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산의 종결 [음악]

글 입력 2019.07.27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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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분산되고 있다


음악은 분산되고 있다.


장르를 대표하는 밴드들이 있다면, 지금은 다양한 밴드들이 개성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누가 뛰어나고 누가 많이 팔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여기에는 소비자들과 음악시장의 변화가 크게 작용했다. 아이팟이 등장하고 음악은 LP와 CD가 아닌 스트리밍이라는 형태로 소비되었다. 무게를 잃고, 저장공간의 한계를 돌파했다.


무한에 가까워졌다. 이 과정은 누구나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한 아티스트, 한 밴드만 파기에는 많은 음악이 눈앞에 있고, 더 좋은 음악, 더 취향에 맞는 음악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2000년대 후반 유튜브가 주도권을 잡고 나서는 음악을 검색하고 듣는 것이 무료가 되었다. 스트리밍 사이트도 이에 질세라 팬심을 이용한 음원차트, 통신사 할인을 필두로 소비자들에게 좀 더 싼 가격으로 음원을 들으라고 유혹하고 있다.

음악은 희소성을 잃었다. 분산된 취향과 배경음악이 된 음악은 희소성과 거리를 둔다. 어디서나 흘러나온다. 쉽게 들을 수 있으니 깊게 알고 싶지도 않고, 자기만 좋으면 된다. 이러한 개인화 과정에서 ‘본인 취향의 가수를 만나고 싶다’는 욕구도 생긴다. 처음에는 전곡을 소장하고, 전집을 소유하고, 포스터를 모으며, 콘서트를 방문한다. 아이돌은 이러한 논리에 이미지(얼굴)까지 구체화한 상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아이돌은 자신들의 파편(다른 버전의 앨범, 포토카드, 리패키지, 사인회 등)을 양산한다.


팬들은 가수의 파편을 다 모으면 그 가수와 더 가까워지는 듯한 묘한 환상에 빠진다. 2010년대 중반부터 앨범 판매량이 증가한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가수들의 파편을 모두 모으고자 하는 팬들의 소유욕이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다. 이런 상술 없이 가요계가 CD만을 의존하며 지나갔다면 앨범 판매 지표는 바닥을 기다 못해 지하까지 뚫었을 것이다. 판매량과 음원차트는 음악과 동시에 신뢰도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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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록 밴드(주로 메인스트림(mainstream)에 벗어난 인디밴드)는 이러한 상술에 밝지 못하다. 외국에서는 60년대 록 밴드가 리이슈(Re-issue), 미발표 앨범을 통해 영원을 얻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극히 드물다. 60년대 브리티시 인베이전 밴드가 지닌 위상이 지금의 아이돌 이상이었음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또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기보다는 과거의 명성을 이용해 재발매하는 것이 레코스사 입장에서도 이득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럴만한 록 밴드가 없다.


송골매나 산울림으로 대표될 수 있는 70, 80년대이지만 지금 세대들과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배철수는 라디오 DJ(사실 그것조차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 김창완은 친숙한 배우로 둔갑하여 있는 상황에서 한국 록 밴드는 과거조차 부정당하고 있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분산된 음악은 잊힌 음악까지 품지 못한다. 음악 추천 알고리즘이라는 것이 많이 듣는 음악을 기준으로 분석되고 추천되는 것인데, 한 번도 찾지 않은 음악이 추천되는 경우는 극악의 확률이다. 트로트만 듣는 사람에게 뜬금없이 슈게이징(shoegazing) 음악이 추천될 수 없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실수로 산울림의 <청춘>이라도 듣지 않는 이상 밴드는 과거와 단절될 수밖에 없다.

과거와의 단절은 록 밴드에게 치명적이다. 늘 새로운 밴드가 나올 수 없는 만큼 공백이 생기는데, 이 기간에 밴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찾아본다. 비슷한 밴드, 영향을 받은 밴드, 영향을 준 밴드, 컴필레이션에 같이 참여한 밴드 등. 예를 들어 플레밍 립스(The Flaming Lips)라는 밴드를 접해서 음악이 마음에 들었다고 치자, 비슷한 가수가 없을까 검색해보니 머큐리 레브(Mercury Rev)가 나오고, 영향을 준 시드 바렛(Syd Barrett)이라는 가수를 찾아서 들을 수 있다. 시드 바렛이 궁금해서 시간을 위로 올라가다 보니 밥 딜런(Bob Dylan)를 알게 되고, 그와 함께 작업했던 더 밴드(The Band)라는 그룹에까지 도착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밴드는 정적(正的)이다


 

우리나라에서 밴드는 정적이다.


몽니는 몽니로 끝나고 넬은 넬로 끝난다. 비슷한 성향을 지닌 브로콜리 너마저, 피아, 델리스파이스, 언니네 이발관, 자우림에서 멈춘다. 90년대 이하로 들어갈 틈이 없다. 이는 한국 내 외국 밴드에도 적용된다. 즉 다양성에 큰 흠집이 생겼고, 록의 지속력에 해를 가한다.


록 페스티벌이 처음 등장한 시절에는 국내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밴드들의 등장에 흥미로웠고, 그 명성에 압도되었지만 그때뿐이었다. 과거와 단절된 밴드는 새로움 없이, 똑같은 거물만 남은채 정체기에 들어섰다. 신인보다는 이름값이 최고의 가치가 된 것이다. 거물들의 이름만 찾는 풍습은 죽은 자도 되살리고 있다. 해체된 밴드가 돈을 벌기 위해 재결합되는 경우가 잦아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조급한 유통기한은 길 수가 없었다.

거물급 밴드는 한정돼 있는데, 부르는 곳은 많고 행사 주최자들은 섭외하는데 많은 돈과 시간을 쓸 수밖에 없었다. 적자는 필연적으로 다가왔다. 지산 록 페스티벌은 이미 2017년 종결된 상태로 사라진 록 페스티벌이었다. 섭외할 수 있는 자본을 가진 CJ E&M이 적자를 이유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2019년 부활을 예고했다. 디투글로벌컴퍼니라는 과거 지산 월드 록 페스티벌을 주최했던 곳이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1년이라는 공백과 섭외라는 행정력을 이어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라인업 구성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신뢰는 금이 갔고 애매함을 남기고 있었다. 확실하지 않고 애매하니까 티켓은 잘 팔릴 수가 없었다. 결국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주최 측은 개최 취소(포기에 가깝다)를 선택한다.



2017년 이미 지산은 종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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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이미 지산은 종결됐다.


그때를 끝으로 잊어야 했다. 미련을 두었기에 2019년 확인사살 당한 것이다. 외부적인 문제는 적자와 행정력의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록 밴드가 지니는 위상이 거물급게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것만 보면 록 페스티벌은 끝난다. 거물 밴드의 월드투어 공연과 다를 게 없다. 다른 밴드들에는 큰 관심이 없다. 오프너일 뿐. 거물은 더 큰 거물이 되고 새로움은 갈수록 줄어든다. 자원이 고갈된 시점. '록' 페스티벌의 의미는 없어졌다.



[노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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