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요일, 손톱, 스핑크스, 꼬리박각시.

나비와 나방은 둘다 나비목이다.
글 입력 2019.05.08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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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박각시



꼬리박각시. 제목이며, 표지고 주제다. 주인공 롤라의 행보를 보면 당연히 꼬리박각시는 그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두운 밤, 갈망하는 걸 향해 다가가며, 결국 파멸에 이른다는 게 그렇다. 우리는 나방을, 불을 향해 다가가는 무지하고 미천하다고 조롱한다. 그런 점에서 꼬리박각시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롤라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존재다.



다른 사람들이 면도날로 자신을 그을 때 롤라는 다리를 벌린다. 그녀는 그런 식으로 순수한 무언가를 되찾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 35p



롤라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홀아버지 밑에서 살았으며. 매일매일 섹스를 통해 삶을 갈구한다. 그녀는 면도칼 대신 다리를 벌렸다. 롤라는 영원을 갈구하며 파멸할 걸 알면서도 자해를 계속해나간다. 짧은 소설이데도 나방이라는 강렬한 상징이 마음에 들었다. 둘이 좇는 허상과도 같은 영원성과, 그 상징 등을 눈여겨보며 읽었다.



일요일




일요일

이불이 흘러내린다. 컬러는 미드나이트 블루. 지금은 아침이다. 소재는 이집트면이다.


- 소설의 시작에서



소설은 일요일로부터 시작된다. 일요일과 이불의 촉감, 아침의 분위기는 언뜻 보기에 평화롭다. 그러나 검은빛이 도는 블루는 그런 분위기에서 뭔지 모를 우울을 이끌어낸다. 불안정한 평화라는 독특한 분위기를 소설 서두에서부터 깔아둔다. 가장 눈에 띈 점은 소제목을 요일로 지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소제목은 요일 혹은 날짜로 지었다. 특히 작 중반까지 소제목은 '요일'로만 서술된다.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마구잡이 순서로 금, 토, 일 중에 하나로 소제목을 짓는다. 숫자가 아닌 일주일은 반복되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롤라가 지닌 심리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반복될 것을 암시한다.

게 중에서도 '일요일'은 특별하다. 일요일은 보통 일주일의 '끝'을 의미한다. 전통적 기독교에서는 일주일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비약을 보태면 일요일은 일주일의 시작과 끝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일주일의 경계라고 말하는 것에는 아무도 왈가왈부 못할 것이다. 각설하고 일요일은 사건의 시작과 끝이다. 작중에서도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대. 도브와 만난 시점이라든가, 도브와 이별하는 과정이라든가. 극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요일이다. 소설의 처음과 끝의 소제목 또한 '일요일'로 같다. 게다가 서두와 결말에 같은 살인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마치 둘이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결국 소설은 일요일로 시작해 일요일로 끝난다.

드물게 드러나는 날짜라든가, 크리스마스라는 소제목은 그래서 특별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시간이 흐를 때, 날짜가 바뀐다. 소설에서는 그녀가 영원을 좇지 않을 때, 시간은 흘러갔다. 그녀가 손톱을 쟁취하지 않을 때 날짜가 등장한다. 한동안 손톱을 취하지 않은 시점인 크리스마스, 그 다음날 손톱을 취하는 날은 다시 토요일. 그다음 챕터는 2월 20일로 손톱을 취하지 않는다. 그 후의 소제목은 날짜다가, 158쪽에는 소제목이 다시 일요일, 그리고 일요일 다음에도 일요일이다. 롤라의 시간이 한동안 흘렀다가 다시 멈췄다. 그녀가 사냥한 손톱의 여부에 따라 소제목이 결정된다. 여기서 등장하는 손톱은 여간 중요한 장치가 아니다.




손톱



손톱은 영원성을 지닌다. 롤라도 손톱이 몸에서 유일하게 영원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자해와 같은 섹스를 하면서 손톱을 쟁취한다. 롤라는 너무 위태로운 나머지, 손톱이 지닌 영원성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손톱이 지닌 속성을, 손톱을 갖는다고 해서 영원해질까? 그렇지 않다. 롤라는 손톱을 구해도 지긋지긋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녀도 알고 있지만, 자기를 파괴해가면서 믿고 싶은 것이다. 손톱을 얻지 못한, 2월 20일부터 시간은 흘러간다. 손톱을 얻지 않는다는 건, 비로소 그녀가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거나 불안을 해소해줄 대상을 찾은 것이다. 바로 도브다.




도브



도브는 작 중반부터 만난 애인이다. 롤라는 Dove에서 L만 바꾸면 LOVE라고 조소한다. 필자도 뜬금없는 사랑 타령보단,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비둘기, 평화와 안정을 뜻한다. 롤라는 도브와 만나면서 시간이 흐른다. 안정을 찾아가는 것이다. 도브는 그녀에게 초콜릿을 만들어주면서 썸을 이어나간다. 결국 연인 관계가 된다. 하필 초콜릿이다.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도브가 만들어 준 수제 초콜릿이다. 초콜릿은 달콤하다. 위로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달콤함을 짧다. 계속해서 탐하면 질리고 엄청난 칼로리를 감당해야 한다. 그녀는 도브와 만나면서 안정과 평화, 설렘을 얻지만 일시적이다. 그를 탐하면서 잠시의 달콤함, 설렘이 사라지자 다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소제목은 다시 일요일이 된다.




스핑크스의 죽은 자



롤라는 후반 꼬리박각시를 만나게 된다. 꼬리박각시를 만나며 손톱을 잃어버린다. 뒤늦게 잃어버린 걸 알아, 늦은 밤 찾아보지만 결국 찾지 못한다. 그녀가 모아왔던, 그녀의 일부기도 했던 정체성을 다시 재정립한다. 그녀를 상징했던 꼬리박각시를 만나면서 말이다. 꼬리박각시는 MORO SPHINKS다. 직역하면 '스핑크스의 죽은 자'다. 작 서두에서 이집트 이불, 크리스마스에서 스핑크스의 미소, 이번에는 스핑크스의 죽은 자'다.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 나일강이 자주 범람해 이집트인들은 고통받았다. 그런 환경 탓에 사람들은 불변성, 영원성, 절대적 진리를 추구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등 종교적 건물이 생긴 배경이다. 계속해서 이집트 소재와 건축물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롤라도 같은 걸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라의 추구는 본질적으로 덧없다. 스핑크스도, 결국 파라오도 종교적 제사 문화일 뿐이다. 죽은 자는 살아돌아오지 못한다. '스핑크스의 죽은 자'가 그 허망함을 잘 표현해준다. 아무리 미이라가 되던, 피마리드를 짓고 스핑크스를 두던, 그건 그냥 죽은 자일 뿐이다. 롤라가 쫓는 것도 그냥 허상일 뿐이라고, 꼬리박각시는 말해준다. 롤라는 손톱을 잃어버렸고.




나방과 나비



번외로, 필자는 나방 외에 나비도 생각해보고 싶었다. 롤라가 나방이라면, 흔히 긍정적인 쪽으로 대립되는 나비가 언급되지 않을까? 적어도 나비와 구별되는 '꼬리박각시'만의 특별함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제일 처음 찾은 건 정사 후의 담배, 니코틴이다.



샴푸로 머리를 감아 머리카락을 말리고, 몸을 청결히 하여 장미나 코코넛 향기를 풍기고……. 세상 모든 사람처럼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나 롤라는 담배를 피운다. 니코틴으로 충전한다.


- 25p



보통 샤워를 하고 코롱, 향수를 뿌리지만. 롤라는 담배를 피워 니코틴을 충전한다. 담배 또한 수명을 갉아먹는다. 백해무익한 걸 자꾸 피워대는 건 나방의 몸짓이다. 무엇보다도 저 위의 코롱과 향수 등을 뿌리는 사람들은 롤라와 비교하자면 '나비'다. 나비와 구별되는 롤라를 확연히 드러낸다.


낮에는 '머리를 가릴 지붕을 갖기 위해' 무미건조한 직장에 몸과 뇌를 코마 상태로 붙들어 놓지만, 금요일과 토요일 밤이면 위장에 가까운 짙은 화장을 하고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남자를 사냥하러 나선다.


- 173p, 역자 후기 中



역자 후기를 보면, 번역가는 '롤라'가 낮에는 무미건조한 직장에 다니는 코마 상태라고 한다. 필자가 보기엔 삶을 이어가기 위한 에너지를 보존하는 상태로 봤다. 나방으로 변태하기 직전의 번데기 상태가 연상됐다. 다른 점이라면 나비처럼, 변태해서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낮에는 번데기로, 밤에는 나방으로 사는 것일 뿐이다. 그뿐이다.

소설 속에 마련해둔 이런저런 장치들을 찾아가는 맛에 제멋대로 재밌게 읽었다. 저자 줄리 에스티브는 현대인의 애정 결핍과 성적 황폐함을 그려냈다고 한다. 위태로운 나방 떼 같은 삶, 그러나 엄마의 품 같은 건 없다고. 그녀를 공감하고 위로해주고 싶지만 뭔가 그러다간 어느새 나방 떼로 합류할 것만 같아 껄끄럽다. 괜히 뒷걸음치게 만드는 소설 같다. 나비는 다가가서 구경하지만 나방은 애써 멀리하는 것처럼, 작가가 그런 꼬리박각시를 표현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리뷰를 다 써놓고 웃긴 게 뭐냐면, 사실 나비와 나방 둘다 나비목이다. 필자는 한국에서 살면서 나방과 나비를 구분하며 살았지만,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둘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한다. 저자 줄리 에스테브 또한 나방과 나비를 구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작 중에서 꼬리박각시와 동일시됐던 롤라는, 그녀가 여기기에 나비가 되었을 수도 있음을 뜻하는 게 아닐까? 어찌됐든 필자가 기를 쓰고 구분했던 건 결국 무의미했다. 결국 롤라의 정체성은 그녀 자신 빼고, 아무도 규정할 수 없다는 걸 얘기해주는 것 같다.


하이힐은 다른 구두보다 빨리 망가진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미모와 비슷하고, 그래서 관리가 필요하다. - 32p

그가 그녀의 몸에 삽입한다. 아랫배 깊숙이 들어간다. 빈틈은 채워졌으니 고독은 다른 곳에서 구멍을 만들 것이다. - 34p

10년 전부터 펠릭스는 연못에 와서 5분간의 바람을 판다. - 113p




책 소개



<꼬리박각시>의 신경이 날카롭게 선 듯한 문장은 그 하나하나가 대담하면서도 섬세하게 응축되어 있다. 주인공 롤라 또한 이러한 문장을 꼭 닮았는데, 문체와 등장인물의 일체감이 문학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유서 깊은 출판사 Stock이 모험이자 도전이었을 이 소설을 선택한 이유일 것이다.

주인공 롤라는 낮에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밤에는 허벅지에 꽉 끼는 짧은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딛고 몸을 휘청거리며 어둠이 내린 파리 밤거리를 방황한다. 롤라에게 섹스는 망각을 위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아물지 않을 상처를 잊기 위한, 파리라는 근사한 도시에서 자신을 소외시킨 사회의 이중 잣대와 남성 사회에 복수하기 위한 수단이다.

어느 장소든 누구든 상관없다. 롤라는 그들과 몸을 섞고 그들의 손톱을 잘라 모은다. 그것으로 겨우 하루를 버틸 수 있다. 그러던 중 한 남자를 만난다. 이웃집으로 이사 온 도브다. 그는 롤라와 가까워지려 하고, 직접 만든 초콜릿을 선물하기도 한다. 롤라도 다른 남자들과는 다른 감정으로 그와 조금씩 가까워지는데…….



*


꼬리박각시

- MORO-SPHINX -

지은이 : 줄리 에스테브(Julie Estéve)

옮긴이 : 이해연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소설 / 외국소설 / 프랑스 소설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쪽 수 : 176쪽

발행일

2019년 04월 15일

정가 : 13,000원

ISBN

979-11-965176-5-6 (03860)


[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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