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주생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근현대문학의 뿌리 [도서]

한국의 고전소설 <주생전>을 읽고
글 입력 2019.04.3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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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생전은 1593년(선조 26)에 지은 권필의 한문고전소설이다. 우리는 근현대의 문학을 접할 기회가 많지만, 고전 소설에 관해서는 관심을 갖고 찾아보지 않는 한 그럴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고전소설을 해석하며 읽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막연한 불안감과 더불어, 현대의 현실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에 흥미가 떨어진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생전은 구성적, 내용적 측면에서 근현대의 소설과 맞닿아 있는 지점들이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과거의 한문 소설에 관심을 갖고 한국 문학에 대해 더욱 깊이 있는 탐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줄거리적인 측면으로 살펴보면 주생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 작은 배를 한 척 사 장사를 하며 이곳저곳을 떠다닌다. 그러다 고향 땅을 밟았을 때, 기생이 된 옛 소꿉친구 배도를 만나게 된다. 둘은 사랑을 맹세하고 정식으로 혼인하기를 약속하였으나 주생은 배도를 따라갔다가 우연히 훔쳐본 선화의 자태에 푸욱 빠지고 만다. 그 후로 선화의 남동생 국영의 글쓰기를 가르치게 된 주생은 국영을 더 잘 가르칠 수 있다는 핑계로 선화의 집에 머물며 선화와 잠자리를 나눈다. 그것도 모르고 하루하루 주생을 기다리던 배도는 점점 야위어간다. 점점 더 그에 주생을 만나기 위해 선화의 집으로 간 배도는 주생의 소지품에서 선화가 써준 시구를 발견한다.


배도는 마침내 모든 것을 눈치 채고 체념하기에 이른다. 이후 배도가 병을 앓아 죽고 주생 역시 선화와 헤어져 지내는데 선화와 주생은 상사병에 걸려 점점 쇠약해져간다. 몸을 의탁할 곳이 없었던 주생은 친척 집으로 가 한 달을 머물렀고, 사정을 뒤늦게 듣게 된 친척어른은 우연찮게 부인과 선화의 집안이 잘 아는 사이라며 둘의 혼인을 성사시키고자 한다. 그렇게 둘은 다가오는 9월 혼인을 약속하였지만 때마침 조선에 전쟁이 터지고 만다. 주생은 글을 잘 썼기에 전쟁터에 불러나가 일을 하게 되고 선화를 보지 못해 점점 쇠약해가던 차 ‘나’를 만나게 된다.


‘나’는 주생의 이야기에 크게 감동받아 이를 소설로 옮긴 것이라 밝힌다. 즉 주생전은 액자 형식의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독자가 존재하고 이야기 속에 또다른 이야기가 들어있는 형식인 것이다. 이는 기존의 인물들만 등장해 소설을 이끌어나가던 방식의 한국고전 소설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으며 조금 더 근현대에 가까운 방식의 소설적 전개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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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러한 종류의 소설은 그 주생전 말고도 여러 작품이 존재하는데, 기본적으로 한국의 민담들도 이런 구조를 차용한 작품이 많고, 대표적으로 ‘운영전’은 소설 속에 소설이 들어있는 액자소설의 전형으로 우리가 한 번쯤은 들어 익히 알고 있는 작품이다. 이렇듯 ‘액자소설’ 자체가 주는 느낌은 어느덧 ‘낯설고 신비롭다’라기보다는 ‘익숙하고 친근하다’라는 측면에 가까워졌는데, 그러나 이는 액자소설 자체에 대한 느낌이지 액자소설을 직접 마주하는 느낌은 이와는 정반대다. 즉 결국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 밝혀지는 ‘액자소설’ 장르에 대한 폭로는 그 순간으로 하여금 독자에게 놀라움을 선사하고 작품을 다시 보게끔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주생전 또한 마찬가지였다. 주생전이 액자소설이라서 놀라운 것이 아니고, 그래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주생전은 조선시대 주생이라는 인물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로, 주생전이 처음 시작할 때 화자는 등장하지 않고 결말부에 가서야 정체를 드러낸다. 이러한 화법은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를 듣는 듯한 상황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 독자에게 주는 긴장과 반전의 매력, 그것은 주생전을 다시 돌아보게끔 만들었다.


그저 서술자가 3인칭 시점이라고만 생각했지 ‘나’가 직접 듣고 서술한 이야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한 것, 그래서 그 사실을 알고 소설을 다시 돌아보았을 때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작품의 내용적 측면이 다른 효과로 다가오게 된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은 주생전의 끝과 마주했을을 때 작품을 읽는 독자 역시 ‘나’가 되는 듯한 체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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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주생전에서 잘 드러나는 고전소설의 특징은 바로 주생의 사랑의 방식에 있다. 고전소설은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새로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거나, 새로운 사람에게 버림 받거나 배신 당해 다시 처음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주생전은 전자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주생은 처음 만났던 배도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선화를 만나게 되고, 선화에 반해 배도를 버리고 선화와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결국 그 결말은 배도는 죽게 되고 선화와 주생은 결별하는 비극적 상황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결코 ‘주생의 선택’에 대한 결과는 아니라는 데 초점이 있다.


작가는 작품의 흐름을 ‘선화와 이별하고 다시 배도와 만나는 주생’으로 설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았을 것인가? 혹은 선화의 이야기는 몰라도 배도와 주생은 다시 만나 잘 살았을 것인가? 그러나 그렇게 상상하면 소설의 흥미가 왠지 매우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조금 더 사건의 전개가 분명해지고 재밌어지려면 더 많은 갈등이 생기고 그에 대한 대책 혹은 체념이 있어야한다. 주생전의 작가는 그 갈등을 주생과 배도의 이별로 설정하였고, 그 대책 혹은 체념은 배도의 죽음과 다시 주생과 선화의 이별로 얘기하고 싶은 것 같다.


내용상에서 느꼈던 특이점에 대해 서술해보자면 작품 속 인물들의 ‘감정의 전달’은 ‘시구’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즉 인물들이 어떤 감정을 전달하고자 할 때 ‘시구’를 지어 그 감정을 담게 되는데, 이 점이 이 소설의 가장 흥미로운 측면이자 깊은 면이라고 생각했다. 이 소설은 단지 소설에만 그치지 않는다. 소설에서 우리는 여러 개의 시와 마주하게 되는데, 이는 위에 기술했듯 인물들의 감정을 담았으며 각각의 시구 안에 나름의 서사가 존재한다. 즉 이 소설은 소설 안에 시가 담긴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시+소설’이라는 구조는 고전소설이라기 보다는 현대적 소설에 가까운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소설과 마찬가지로 시 역시 인물이 존재하고 갈등이 있으며 인물의 감정이 드러나고 전체의 서사가 존재한다. 그 자체로 하나의 서사를 가지고 있는 완결된 작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라는 형식의 독립된 작품이 소설 속에 들어가 소설을 ‘이루고’ 있을 때는 그 역시 하나의 소설의 서사적 장치에 불과하게 된다. 아무리 독립성을 띤다 해도 ‘시+소설’은 ‘소설’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또한 놀라운 점은 앞서 말했듯 주생전의 가장 특징적인 형식은 ‘액자소설’이라는 점이다. 즉 주생전은 ‘[(시a+소설b)=소설A]=소설N’의 구조를 띠고 있다. 하나하나 분석해보면, 주생전을 관통하는 주 이야기인 주생의 이야기(b), 그 소설 안에서 인물들이 각각 만들어낸 하나의 완결된 작품인 시(a), 그리고 이 둘이 합쳐져서 주생전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이렇게 완성된 주생의 이야기가 A를 지시하게 되는데, 이는 다시 주생전 전체의 서술자 ‘나’에 의해 기록되고 서술되기에 이른다. 즉 A 소설의 바깥에 있는 ‘나’에 의해 A가 쓰이게 되는데 이렇듯 ‘나’라는 서술자를 등장시켜 액자소설의 액자 부분들 드러낸 이야기는 B로 지시할 수가 있다.


고전소설에서 이러한 구조를 발견하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고전소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단순한 액자소설이 아닌, 그 안에 다시 ‘시’라는 하나의 문학 장르를 포함하고 있는 소설. 이는 문학이라는 장르에서 소설이 가지고 있는 위치가 상당하며 ‘시’나 ‘소설’ 등 문학 작품의 많은 갈래들을 포괄하여 다시 완전한 하나의 독립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소설’이라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소설만의 특징도 아니고, 현대에 와서야 이루게 된 소설의 장르적 특징도 아니다. 이미 한국의 고전소설이 가지고 있었던 가장 기본적인 소설의 특징인 것이다. 주생전은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고전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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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현대에 와서 한국 고전 소설을 탐구하는 것은 그 시대에서 현대에 오기까지 소설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알 수 있는 열쇠일 수 있다. 주생전을 비롯한 여러 고전 소설, 한문 소설을 통해 우리 민족 소설의 뿌리를 찾아가는 것이 하나의 의미있는 시간으로 다가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정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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