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도서]

글 입력 2019.06.04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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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에게는 연간 500파운드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들은 안락한 주거 환경과 고정수입을 얻기 위해 치열한 일상을 보낸다. 특히 이성애 중심 4인가족이란 정상성을 이탈한 비혼 여성에게는 훨씬 긴박하게 다가오는 명제다. 나 또한 비혼 여성으로서 평생 '나'를 책임지며 먹여 살릴 주체로 살아가리라 다짐한 후, 요즘처럼 돈 버는 방법을 고심해 본 적이 없다. 앞으로 어떤 경력을 쌓아가야 할지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고민에 빠진 상태다. 틈만 나면 무슨 일을 해야 노후까지도 밥벌이 할 수 있을까 골머리를 싸맨다.

그러나 노년은 커녕 당장 10년 후를 기약 해봐도 선뜻 뚜렷한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위로 올라갈수록 사회 조직 내에서 소멸하는 여성들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게도 닥쳐올 미래라는 생각에 막막함이 치솟아 오른다. 그렇다고 창업의 길로 뛰어들자니 부족한 자본과 아이디어로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래저래 험난한 가시밭길이 확정인 비혼 여성의 자립에 참고로 삼을 만한 것이 간절했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을 만났다. 저자인 김진아는 결혼 제도에서 탈출한 40대 여성의 깨달음을 활기찬 어조로 들려준다. 비혼을 선택한 이유를 넘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아 각자의 파이를 쟁취해야 하는 이유도 전한다. '야망 에세이'라는 부제가 이보다 적절할 수 없다. 그의 생생한 경험담에 담긴 일과 페미니즘이란 주제는 읽는 내내 공감을 유발한다.



여성에게도 우먼소셜클럽이 필요해



탁월한 재능을 가진 여성조차도 조직 내 끌어주는 인맥 없이는 장기적으로 배제된다는 사실 역시 당시엔 알지 못했다. 회사 생활을 10년 가까이 했으면서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자신들의 이익이 걸린 진실의 순간에 '보이즈클럽'이 얼마나 똘똘 뭉쳐 그들만의 리그를 지켜내는지도 내 문제가 되기 전까진 몰랐다. p.40


남자들은 사소한 공통점도 놓치지 않고 남성 상사, 남성 동료와 교류하는 방식으로 활용한다. 대학 동기 혹은 선후배 관계, 같은 고등학교 출신인 점, 하다못해 군대 생활에서 만난 인연이나 결혼 여부를 바탕으로 상호 협력 관계를 다진다. 무엇보다 '남자'라는 사실 자체가 가장 강력한 친밀감의 요소다. 사회생활의 맛만 본 나조차도 남성 연대가 작동하는 원리를 쉽게 목도했다. 그들은 앞서 말한 소재를 중심 삼아 동맹 체제를 구축한다. 그리곤 '형, 동생' 허물없이 대하며 사업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이 자리에 여성이 비집고 들어갈 틈새는 없다.

함께 면접을 진행한 남성 지원자에게 남성 대표가 해병대 기수를 물어보는 모습을 멀거니 바라본 적도 있다. 저자가 말한 보이즈클럽의 유대감 조성은 목마를 때 물을 마시는 행위처럼 자연스럽다. 그들의 끈끈한 동지애를 직접 피부로 느껴보면 머릿속에 빨간불이 켜진다. 저 남성 지배 체제에서 생존하기 위해 지독한 악바리가 되어야 한다는 위기의식 말이다.

책의 저자인 김진아도 보이즈클럽의 단단한 울타리 밖으로 떠밀린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는 광고 디렉터로 조직 생활을 할 당시, 강도 높은 업무도 마다하지 않는다. 야근도 불사하며 주어진 일에 모든 열정을 소진한다. 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업무 성과가 월등히 차이 나던 남성 동료의 승진이었다. 이러한 부당함을 받아들일 수 없던 그는 결국 사표를 제출한다. 업무적으로도 뛰어났고 대인관계에도 문제없던 그가 진급 평가에서 밀려난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여자라는 사실. 그리고 도움을 줄 만한 여성 상사가 부재했다는 것.

앞만 보고 달리다 주위를 둘러본 그는 혼자 덩그러니 남은 자신을 발견한다. 그처럼 남성들의 이너서클에서 밀려나거나 스스로 조직을 떠난 여성, 결혼 후 돌아오지 않는 여성 등 동료들은 유령처럼 사라져버린다. 그는 외로운 싸움을 벌이지만 견고한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멈춰 섰다. 이처럼 뼈아픈 경험을 한 김진아는 강조한다. 여성에게도 우먼소셜클럽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혼자서는 방탄유리로 만든 천장을 부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단단한 물체에 금을 내고, 마침내 천장 너머 하늘을 보러면 다른 여성과의 연대가 절실하다.



여성 연대를 실천하기



요즘 나와 내 주변 여자들은 여자에게 일 몰아주기를 실천하고 있다. 은밀하고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행사에 여자 강사를 초빙하고, 여자 필자를 섭외하고, 여자 사진가를 부르고, 여자 보험설계사를 쓰고, 누가 소개해달라고 하면 "일을 잘해서요"라면서 여자를 추천하고, 어떻게 해서든 여자가 돈을 더 벌고, 일과 커리어를 지속할 수 있도록 서로의 사다리가 되어 주는 것. 영화 <히든 피겨스>속 대사처럼 누구의 도약이든 우리 모두의 도약이 될테니까. p.62


남성들은 조직 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조직 외에서도 적극적으로 서로를 밀어주고 이끌어준다. 어린 시절부터 그러한 환경에서 자라 자연스럽게 사회적 연대를 습득한다. 반면, 여성은 같은 경험을 쌓기가 어렵다. 다른 여성과 이런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것 자체가 생경하다. 여성들만의 모임이나 행사에서 서로 토론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어디서 그런 모임을 주최하는지,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래서 저자는 프리랜서가 된 후 오픈한 카페에서 콘엪팅이라는 소셜 네트워크를 진행한다. 그래픽 디자이너, 번역가, 사진작가, 콘텐츠 기획자 등 각계각층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일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모임에서 만난 이들은 초반엔 어색해했으나 서로의 능력과 관심사를 즐겁게 나눈다. 끝난 뒤에는 연락처를 주고받는다. 이런 기회를 통해 지속된 인연으로 몇 사람은 협업을 진척하기도 한다. 이는 여성을 사회의 일원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구조에 맞서 용기를 얻을만한 대안이다. 여성들이 서로를 지지할수록 긍정적인 시너지가 도출된다는 사실은 희망을 안겨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성을 공동체로 인식하는 과정은 단절의 역사를 밟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 간의 결속력을 다지고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실천이 필요하다. 거창한 수준이 아니어도 좋다. 변화는 언제나 작은 실천에서 비롯되니 말이다. 나 역시 최근에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비혼 여성과 온라인에서 소통한다. 그들이 자기계발에 힘쓰는 모습,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모습에서 동기부여를 얻는다. 책의 조언처럼 의식적으로 여성 서사를 지닌 작품 소비하기, 여성 동료 추천하기, 여성 사장이 운영하는 카페 찾아가기도 하나의 방법이다.

무엇보다, 제 몫을 챙기는 여성에게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며 혹독한 감정 노동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초연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여성들의 연대 의식은 이를 이겨낼 회복력과 독립성을 단련시켜준다. 그러므로 내 몫을 얻고 싶은 여성, 용감함을 되찾고 싶은 여성, 경험 많은 선배에게 인생의 조언을 얻고 싶은 여성, 여성 연대의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알고 싶은 여성이여, 당장 이 책을 정독하시길. 답답했던 시야가 비로소 넓어지는 기분이 들 것이다.




[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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