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낯선 내게 익숙한 인사 건네기 - 미스 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 [도서]

글 입력 2019.07.2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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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나를 찾아가다(표지)-인쇄판4.jpg


상담도 받아 봤고, 글도 써 봤고, 악기도 배워봤다. ‘나를 찾는’ 활동이라 불릴 여러 활동을 해 봤지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꽤 생소한 일이었다. 못하면 안 하게 돼서 그런 건가, ‘미술’이라는 소재 자체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음악은 대중 예술을 통해 반강제적으로 친해지는 감이 있었지만, 나에게 ‘미술’은 굳이 미술관과 전시회를 찾아다니지 않으면 만나기 어려운, 조금은 외딴 분야였다. 그림으로 나를 찾는다는 생각 이전에, 나는 그림을 못 그린다는 생각이 있었다. 더군다나 미술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뭐랄까 미술은 나에게 ‘오르지 못한 산’ 같은 존재였다.


<미스 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는 내게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읽는 것 이상의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미술에 대해, 미술 치료에 대해 처음으로 마음을 열게 되었으며, 조금 웃기지만 소심한 열망 같은 것도 생겼다.

그림으로 나를 마주하는 것은, 다른 방식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나를 시각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상담과는 다르게 정말 나를 ‘마주할’ 수가 있었다. 또한, 그림은 대체로 추상적이기 때문에 언어로 정의되지 않는 것들을 표현할 수 있었다. 상당히 낯선 체험이었다.


*

챕터가 끝날 때마다 직접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하나씩 채워가다 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내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선 그리기, 회오리 그리기, 보통 사람들이 작정하고 할 만한 것들은 아니다. 따라 하면서도 계속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그릴 때는 웃으면서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린 후 점차 웃음기가 사라졌다. 자꾸 더 깊이 더 어두운 것을 표현하게 되는 게 두려웠다. 글을 쓰면서도 잘 마주하려 하지 않던 내면이었다. 그림으로 나를 표현하려 하니 통제가 어려웠다. 어디까지 솔직해져야 하는지, 어디까지 드러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페이지를 채울수록 벌거벗은 기분이 들었다.

말을 할 때는 아무리 생각을 그대로 말한다고 해도, 무의식중에 필터를 거치고 말을 한다. 글을 쓸 때도 언어 선택의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내 그림이 어떻게 해석될지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으로 솔직해지는 것 외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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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에 나오는 나답게 낙서하기.


Q. 나의 낙서를 다시 보고 떠오르는 단어들을 가능한 한 많이 적어보세요. 마음에 드는 단어는 동그라미, 불편한 단어는 별표를 해보세요.

A. 균열, 파편, 유리, 끝없는, 굴레, 상처(☆), 자유, 확신, 틈, 반복, 공간, 기억(ㅇ)



맨 처음 떠오르는 단어를 생각해내는 건 어려웠다. 낙서는 자유롭게 했지만, 단어는 정확한 정의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 틀에 갇혀서 자꾸 이건 아닌가 하며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한두 개의 단어를 적어 놓자 나머지 말들을 채울 수 있었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문득 떠오르는 단어들을 주로 적었는데, ‘상처’라는 단어 앞에서 멈칫했다. 힘든 일을 겪었지만 난 괜찮아, 라고 나를 세뇌하는 중이어서 그런지 속상했다. 왜 상처가 떠올랐을까 계속 생각했다.


*

‘나답게 낙서하기’ 페이지는 작가님의 블로그를 통해 작가님께 의견을 받을 수 있다고 돼 있었고, 나는 망설임 없이 작가님의 블로그에 글을 남겼다. 너무도 궁금했다. 내가 뭘 표현한 건지, 내가 어떤 상태인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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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답변


답답하고 완벽해야 하는 압박감. 나는 낙서를 하면서 꽤 자유롭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규칙에 얽매이게 됐던 것 같다. 괜찮아야 하고, 완벽해야 했던 나. 지금의 내 상태.

최근 꽤 큰일을 겪었지만 크게 울지 못했다. 분노하기에 급급해서 상처를 돌보지 못했고, 자존심이 상해 괜찮아야 했다. 그래서 폭발시키지 못했고, 폭발할까 봐 두려웠다.

그림을 그릴 때 자꾸 어디까지 솔직할지, 어디까지 드러날지 생각했던 이유도 그 두려움 때문이었다. 혹시나 폭발해버릴까 봐, 무언가를 계기로 참아왔던 게 와르르 무너질까 봐 조마조마했다. 미술 심리는 아는 바가 없어서 숨길 방도가 없었다.


책을 온몸으로 체험하기로 마음을 먹은 후, 그림을 조금 더 과감하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만다라 그리기의 경우 가장 솔직한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솔직해지면 솔직해질수록 그린 후에 더 편안해졌다. 꺼내는 게 어렵지 마주한 후에는 손쉽게 털어낼 수 있었다.

그림으로 나를 마주하면 계속해 곱씹어볼 수가 있다. 상담과는 다르게, 그림은 남는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다시 생각하고, 돌아볼 수 있다. 완전히 ‘직면’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어쩌면 가장 객관적으로 나를 알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나는 나를 마주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는 않지만, 솔직해지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매일 글을 쓰지만, 한정적인 표현을 쓰게 되고, 수시로 사색을 하지만 대부분 합리화로 끝나곤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나를 잘 안다고 자부해왔다. 내가 자꾸 나를 속이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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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이 생각하는 '낯선 나 마주하기'


낯선 나에 대한 거부감, 내가 피하려 했던 감정이었다. 책에도 반복적으로 나오는 말이지만,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한다.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보고 싶은 자신의 모습만 보려 한다. 그걸 진실이라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님이 말했듯이, 낯선 나를 수용하는 것은 세상을 받아들이는 일이고, 시야를 넓히는 일이다. 세상을 넓게 봐야, 넓은 세상에서 살 수 있다. 우리가 인식하는 것까지 세상이라고 <미스 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는 또한 말하고 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말로는 쉽지만 사실 주체성을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내가 그만큼 나를 잘 알고, 나를 똑바로 직면해야 그 후 세상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데, 나를 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은 자신에게 대는 잣대를 타인에게도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내가 나를 얼마나 수용하고 안아줄 수 있는지가 곧 내가 타인을 얼마나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나도 내가 불완전하고, 아파하고, 슬퍼하고, 절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약점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내가 나를 가둘수록 내 세상이 좁아지는 것뿐이다. 조금 더 나를 안아줘야겠다. 조금 더 나를 인정해주고, 수용해줘야겠다.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앞표지).jpg
 

그림을 통해 표현하는 것은 ‘대상’이라고만 생각했다. 현대미술을 모르고, 그림을 그려보지 않았기에 했던 생각이었다. <미스 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를 통해 그림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 하나, 색 하나에 화가의 마음, 심리, 상황 모든 게 담겨있는 것이 그림이었다.


미술치료를 접한 후 예술이 어떻게 언어가 되는지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말로, 글로, 행동으로 표현되지 않는 어떠한 감정을 그림으로, 시각적으로 담아낼 수 있었다. 같은 그림을 보고 사람마다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비슷한 떨림을 느낀 사람들은 그 언어에 공감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나의 그림을 보고 떨림을 느꼈다면,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겠지.

더는 미술이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더는 어렵거나 외딴 분야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림은 나를 표현하는 확실한 도구이다. 조금 더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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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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