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해석의 차이를 바라보는 묘미, 영화 비평지 필로 FILO

영화 비평지 필로<FILO> 5-6월호 리뷰
글 입력 2019.07.07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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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영화를 보고 나서 하는 일은 무엇일까. 아마도, 영화 리뷰를 찾아보는 일일 것이다. 내가 본 영화의 해석이 궁금해서, 아니면 내가 해석한 영화의 의미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석했을지 여러 가지로 궁금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든, 궁극적으로는 내가 본 영화를 더욱 풍부하게 느끼기 위해서가 아닐까?




영화 비평, 글의 맛



그런데 이제 영화 리뷰는, 유튜브에서 기막히게 공감될 만한 영상이 많아서 그 영상 중 한 개만 봐도 우리는 영화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다. 또, 심지어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라도 그 영화를 ‘봤다’고 생각하게 하기도 하는데 그건 영상 매체 특성상 같은 시간에 더욱 이해하기 쉽고 효과적으로 콘텐츠를 전달하는 특성 때문일 것이다.


효율적인 측면에선 유튜브 등의 영상 리뷰를 따라갈 자가 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글과 영상이라는 두 개의 선택지 중엔, 여전히 글 매체, 비평을 선택하고 싶다. 글은 이를테면 하나의 뜻을 전달하는 데도, 의미전달에 가장 효과적인 측면의 단어가 절대적으로 선택된다기보단, 보는 이의 감성에 따라 수많은 대체 단어들이 선택된다. 그리고 그 단어들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신선하고도 색다른 글의 맛은 내가 봤던, 혹은 궁금했던 영화의 깊이를 풍부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자극해 감각이 확장됨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영화 비평지 <FILO, 필로>의 5-6월호는 글과 영화의 맛을 모두 느낄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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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FILO> 5-6월호가 담고 있는 것들



이번 호에서 크게 다루는 주제는 테리 길리엄의 최근 신작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2019 전주 국제 영화제에 대한 리뷰, 최근에 종영을 맞이한 <왕좌의 게임>, 주인공 에단 호크의 인생연기로 불리는 <퍼스트 리폼드>, 이시이 유야<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하마구치 류스케의 <사아코>, 클린트 이스트우드<라스트 미션>, 그리고 최근 안타깝게도 타계한 영화의 아이콘 아녜스 바르다의 오랜 친구 장미셸 프로동의 애도의 글을 비롯해 아오야마 신지의 <유레카>,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우 카세 료가 바라본 기주봉까지 다채롭게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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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니, 물론 최근 영화계의 엄선된 이슈들이 수록되어있다는 메리트도 컸지만, 이번 호에서 가장 좋았던 건, 역시나 같은 장면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바라보는 묘미에 있었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엮은이들은 현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5명의 영화 평론가들이기에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같은 장면을 이렇게도 해석해내나 싶은 감탄과 독특한 관점이 내 생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왕좌의 게임, 게임의 주체와 그 공기



영화 평론가 이후경은 <왕좌의 게임> 비평의 타이틀을 <귀가의 계절>로 달았다. <왕좌의 게임> 시즌 8과 지난 시즌을 돌아보며- 라는 부제목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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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시즌과 많은 인물의 죽음을 글에서는 게임을 둘러싼 공기라는 큰 의미로 묶어냈다. 이 시리즈의 가장 유명한 대사이기도 한 “겨울이 오고 있다” 라는 문장을 바라보는 관점은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극 안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겨울’이라는 단어는 현대인이 이해하는 계절과는 다른 시간성과 ‘언제 시작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한다.



“제가 태어난 겨울은 3년 만에 끝났어요”


“이번 여름은 9년이나 되었다네. (중략) 이번 겨울도 아주 길 것이야.”



극 중의 대사들을 어떤 스토리 전개의 일부로서 보지 않고, 극의 공기를 지배하고 형상화하는 역할로 바라보는 관점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또, 왕좌의 게임 속에서 ‘미친 전개’의 주범이기도 한 인물들의 죽음을 ‘아이들의 놀이’에 방해되는 어른들의 죽음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본 것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후경은, 죽음의 풍경 혹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죽음의 게임에 가장 매혹되는 이들이 어른이 아닌 아이들이라는 사실과 이런 게임은 아이들만의 특권임을 포착해낸다.


결국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을 것으로 보이는 어른들은 끝까지 철들기에 실패하는 유사 아이들일 뿐이라고 말한다. 왕좌의 게임을 아직 보지는 않았으나, 이토록 냉혹한 세계의 판도를 자의든 타의든 주도하고 이끄는 이들이 아이들이라는 것은 일종의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인지 이런 아이러니를 그린 <왕좌의 게임>이 더 궁금해진다.




<왕좌의 게임>에서 게임의 반의어는 집이다. 집이 있는 이상 아이들의 놀이는 언젠가 중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의 게임은 아이들이 돌아갈 집 자체를 파괴하거나 집이 아닌 곳으로 만들어버린다.


- 글 <귀가의 계절>, 이후경 중 발췌





아녜스 바르다를 추모하며



아녜스 바르다는 내가 존경하는 영화인 중 한 명인데, 여성감독으로서도, 여성운동 및 사회 운동가의 역할에 죽기 직전까지 최선을 다했고, 비주얼 아티스트였기에 팬의 마음으로 좋아했다. 그런데 그녀가 최근 타계한 소식을 듣고, 얼마 전 극장에서 봤었던 다큐멘터리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가 떠올라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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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호에 실린 아녜스 바르다의 오랜 친구이자 프랑스 영화 평론가인 장 미셸 프로동의 애도 글을 읽으며 일면식도 없는 아녜스 바르다를 혼자 보내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바르다가 불멸의 존재나 올림퍼스 여신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로, 아주 생기 넘치고, 생명력 강하며, 서슴없는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매번 새로운 길을 개척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토록 진부하고 어두컴컴한 길은 그의 길이 아니었다.


항상 그랬다, 우리의 바르다는. 어린 나이에 고향 벨기에 익셀을 떠나온 이 작은 체구의 젊은 여성은, 장 빌라르가 이끄는 연극계의 새로운 모험에 맹렬히 뛰어들었다. 그들은 전후파로 불렸으며, 그들에게 문화는 모두에게 최상의 미래를 쟁취하기 위한 하나의 전선이었고, 알랭 레네, 크리스 마르케와 같은 동료들이 이미 그러했듯 빌라르 역시 이 전투의 전초에 있었다. 좌파는 바르다에게 의미있는 무언가였고, 그것은 이후로도 변함이 없으리라.


(중략)


부고가 나기 전 마지막 소식에 따르면, 바르다는 쇼몽쉬르루아르에서 열리는 국제정원축제에서 ‘행복의 오두막’(바르다의 설치미술 작품으로, 영화 필름과 해바라기로 장식한 오두막 형태-역주)의 아름다운 해바라기들을 선보이기 위하여 그곳으로 향하던 도중이었다고 한다. 중간에 그가 길을 조금 잃은 것 같기도 하지만, 끝내 자기 길을 찾아갔으리라.


- 장 미셸 프로동의 글 중 발췌





디테일을 새롭게 바라보는 힘



그리고 그 이외에 앞서 언급했던, 이번 필로 5-6월호에 소개된 영화 리뷰들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디테일을 발견하고, 각 비평가만의 시선이 담긴 해석을 읽을 수 있었고, 그 이외에 평론이나 영화 이슈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평소에 공감 포인트를 잘 잡은 일반인들의 리뷰를 더 선호하는 편임에도, 깊이 있는 전문지식에서 비롯된 해석이 새롭게 느껴졌다. 또, 어떻게 생각이 이렇게까지 확장될까 신기하기도 하고. 이런 시선이라면 전문 비평가의 글도 괜찮겠다고 생각해본다. 그러니, 이번 필로 5-6월호는 단순히 영화를 좋아하는, 영화 애호가들만을 위한 책이 아님은 분명하다.



[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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