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일 년은 언제나 가을 겨울 봄 여름 [음악]

당신의 일 년은 언제 시작하나요
글 입력 2019.05.09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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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른년생이다. 2월 23일생인 나는 일 년 빨리 어린이집에 들어갔고, 그래서 내 친구들은 대부분 한살이 더 많다. 지금이야 그 빠른년생 문화가 굉장히 흔한 일이라는 걸 알지만 어린 시절의 나에겐 친구들과 태어난 해가 다르다는 것은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다.

 

친구들이 모두 7살이었을 때, 엄마가 나의 나이는 6살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 크게 충격을 받고 다음 날 바로 유치원 선생님에게 나는 몇 살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당연히 7살이지’라고 대답했다. 몇 번 더 그 과정을 반복했지만 결국 누구도 나의 나이를 시원하게 정해주지 못했다. 그 당시 내 머릿속은 나는 왜 나이가 두 개일까, 나는 왜 친구들보다 일 년이 느릴까, 친구들은 쥐띠인데 나는 왜 소띠일까, 등의 질문으로 가득 찼다. 그래서 처음 보는 어른이 내게 나이를 물으면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10살 혹은 9살이라는 대답 대신 초등학교 3학년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내가 갑자기 (이미 폐지된) 빠른년생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는 오랜만에 들은 한 노래의 가사였다.

 

"설레이는 첫 등교 날 난 궁금했죠

시작하는 달이 1월이 아니라길래"

 

나와 같은 수많은 빠른○○이 탄생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만 6세가 된 아이들은 공식적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는데, 새 학기는 3월에 시작하므로 1, 2월생 아이들도 전년도 3월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과 같이 만 6세로 인정받아 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빠른년생은 결국 일 년을 1월에 시작하는 세상과 3월에 시작하는 세상이 충돌해서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나에 대해 누군가는 한살 많은 나이로 살라고 하고, 누군가는 제 나이로 살라고 하고, 누군가는 네가 알아서 한 쪽을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태어난 날은 2월 23일로 명확한데 나의 나이를 정하는 문제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만약 한국이 다른 나라처럼 만 나이를 인정했다면, 각자 자신만의 기준으로 일 년을 시작했다면 얘기는 달라졌을까? 9월에 태어난 사람이 가을부터 일 년을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난 9월에 태어났다고 해요

그러니 나의 일 년은 언제나 가을 겨울 봄 여름"

 


 


<가을겨울봄여름>은 가을방학의 정규 2집 <근황>의 수록곡으로 9월에 태어난 가을방학 두 멤버 (정바비, 계피)의 자전적인 얘기를 담은 노래다. 가을방학의 음악에서 멜로디도 중요하지만 가장 큰 역할을 차지하는 건 단연 가사다. 잔잔한 멜로디를 타고 들려오는 가사는 보컬 계피가 지닌 맑은 목소리와 뛰어난 전달력을 만나 청자에게 더 확실히 각인된다.

 

나는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가끔 한국어 가사로 쓰인 한국 노래임에도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는 노래를 만날 때가 있다. 그저 멜로디를 채우기 위해 겨우겨우 쓴 것 같은 무의미한 가사의 노래들은 해석을 모르는 팝송보다 더 멀게 느껴진다. 그런 노래들 사이에서 가을방학의 노래가 지닌 가사의 힘은 대단하다. 사랑 타령 아니면 ‘오늘 모든 걸 잊고 즐기자.’는 식의 댄스곡뿐인 가사에 지친 나에게 자기만의 주기로 일 년을 살아가는 것들에 대해 얘기하는 독특한 가사는 가뭄의 단비처럼 반갑게 느껴진다.

 

앞서 빠른년생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지만 <가을겨울봄여름>은 (당연히) 빠른년생은 불합리한 것이니 이제 모두 생일을 기준으로 나이를 세는 만 나이로 살자, 는 메시지의 노래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 노래 속 자신만의 일 년을 사는 건 인간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득 둘러보면 꽃들도 새들도

다들 자기만의 일 년을 사는 것

민들레의 봄은 종달새의 겨울인 것을"

 

일 년을 1월 1일에 시작하는 것은 철저히 인간이 정한 기준이다. 사회가 정한 규정에 자유로운 동·식물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자기만의 일 년을 살고 있다. 어떤 꽃이 피는 계절에 어떤 꽃은 진다. 누구도 지는 꽃을 향해 다른 꽃은 활짝 피어 있는데 너는 왜 지고 있느냐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꽃은 그때 지는 게 맞고 스스로 알아서 펴야 할 때에 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것과 비교하지 않고 태연하게 자기만의 일 년을 살아가는 동·식물들을 보면 인간보다 더 현명한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만약 그런 동·식물이었다면 빠른년생이든 그냥년생이든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1월 1일에 나이를 먹고, 스무 살엔 대학교를 가야 하고, 20대 중후반엔 취직을 해야 하는, 자기만의 기준이 아닌 사회가 정한 기준의 시간을 사는 인간이기 때문에 내 나이가 몇 살인지 인정받는 게 중요한 문제가 된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모든 이의 삶의 속도를 같은 주기에 놓고 조금이라도 뒤처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함께 하여도

우린 모두 조금씩 다른 주기를 돌잖아요"

 

그런 사회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바쁘게 달려가는 우리에게 이 노래는 아주 여유로운 목소리로 모두 조금씩 다른 주기를 돌고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으면 하루하루 흘러갈수록 불안감만 키워가던 이도 결코 늦은 게 아니라고, 나만의 주기를 돌고 있을 뿐이라고 자기자신에게 다독이게 된다.

 

<가을겨울봄여름>은 굳이 바쁜 현대 사회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일 년을 봄부터 시작하지 않겠다는 신선한 발상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 그 발상은 삭막한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지금처럼 바쁜 일과에 치이지 않던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태평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시절이었음에도 모두가 자기만의 일 년을 갖고 있다는 말이 너무 좋아서 노래를 계속해서 반복해 들었었다. 그 사소한 말이 학교와 집만 무한 반복하던 내게 조금만 다른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면 무료한 일상도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일주일, 혹은 하루 주기로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일상은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탈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자신의 일 년은 언제 시작하는지, 다른 것들은 어떤 일 년을 살아가는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아침 일찍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는 동안,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대신 그런 생각을 해본다면 삭막한 일상도 조금은 촉촉해지지 않을까.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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