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물"과 "둘" 사이 [음악]

글 입력 2019.07.13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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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누군가 나에게 몇살이냐 물으면, “스물”과 “둘” 사이에 티 나는 공백이 생긴다. 이제는 그 사이에 정말로 무언가있는 것 같은, 내 나이가 “스물 둘”이 아닌 “스물…(그리고)…둘”인 것 같은 기분이다. 그 공백에 너무 많은 변화가 있어서 그랬을까, 나는 아직 스무 살인 것 같다가도 스무 살의 내가 어땠는지 흐릿하기도 하다.

 

‘예전이면 이랬을 텐데’하는 순간들이 늘고 있다. 예전이면 화를 냈을 텐데, 예전이면 싫다고 했을 텐데, 예전이면 아니라고 했을 텐데. 왜 못하냐는 사람에게 말했다. 저 사람이 왜 저러는지 이해가 자꾸 가서, 한걸음 물러나게 된다고. 그랬더니 그가 그랬다. “어른이 되어 가는 거야.”

 

빨리 어른이 되고 싶던때가 있었고, 평생 어른이 되고 싶지 않던 때가 있었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던 때는 있었지만, ‘어떤 게’ 어른이 되는 건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게, 사람이 어느 한 순간 어른이 되지는 않을 텐데, 대체 어른이 된다는건 뭘까?


 

어른이 된다는 건,

입맛의 변화가 아닐까?





입맛의 변화


아티스트 | 안녕하신가영
발매일 | 2019.01.23
장르 | 발라드, 인디음악


***



이유는 잘모르겠는데
하루가 다르게 입맛이 변해
여전히 싫어하는 것엔
좀처럼 손이 자주 가지는 않지만
예전만큼은 또 싫은 건 아냐
어쩐지 내가 너무 이상해



“스물”과 “둘” 사이 나는 꽤나 많은 것들을 용서하고 이해했다. 이해하려고 한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어.’하는 생각을 하며 양보하는 일과, ‘그런가보다.’하며 받아들이는 일이 많아졌다. 어렸을 때보다 많이 초연해진 것 같다.

 

어릴 때는 싫다고 말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답답했다. 분명 싫을 것 같았는데, 왜 참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근데 점점 이해가 간다. 현재 내가 무언가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분명 싫은데 또 그렇게 생각만큼 싫지는 않다. 한숨 한번 쉬고 잘 해낸다. ‘굳이 해야 하나?’에서 ‘굳이 안 할 것까지 있나?’로 바뀌었다.

 


포크와 나이프 서운하게
요즘은 수저를 자주 들곤 해
나 쉽게 변해도 되는 걸까
어느샌가 바뀌어버린 입맛처럼



어린 나는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다고 모든 게 아닐 필요는 없었지만, 자주 용감해져야 했다. “스물”에서 “둘”까지 넘어오며, 나는 말을 많이 줄였다. 굳이 포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때가 있구나. 매번 나이프로 썰지 않아도 되는구나. 조용히 수저를 들기 시작했다.

 

세상의 부당함이 사라졌을리는 없고, 내가 무뎌진 걸까 싶어서 슬펐던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혹시 수저 사용이 익숙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여전히 나는 포크와 나이프가 서운해하는 게 싫지만, 수저를 사용하게 된다. ‘지금은 수저를 써도 괜찮을 타이밍’이 늘고 있는 느낌이다.

 


단순하게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일조차
쉽지 않아서
변했다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이지만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마음 앞에서 흔들렸던 건
어쩌면 서서히 변해온
내가 아니었을까



어른이 되는 일이 한 순간에 벌어질 리가 없다. 아프고 울고 배우고 성장하고, 계속해서 어른이 돼 오고 있던 거겠지. 처음 스무 살이 되었을 때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것처럼 모든 것은 서서히 일어나는 것들일 테니까.

 

누군가 나에게 “변했다”는 말을 하면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 물어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게 있나 싶다. 나는 나를 매일 봐서 모르겠지만, 매 순간 나는 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학 진학 후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방학 때나 만날 수밖에 없게 됐다. 모두들 입맛이 많이 변해 있었다. 절대 안 간다던 학과에 진학한 친구도, 싫다던 유학을 간 친구도, 예상치 못한 일을 하고 있는 친구도 있다. 그들이 보기에 나도 참 많이 변했을 테다. 이야기를 나누면 서로 이해한다. 변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대신, 지나온 이야기도 참 재미있다. 그 때는 그랬었는데, 다 아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즐겁다. 누구도 돌아가지는 않을 거면서 말이다.

 


너를 좋아했을뿐인데
나는 꽤 입맛이 변했고
내가 좋아했던 만큼만
우리는 사랑을 했었지


너를 기다렸을 뿐인데
나는 또 입맛이 변했고
너는 그대로의 너인데
우리는 흔한 이별도 했지



사랑을 믿지 않던 내가 처음으로 사랑을 했던 21살 가을, 그리고 처음으로 이별을 앓고 있는 현재 22살의 여름. 많은 것들이 또 한번 달라졌다. 고통이 성장의 원인이었는지, 사랑이 성장의 원인이었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동시에 들이닥쳤다.

 

사랑을 하면 두 사람의 입맛이 섞이는 것 같다. 나는 아직 그의 입맛을 가지고 세상을 느끼고 있지만, 또 변하겠지. 내가 좋아할 수 없던 것들을 좋아하게 해줬고, 내가 모르던 맛들을 느끼게 해줬던 시간이었다. 그만큼 그도 변했을까? 지난 사랑을 두고 떠나며, 어쩌면 사랑을 시작할 때보다 더 크게 입맛이 변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좋아했다 또 싫어했다
보고싶다 또 괜찮다
그리웠다 또 잊었다
미안했다 또 아니다


좋아했다 또 싫어했다
보고싶다 또 괜찮다
그리웠다 또 잊었다
미안했다 또 아니다



어른이 뭐 별거인가? 자주 가던 카페에 발길을 끊는 것도, 매일 듣던 노래를 더는 듣지않는 것도 전부 어른이 되는 과정이 아닐까? “그냥, 요즘은 입맛이 좀 변했어.” 대단히 진지할 것도 심오할 것도 없는, 그저 그런 담담한 변화. 그런 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지 않을까?

 

어른이 되어서도, 나이를 많이 먹어서도 때때로는 어린 모습들이 나온다. 이랬다 저랬다, 맞았다 아니었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도 많고, 마음이 뭔지 모르겠을 때도 많고. 그렇다고 대단히 뒤쳐진 것도, 못난 것도 아닌, 그저 입맛의 변화를 겪고 있는 것 뿐. 그렇게 매일 조금씩 성장하는 거라 생각한다.

 

대단할 것도 없지만, 대단히 큰 변화. “스물”과 “둘”사이에 입맛이 너무 많이 변해버려서 내가 자꾸 머뭇거리나보다.

 




[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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