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숨에 빠져버린 소설"체공녀 강주룡"
"오래 주렸다." 첫 문장부터 심상치 않다. 그 강렬함 만큼 문체 또한 시원했다. 속도감 있는 전개, 유쾌한 유머, 내빼는 것 없이 술술 나오는 문장, 희노애락을 품은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단숨에 빨려들기 충분했다. 젊은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 이렇게 매력적이라니, 놀랍고도 흥미로웠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 '체공녀(滯空女)'라는 단어가 무척 생소했다. 책 소개를 보니 ‘체공녀’(滯空女)는 1931년 평양 일제의 일방적인 임금 삭감에 반대하며,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인 노동운동가 강주룡을 가리키는 말로 당시 신문·잡지에서 두루 쓰였다고 한다. 한국에서 최초로 고공농성을 벌인 사람이 여성이라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작가 또한 이 포인트에 흥미를 느껴 남들이 쓰기 전에 자신이 먼저 쓰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강주룡에 대한 자료는 잡지 <동광>에 실린 흑백사진 한 장과, 짤막한 글 뿐이었다. 강주룡이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이고, 어떤 생각으로 을밀대 위에 올라갔는지 알 길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양날의 검이다. 풍부한 텍스트로 거듭나거나, 반대로 '왜곡'이라 낙인찍힐 수 있다. 거침없는 주룡이라는 캐릭터가 생생하게 와 닿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상상력 덕분인 셈이다.

책 구성
책은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는 당시 무려 자신보다 5살이나 어린 고운 남편 전빈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전빈의 집안에서 주룡과의 혼사를 한 이유는 딱 하나다. 혼사를 통해 전빈이 독립운동의 길로 빠지는 것을 막고자 함이다.
하지만 "당신이 좋아서 당신이 독립된 국가에 살기를 바랍네다. 내 손으로, 어서 그래하고 싶었습네다. 동무들하고 약조한 바도 약조한 바이지만은."이라는 남편의 진심 어린 말에 주룡 또한 만주로 간다. 그곳에서 전빈보다 주룡이 독립운동에서 활약을 하지만, 혼자 여자였던 주룡은 부당한 처사에 평양으로 떠난다.
2부는 평양으로 떠나온 주룡이 고무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예상치도 못한 노동운동에 참여하는 이야기다. 독립운동에 특별한 뜻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경력이 없는 주룡에게 뜻 밖의 일이 닥친 셈이다.
하지만 주룡은 당차다. 남들이 우러러 보는 엘리트 운동가를 향해 "시방까지 배운 바론 노동자가 으뜸이구 근본 되는 계급인데 실지로는 에리뜨들이 계도와 계몽의 대상으로 보구 있다. 이거이 최근 나의 불만입네다."라고 말한다. 불평등에 대한 의식은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확장되고, 주룡은 그렇게 을밀대 위로 올라 간다.

투쟁의 의도가, 거창하지 않았던 운동가
솔직한 말로 주룡은 나라가 무엇이고 독립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나를 지켜주지도 돌보아주지도 못한 나라가 독립을 해서 무슨 소용인가. 나라의 이름 같은 것은 내 알바가 아니다. 내 가족이 굶지 않고 춥지 않게만 살면 됐지.- 38p
저기 사람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주룡을 만나는 일은, 단지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그는 영웅도, 비극적인 인물도 아니다. 다만, 사랑을 위해 불화하는 사람이다. 그것도 배짱 두둑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