만들어주었다. <call by your name>과 『수수께끼 변주곡』을 만나기 전 나는 퀴어 작품에 대해 낯설었고, 그뿐만 아니라 다양성에 대한 존중의 시선도 없었다. 한 번도 내 삶에 끌어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접하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이니 어떤 감정을 가지거나 판단을 내리기에 나는 겪어본 것이 너무 없었다. 그러나 작가의 두 작품을 본 뒤 ‘사랑’의 감정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인간과 감정이라는 본질 아래 그 어느 것도 이상하거나 궤도를 벗어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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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랑이 같나요?



그의 작품은 어딘가 모르게 설익은 청량함의 기운이 맴돈다. 소설 속 표현을 빌리자면 ‘한여름 오후의 향기’.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농익은 지루한 사랑의 시간을 겪어내는 작품들이 아니라 늘 누군가를 열망하고 바라보는 마음의 호소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기운을 감싸 안고 다섯 편의 작품은 사랑이라는 본질 아래 변주가 되고 있다.


『수수께끼 변주곡』은 <첫사랑>을 시작으로 하여 <봄날의 열병>, <만프레드>, <별의 사랑>, <애빙던 광장>까지 총 다섯 편의 작품으로 이뤄져 있다. 각각의 작품은 어른이 되어서도 사랑 앞에 서면 늘 소년과 같은 열망을 지닌 ‘폴’이 이야기를 이끈다. 욕망과 형태가 달라지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며 마치 변주하듯 사랑이 그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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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편의 이야기 중 가장 먼저 나온 <첫사랑>에서는 <call me by your name>의 두 주인공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두 작품 속 다르지만 비슷한 주인공 두 명의 관계와 영화의 장면들이 교차되어 이야기를 생생히 펼쳐냈다. 풋풋한 십 대의 첫사랑을 함께 경험하고 있는 듯한 묘사는 우리의 가슴 아프게 하고 햇빛을 머금은 휴양지의 모습은 저절로 그려진다.

첫사랑에서 가장 여운을 주는 부분은 폴의 아버지와 폴이 어릴 적 사랑하던 상대가 사실은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깨닫곤 폴이 어떠한 충격이나 질투를 느끼지 않고 담담하게 아버지와 닮았다며 지난 시절을 회고하는 모습이 이상하게 내겐 따뜻하게 느껴졌다. 폴이 진정 그 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첫사랑> 이후 <만프레드>가 나를 사로잡았다. 마치 기나긴 편지를 읽는 듯했다. 다른 단편과 다르게 여기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백하듯 1인칭 시점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오직 ‘폴’의 입장에서 ‘만프레드’를 바라보고 원하는 격렬한 고백은 뒤엉켜있는 그의 감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어 책을 덮은 뒤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또한 『수수께끼 변주곡』에서 ‘만프레드’라는 인물의 존재 역시 누구보다 강렬할 것이다. 단순히 테니스 파트너로 등장하던 그가 중심인물 ‘폴’에게 다양한 역할로 끝까지 등장하니 각각의 작품이 그의 존재로 서로 이어져 작품에 재치를 부여하는 요소였다.


다섯 편의 사랑 이야기를 연속해서 읽으며 사랑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 생각한다. 공식처럼 존재하는 사랑의 단계와 사랑에 빠진 자들의 역할 관계는 사실 멀리서 보면 비슷할 뿐 다 다른 이야기이지 않을까. 겨우 다섯 편의 작품 속에서도 너무나 다른 형태의 사랑이 존재했다.


열망, 가벼움, 순수함, 동경, 익숙함, 지루함.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있지만 각각이 끌고 가는 관계는 결국 너무나 다른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사랑을 누구보다 면밀히 표현하는 작가이기에 짧은 단편 다섯 개가 엮어 내게 주는 메시지는 낭만보다 더 큰 것이 사랑의 형태였다. 사랑의 다양한 모습과 목소리를 관찰하고 재치 있게 표현한, 즐거운 작품이었다.




책 소개


애치먼은 흥분되도록 아름다운 글을 쓴다. 이 책을 다 읽는 순간 바로 그리워질 것이다. 그는 자신을 내려놓고 완전히 몰입하여 생생히 살아 있는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 폴 리스키, 《뉴욕 타임스》



여름이면 가족과 함께 남부 이탈리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열두 살 소년 폴. 어느 날 별장을 찾아온 목공 조반니(난니)를 만난다. 어머니가 앤티크 책상과 액자 두 개를 복원하기 위해 부른 터였다. 그 후 가족의 눈을 피해 그의 작업실을 드나들며 동경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뉴욕 매거진이 선정한 '21세기 가장 흥미로운 신소설 작가' 안드레 애치먼의 《수수께끼 변주곡》은 어른이 되어서도 늘 소년 같은 사랑을 탐하는 화자(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작가는 남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사랑의 감정을 〈첫사랑〉 〈봄날의 열병〉 〈만프레드〉 〈별의 사랑〉 〈애빙던광장〉 다섯 편의 이야기를 통해 각기 다른 독특한 문체로 마치 변주곡을 연주하듯 흥미롭게 펼쳐 나간다. 색도 모양도 다른 온갖 꽃들의 사랑과 욕망이 조화롭게 뒤섞인 꽃다발처럼.

한편 작가는 다섯 편의 이야기를 남부 이탈리아 해변 마을, 눈 덮인 뉴잉글랜드, 센트럴파크의 테니스코트, 이른 봄 뉴욕의 거리 등 시간과 공간에 따라 사람 사이의 불가해한 욕망의 조각을 발견하고 생생하게 서술하는데, 각각 하나의 소설로 봐도 좋을 만큼 독립된 완성도를 보여 준다.


그를 쳐다볼 수도 없었다.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눈이 너무 맑았다. 그 눈을 만지고 싶은 건지, 그 안에서 헤엄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 본문 중에서




저역자 소개


지은이 안드레 애치먼 André Aciman

1951년 1월 2일 이집트 출생. 뉴욕대학에서 작문을 공부하고 프린스턴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가르쳤다. 지금은 작가로 활동하는 한편 뉴욕시립대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강의하며 가족과 함께 맨해튼에 살고 있다. 1995년 회고록 《아웃 오브 이집트》로 화이팅 어워드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고, 1997년 구겐하임 펠로십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며, 2007년 《그해, 여름 손님》으로 람다 문학상 게이 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저서는 《아웃 오브 이집트(Out of Egypt)》 《폴스 페이퍼스(False Papers: Essays on Exile and Memory)》 《프루스트 프로젝트(The Proust Project)》 《그해, 여름 손님(Call Me by Your Name)》 《여덟 개의 하얀 밤(Eight White Nights)》 《알리바이(Alibis: Essays on Elsewhere)》 《하버드광장(Harvard Square)》이 있다.


옮긴이 정지현

대학 졸업 후 미국에 거주하며,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소설과 아동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해, 여름 손님(Call Me by Your Name)》 《스위밍 레슨》 《셰이프 오브 워터(공역)》 《에이번리의 앤: 빨간 머리 앤 두 번째 이야기》 《피터 팬》 《오페라의 유령》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호두까기 인형》 《비밀의 화원》 《하이디》 《핑크 리본: 세계적인 유방암퇴치재단 코멘 설립자의 감동 실화》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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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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