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왜 이렇게 고릴라를 많이 그려요? :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展 [전시]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
글 입력 2019.07.22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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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hony Brow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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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hony Browne



사실 앤서니 브라운 작가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다. 아이들 동화책에 삽화를 그려 넣은 작가 정도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백하자면 전시에 대해 큰 기대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귀여운 그림 몇 점으로 지친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전시장은 내 예상보다 훨씬 크고 넓었다. 공간 연출에도 꽤 공을 들인듯했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귀엽고 아기자기한 영화 세트장에 온 느낌이었다. 아 참, 이번 전시 제목부터 행복 ‘극장’전이었지. 홍보 자료에도 ‘극장’이라는 컨셉이라고 적혀 있다. 사실 입구 말고는 극장 컨셉을 느낄 수는 없었는데. 전시장 내부에 영상 작업이 3점 정도 있었는데 어쩌면 극장 컨셉을 살리려 배치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림을 장식품처럼 걸어둔 것이 아니라, 작품별로 공간을 나누어 그 분위기에 알맞은 입체, 영상 작업까지 설치해두었다. 원화들을 실컷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달콤했다. 작품 수가 꽤 많아서 중간중간에 배치되어 있는 의자들이 고마웠다. 가끔 긴 전시장 길이에도 불구하고 앉을 의자 하나 없는 전시장은 정말 난감하다.


운 좋게 입장하자마자 스토리텔러 분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가끔 도슨트를 듣고 나면 작품의 방향, 의미가 한 가지로 고정되어 오히려 작품 보는 재미가 떨어질 때가 있는데, ‘스토리텔러’분이 작품의 고정된 의미보다는 작가와 관련된 에피소드, 비하인드스토리를 재밌게 이야기해주셔서 인상깊었다. 작가의 작품 의도를 좀 더 재미있게 들을 수 있으니 전시를 풍부하게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는 꼭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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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친구, Little Beauty 2008



앤서니 브라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뭘까?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지만 항상 앤서니 브라운 하면 고릴라를 떠올리곤 했으니 ‘고릴라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예술의전당 건물에도 큰 고릴라 현수막이 걸려 있다. 돼지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다. 돼지책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우리는 친구>는 미국 캘리포니아 한 동물원의 어떤 고릴라가 주인공이 되어 벌어진 두 가지 사건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다. 동물원 사육사가 고릴라에게 고양이를 친구로 선물했는데, 고양이가 죽자 고릴라가 깊이 슬퍼한 사건이 있었다. 앤서니 브라운은 이 사건에서 드러난 고릴라의 인간적인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두 사건을 조합하여 <우리는 친구>를 그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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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에 하나가 ‘왜 이렇게 고릴라를 많이 그려요?’라고 한다. 스토리텔러 분이 설명해주신 이유에는 총 3가지가 있는데, 작가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자기 가족에게는 매우 따뜻한 모습을 보이고 가족이 위험에 빠지면 공격적으로 변하는 모습이 아버지를 연상시켜서, 마지막으로 주름과 털 같은 다양한 텍스처를 가진 고릴라가 작가로써 표현하기 매력적인 동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업들을 보면 고릴라가 사람처럼 묘사되며 옷을 입고 있는 모습도 굉장히 많이 볼 수 있다. 고릴라만큼 우리와 닮은 동물도 또 없을 것이다. 작가가 그린 고릴라는 우리처럼 표정이 매우 풍부하다. 이 공간에는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가 등장하는 킹콩 영화도 상영되고 있으니 놓치지 말 것. 이 영화, 연출이 아기자기한 것이 아주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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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으로, Through the Magic Mirror 1976




앤서니 브라운은 르네 마그리트, 조르조 데 키리코,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을 좋아하고 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 속에서 초현실주의 대작들의 오마주를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앤서니 브라운은 낯설게 하기, 이미지의 변형, 공간의 왜곡 등 초현실주의의 여러 기법을 차용하여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거울 속으로 들어가 그림 곳곳에 숨어 있는 다양한 상징과 숨은 그림 찾기 등 신비로운 체험을 경험할 수 있다.



처음 이 작품을 냈을 때,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은 비판을 많이 받았다. ‘당신의 그림은 어린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어른을 위한 것이야.’ ‘당신의 작품은 예술성이 너무 짙어.’ 동화에 들어가는 작업에서는 그것이 비판받을 요소인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이 공간의 작업들이 제일 좋았다.


보는 즉시 이해되는 그림보다는 생각하게 하고, 질문을 던지게 하는 회화 작업들이 내 취향이라. 평소 르네 마그리트 그림을 좋아하기도 하고. 이미지가 예상과 다른 문맥에 있을 때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어떤 메타포로 장난을 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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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으로>의 주인공 토비는 따분한 일상을 보내던 중 거울에서 자신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 르네 마그리트 작품의 오마주이다. 토비는 이 마법거울을 통하여 초현실주의적 세계 안으로 들어간다. 우울하고 신비로운 거리에 장미 가로등과 오렌지 태양. 독자들은 틀에 박힌 일상을 넘어 상상의 현실 속으로 유영할 수 있다.



“They seemed a bit mixed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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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질거야, Changes 1990




앤서니 브라운은 여러 초현실주의 기법 중에도 특히 변형을 즐겨 썼다. <달라질거야>는 변형 자체를 주제로 한다. 앤서니 브라운은 확고히 체계화되지 않은 채 머릿속을 떠돌아다니는 생각 조각들로부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아이디어가 탄생한다고 믿었다. <달라질거야>는 주전자가 고양이로 바뀌면서 시작된다. 차갑고 딱딱하며 생명이 없는 금속성 물체가 정반대의 특성을 지닌 사물로 변형되는 것이다. 주인공 조셉은 집 안의 평범한 사물들을 바라보면서 이들이 무엇으로 변할 수 있을까 상상해본다.



나 또한 미대 입시를 준비했었고, 그 과정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얼마나 재밌으면서도 어려운 일인지 몸소 경험했다. 그림에 설명을 너무 많이 넣으면 관객이 해석할 여지가 사라져 그림이 재미 없어지고, 너무 본인의 언어만 넣으면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난해한 그림이 된다. 작가와 작품 그리고 관객 사이의 거리를 조정하는 것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만들어 내는 모든 이미지가 언어가 된다.

 

앤서니 브라운도 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세밀화를 그려왔던 앤서니 브라운은 아무 의미 없는 이미지는 삽입하지 않는다. 그의 그림을 보면 작가가 말하고자 한 이미지에 자연스레 집중하게 된다. 그림에 군더더기가 없다는 말이다. 본인이 강조하고자 하는 바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포스터 같은 그림이 되곤 하는데, 앤서니 브라운은 관객을 집중시키면서도 주변 이미지로 잔재미를 살리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여기서 앤서니 브라운에 대한 일화 하나 더! 앤서니 브라운은 미대를 졸업한 후에 병원에서 근무했다. 수술실에 들어가서 그 과정을 지켜보고 흑백으로 자세한 수술 과정을 스케치하는 업무를 맡았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빨간색인 이미지에서 어떤 것을 그려야 할지 몰랐다고 한다. 어떤 혈관을 그리고 어떤 혈관을 그리지 말아야 할지 트레이닝을 받은 후, 강조해야 할 부분과 강조하지 않아야 할 부분을 잡아내는 감각이 생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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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숨겨진 디테일들이

아이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지닌 상상력은 평범한 것들도

새롭고 낯설게 보이도록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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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hony Browne




꿈꾸는 윌리, Willy the Dreamer 1997




<꿈꾸는 윌리>는 꿈에 대한 책이다. 앤서니 브라운은 아이들이 책을 통하여 꿈을 이루길 원했다. 윌리를 주인공으로 하여 한 장 한 장 다른 꿈을 그렸다. 첫번째 꿈에서 윌리는 영화배우다. 그 다음으로는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가수가 되기도 한다. 앤서니 브라운은 <꿈꾸는 윌리>를 가장 즐겁고 자유로웠던 작업 중 하나로 회고한다.



아! 여기서 굉장히 귀엽고 재미있는 일화 하나. 이 공간의 구석에는 절망감 가득한 표정의 윌리가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바나나가 그려진 자그마한 깡통이 하나 있다. 아이들이 윌리에게 너무 몰입을 한 나머지, 윌리가 너무 불쌍하다며 그 아래 놓인 깡통에 돈을 넣어줘야 한다고 부모님을 졸랐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끝이 없다’는 작가의 말처럼 아이들의 귀여운 생각이 웃음을 자아낸다. 실제로 저 깡통 안에 쌓인 돈이 동전부터 지폐까지 꽤 수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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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야기한 작품들은 이번 전시의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일단 이 전시의 큰 장점은 원화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앤서니 브라운이 하나하나 쌓아올린 선에서 감동마저 느껴진다. 그의 작품 세계가 정말 넓고 깊은 것도 볼 수 있었다.


작가는 프리다를 존경하여 프리다 칼로를 주제로 한 <리틀 프리다> 작업도 진행했다. 내가 여기서 설명하는 글을 보는 것보다 원화를 직접 들여다보며 그 감동을 느끼길 바란다. 작가의 초기 작업부터 최근 작업까지 공간 별로 구성된 전시장 곳곳을 걸어 다니다 보면 어느새 앤서니 브라운 작가의 팬이 되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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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展
- 동화 속 세상으로의 초대 -


일자 : 2019.06.08 ~ 2019.09.08

시간
11:00 ~ 20:00
(입장 및 매표 마감: 19:00)

*
매월 마지막 월요일 휴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티켓가격
성인(만19세이상) : 15,000원
청소년/어린이/유아(24개월~만18세) : 10,000원

주최/주관
예술의전당
아트센터 이다
마이아트예술기획연구소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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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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