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도 결국 한 명의 인간이었음을 - 뮤지컬 '루드윅'

뮤지컬 '루드윅' / 2019년 4월 9일~6월 30일 / 드림아트센터 1관
글 입력 2019.06.05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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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했다. 연기, 연출, 서사 뭐 하나 빠지지 않고 모든 것이 대단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평소 ‘완벽’이라는 단어는 그것이 주는 이질감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는데 ‘루드윅’은 이 단어가 아니라면 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열정’. 베토벤을 생각했을 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키워드일 것이다. 청력을 잃어가면서도 음악을 놓지 않았던 사람. 그 집요함으로 후대에 길이 남을 유산을 남긴 음악의 거장. 이 베토벤을 다루는 작품답게 극은 극도의 강렬함을 안고 진행된다. 큰 액션으로 울부짖듯 내뱉는 배우들의 연기 위에 베토벤 음악 특유의 에너지 넘치는 선율이 얹어진다. 절도 있는 조명 연출까지 더해져 뮤지컬을 본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강렬함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뮤지컬이 나를 가장 만족시켰던 지점은 강렬함 안에 담긴 세밀함이었다. 이 뮤지컬은 루드비히 베토벤, 그 뒤에 숨겨진 나약한 한 명의 인간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짚어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천재 음악가’ 베토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와 같은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존재 의미와 사랑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뇌했던 ‘인간’ 베토벤이 무대에서 다시 태어난다.


들리지 않는 귀와 사람들의 비웃음으로부터 도망치듯 생을 마감하려고 하던 베토벤의 앞에 어느 날, 그를 놀라게 하는 어린 천재 ‘발터’가 등장한다. 한 번 들은 음악을 그대로 쳐내는 재능, 멜로디에 본인의 색을 입힐 줄 아는 센스, 피아노에 대한 사랑까지. 가공의 가치가 있는 원석임이 분명하지만 이미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베토벤은 발터를 단호하게 내친다.

하지만 발터는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고. 모든 것이 본인의 잘못이라고 여기며 괴로워하던 베토벤은 마침내 괴로움으로 가득 찬 과거를 과거로 보낼 수 있게 된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천재성을 발휘하며 세상을 놀라게 하던 베토벤의 앞에 그의 조카, ‘카를’이 나타난다. ‘루드비히’를 ‘루드윅’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장난기 넘치는 소년, 카를. 그리고 베토벤은 카를에게 오래 전 죽은 발터를 이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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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싸움을 좋아하는 카를을 억지로 피아노 앞에 앉힌 채 음악의 이로움을 설파하는 베토벤. 본인의 후계자로 키우겠다며 카를을 부모에게서 떼어놓는가 하면 당사자 모르게 연주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베토벤 본인 역시 어릴 적 강압적인 방식으로 음악을 익혔기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기에 카를에게도 이 같은 방법이 통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카를은 베토벤과 달랐고, 발터와는 더더욱 달랐다. 삼촌의 기대는 카를에게 부담일 뿐이었다. 결국 죽도록 싫은 피아노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루드윅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삼촌이 보는 앞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본인의 과오를 다른 누군가를 통해 보상받으려는 욕심. 사랑의 탈을 쓰고 집착의 속내를 가진 이 마음은 현실에서, 특히 가정에서 너무나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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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에게 피아노를 강요하는 베토벤을 보며 드라마 ‘SKY캐슬’이 생각났다. 서울의대라는, 오직 하나의 길을 제시하며 어린 자식들에게 몸과 정신이 상할 때까지 공부를 강요하는 부모. 본인조차 오르지 못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오를 것을 강요하는 부모. 직장에서 느낀 열등감의 회복을 위해 자식에게 전교회장이 될 것을 강요하는 부모. 이들은 모두 본인의 콤플렉스를 자식을 통해 만회하려고 하는, 자식을 일종의 수단처럼 여기는 이기심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현실에서도 굉장히 자주 발생한다.

얼마 전, 카페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할 글을 쓰고 있었는데 저 쪽에서 아주머니들의 수다가 들려왔다. 모두 아주머니 특유의 수다 pitch를 장착해주시길 바란다.


“자기야, 들어봐. 내가 요즘 미치는 줄 알았거든? 아들이 말을 너무 안 듣잖아! 그래서 얘를 죽일까 어쩔까, 속 터져 가지고 고민하고 있는데 누가 딱 그러는 거야.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딱 나 정도밖에 안 된다고. 어머머, 듣고 보니까 그 말이 맞는 거 있지? 그래도 우리 아들 나 보다는 좀 더 잘 살아야 될 거 아니야. 그래서 아, 그렇구나, 하고 마음을 딱 놨지.”


자식을 키워본 적은 없어서 모르겠지만, 아마도 부모님의 잔소리는 결국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가 분명 맞을 것이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이 못 살기를 바라겠나.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항상 잘 살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부모가 알고 있는 길 만을 강요한다면 자식은 시대의 흐름과 함께 찾아오는 수많은 기회들을 놓쳐버릴 수 있다. 더군다나 요즘 같은 4차산업 시대에는 기성세대가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노다지 길이 이곳저곳에 만연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성세대가 옹호하는 가치만을 다음세대에게 고집하는 것은 너무나 편협한 시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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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난 공부를 무지하게도 싫어했던 ‘찐찐’의 아들 수한이가 의사가 아닌 아이돌을 꿈꾸고 있는 현재를 굉장히 응원한다. (!)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들을 비난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부모님들 역시 실수와 후회를 반복하는, 그저 인간일 뿐이니까. 카를에게 음악을 강요했던 베토벤 역시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실수와 후회를 반복하는, 루드비히 이전의 루드윅일 뿐이었으니까.

음악가와는 정 반대의 길을 걸어 군인이 된 카를이 베토벤의 부고를 듣고 그의 피아노 앞에서 오열하는 모습은 결국 나 또한 울게 했다. 과연 카를은 루드윅 삼촌을 용서했을까. 자살시도까지 하게 만든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이 가능할까.

용서하지 않았다 해도 좋다. 결국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니까.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그 살아감은 언젠가 필히 종착지를 만난다. 나는 그 짧으면서도 풍부한 일련의 과정이 처연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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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루드비히. 거장의 이름 뒤에 숨겨진, 다른 이들과 너무도 다를 바 없이 어리숙한 이름, 루드윅.  작품이 끝나고 난 후 모든 관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나 역시 환호성을 보내고 싶었지만 소리를 내면 환호가 아닌 울음이 나올 것 같아 박수만 주구장창 쳤다. 그게 아쉬울 만큼 ‘루드윅’은 좋은 작품이다.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
- 열정의 베토벤을 만나다 -


일자 : 2019.04.09 ~ 06.30

시간
화, 수, 목, 금 20시
토요일 15, 19시
일요일 및 공휴일 14, 18시

장소 : 드림아트센터 1관

티켓가격
R석 66,000원
S석 44,000원

기획/제작
과수원뮤지컬컴퍼니

관람연령
만 10세이상

공연시간
1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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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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