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나의 멜랑콜리를 따라서

글 입력 2019.06.16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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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루미웨더.jpg
 

  

네덜란드 날씨는 변덕이 무척이나 심했다. 그리고 겨울은 무척이나 추웠다. 그리고 나는 그 겨울 눈비가 내리면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리만큼 무너지듯이 감정이 가라앉고 울적해졌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첫사랑과 헤어지고 나서 느꼈던 가슴 시림과도 비슷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스로를 꽤나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라고 여겨왔는데 착각이었다. 못된 날씨 앞에서 이유 없이 감정이 무너지는 아주 감성적이며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임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따뜻하고 쾌적한 날씨의 미국 캘리포니아의 사람들이 미국 동부사람들보다 더 개방적이고 활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날씨만큼이나 나의 기분도 변덕이 심해지면서 날씨에 따라서 사람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말도 믿게 되었다. 타고나기를 부정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어두운 감정들로 처음엔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 때 나는 단 한 번도 하지 않던 아주 감성적인 활동들에 파고들었다. 그런데 더 밝은 것을 찾아본다기보다 이상하게도 집요하게 우울한 것들을 찾아보았다. 시집을 열어 본 기억도 가물 가물이건만 우울함을 가득 담은 낭만적인 시(지금 보면 오그라들지만)를 쓰기 시작했다.


미술관에서는 고독하고 착 가라앉은 그림에 빠졌다. 평소에는 랩만 듣는 내가 발라드를 듣고 한국에서는 마시지도 않던 과일 차를 혼자 즐기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존재했지만 부정하고 무시했던 의존성과 우울감이 분출하기 시작하자 나는 미친 듯이 공허한 감정을 채우기 위해 반사적으로 그런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세잔 부인의 초상.jpg
 

 

세잔의 사과라는 책에서 우울한 작가 세잔은 작품을 은신처로 삼아 자신의 심리적 증상과 분투했고 그로써 마침내 예술로서 승화했다는 말이 나온다. 책에서 정신분석학적으로 멜랑콜리, 즉 우울감은 기존의 언어가 가진 한계로는 표현되지 못하는 주체의 근본적인 상실감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를 촉발시키거나 드러낼 수 있는 문학이나 미술작품을 만날 때 경이감을 느끼는데, 이 경이는 단순히 기쁘고 즐거운 것이 아닌 대체로 슬픔과 허무를 수반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의미 영역에 갇혀있던 상실과 고립이 예술적 방식으로 해방되는 것이 바로 승화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비슷한 심리적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닌가 싶다. 돌이켜보니 나에게도 많은 상실이 있었다. 인정과 안정이 부족했던 나의 어린 시절은 많은 상실감과 어두움을 남겼다. 억지로 눌러왔던 감정들은 춥고 어둡고 우울한 날씨에서 불쑥 튀어나왔지만 다행이도 본능적으로 예술적인 활동들로 채워 넣는 계기가 된 것이다. 오히려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게 된 발판이 된 셈이다.


갑자기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작가사의 인터뷰가 생각이 난다. 행복할 때는 가사가 잘 써지지 않아서 일부러 불행한 이별을 택한다는 이야기였다. 그의 안쓰러운 노력이 이해가 되면서 이제야 새삼스럽게 나에게 지나간 불행과 상실 모두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덕분에 나는 더 풍요롭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과 시야를 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날씨로 크게 우울함을 느끼지는 않지만 일부러 가끔 더 깊은 우울함으로 스스로 빠져들고는 한다. 예술적 세계와 나를 더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다. 다행이도 지금은 감사하고 재미있다.

 

 

[최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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