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함익 - 햄릿, 줄리엣, 그리고 함익

글 입력 2019.04.19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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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극 <함익>

학회에서 독문학을 읽고 재해석한 후 UCC를 제작한 경험이 있다. 그때 당시 읽었던 책은 미하엘 엔데의 <모모>였다. 나와 후배 두 명은 이 책을 읽은 뒤 각자의 해석과 생각을 공유하였고, 동일하게 생각되는 부분을 동영상으로 제작하였다. 이 경우 말 그대로 해석만 다를 뿐이지 <모모>에 관한 이야기는 그대로 들어가 있다.

하지만 <함익>은 달랐다. <함익>의 설명은, '재해석'이 아니라 '창작극'이었다. 햄릿의 모티브는 따왔지만, 햄릿의 이야기를 재해석한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내었다.



햄릿, 그리고 함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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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는 사람도 있지만 아마 대부분은 '명작'이란 것에 중점을 두고 소설을 읽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물론 그의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다행인 것이지만. 나 역시 재밌어서라기보단 명작이라는 이유로, 필독 도서라고 지정된 이유로 책을 읽은 경우가 더 컸던 것 같다. 그렇기에 나에게서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어렵고 심오하고 딱 읽고 나면 먹먹한 느낌이 들었다(옛날에 읽었던 경험이지만).

하지만 책과 연극은 역시 많이 달랐다. 햄릿과 달리 <함익>은 역동적이고 생동감있게 마주할 수 있었다.

주제가 생각보다 심오하고 무거워보여서 연극 역시 긴장한 상태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히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간중간 담겨있는 웃음 요소가 긴장을 풀어주는 데 한 몫 했다. 그렇다고 주제마저 가볍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함익'이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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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익은 친부와 계모, 배다른 남동생 사이에서 자신의 입지가 완고하지 못 한, 가족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그저 일원 중의 한명이다. 대기업 오너의 딸로 살아가면서 경제적으로는 풍족한 삶은 살고 있어도 사람으로의 대우를 받지 못 한다. 오필형이라는 약혼남이 함익의 옆에 있지만 그마저도 함익을 사람으로 원하는 것이 아닌, 함익의 배경만을 원할 뿐이다. 그런 함익에게는 분신 '익'과 '연우'만이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한다. 로또에 당첨되거나, 하늘에서 5억원이 뚝 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 그러면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최종 장래희망이었던 '돈 많은 백수'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익은 나의 생각과는 달랐다. 내가 원하는 만큼 풍족하고 부잣집 딸이었지만, 어딘가 부족하고 텅 빈 느낌을 가진 사람이었다.

<함익>의 주된 관점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가 아니라, '죽어있느냐 살아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였다. 햄릿은 앞으로 벌어질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만, 함익은 지금 서 있는 현재를 중점으로 고민했다. 나는 늘 5년 후의 나, 10년 후의 나를 그리는 것이 어렵다. 그런 나에게는 햄릿보다는 함익의 생각이 더 와닿았다. 나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중이기에 내 미래는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나'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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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이 함익과 익이 손을 잡고 뒷 모습을 보여주며 걸어가는 장면을 아마 많이 골랐을 것 같다. 이 장면에는 원래 제작자가 하고자 했던 의도가 있었을 것이고, 다른 이의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함익이 가둬두었던 감정을 표출해 내는 것에 대한 클라이막스일 수도 있고, 새로운 시작을 나타내는 장면일 수도 있다. 나는 이 장면에서 '나'를 지탱해주는건 내가 아닌 그 누구도 될 수 없으며, 나 자신을 가장 위해야 한다고 느껴졌다.

확실히 길지 않은 시간 안에 하고자 하는 말을 너무 많이 담으면 분위기가 전환되고 이질감이 드는 것 같다. 아마 그것이 실시간으로 행해지는 '연극'이라는 것의 단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서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보려한다면, 내가 직접 각본을 스스로 짜던가 해야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연극 <함익>은 부족함 없이 즐길 수 있는 연극이었다.


[배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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