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음의 숙제 - 흡혈귀들의 동네에서 느끼는 진한 인간다움 [웹툰]

마이너에 대한 고찰 07
글 입력 2019.04.17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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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웹툰


<마음의 숙제>는 현재 네이버에서 토요일마다 연재되고 있는 웹툰이다. 이 웹툰은 종이 위에 물감으로 칠한 듯한, 엷은 느낌의 그림체, 그에 어울리는 손글씨로 적힌 주옥같은 대사들, 그리고 잔잔한 스토리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감정들이 매우 매력적이다.

독립하게 된 주인공 조이경은 집값이 싸고 조용한 어느 동네로 이사를 간다. 그런데 이 동네, 뭔가 이상하다. 조용하다 못해 사람이 아예 살지 않는 것 같고, 흔한 식당조차 없다. 그 이상한 동네에서 이경은 13년 전 고백한 다음 날 사라진 첫사랑 호선을 마주치고, 밤에만 활동하는 동네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고, 그들이 모두 흡혈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경계심과 두려움으로 시작된 이들과의 생활은 점차 이경의 일상에 젖어 든다. 조금, 아니 많이 이상한 이 동네는 주인공 이경을 흔들고 행복하게 만들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 또한 그 매력적인 세계로 이끈다.



가장 인간적이지 않은, 그러나 가장 인간적인 곳으로의 초대


‘흡혈귀 소굴’ 그리고 ‘인간들이 활동하지 않는 밤과 새벽.’

<마음의 숙제>의 배경은 전혀 인간적이지 않다. 배경만 나열해보면 스릴러 장르가 가장 먼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은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기능을 하며 예상치 못한 따뜻함을 선사한다.


악마도 흡혈귀도 직접 본 적이 없다.
모르기 때문에 무서웠던 거야.
마음이 제멋대로 그림자를 키운 거야.

<마음의 숙제> 6화 중


이 세계를 모르는,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는 실은 이곳이 얼마나 따스한 곳인지 알지 못한다. 사실 이곳은 변변찮은 식료품점이나 요식업체도 없고, 낮에는 다니는 이 없이 황량하며, 들어간 인간들이 금방 이사를 가버리는, 그런 곳이지만 적어도 이곳에는 우리가 한때 ‘인간적’이라고 불렀던 ‘정’이 가득하다. 이야기에서의 흡혈귀들은 ‘쓸데없는’ 호의를 보이고, ‘소속에 대한 묘한 집착’이 있어 새로운 구성원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이 넘치며 남의 물건을 절대로 가져가지 않는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밤과 새벽의 시간에는 마을에 이사 온 새로운 사람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한 환영회가 열린다. 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한두 방울 정도 부족한 그런 것들이 이 마을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한껏 역설적인 이 웹툰의 배경은 너무 매력적이어서 몰입할 수밖에 없게 하고, 그래서 웹툰을 보는 동안 꼭 내가 이 신비로운 동네에 와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적어도 그 순간에는 내가 일상에서 종종 그리워했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감정을 함께 할 수밖에 없는 동네 사람들


이야기를 구성하는 인물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중심이 되는 인물들은 주인공 조이경, 그의 13년 전 첫사랑 호선, 밤의 축제 사장 윤봉원, 그리고 흡혈귀 여음과 늙지 않는 여음과 달리 할머니가 된 여음의 동생 정도이다. 이들 중 단 한 명도 완벽한 선이나 악으로 향하는 이는 없다. 그저 각자의 감정에 충실하며 방식은 각자 다르지만, 서로에게 조금씩 정을 떼어주는 과정을 밟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상처를 받기도 한다. 모두가 다르지만, 모두가 인간적인 이들은 우리가 그들과 함께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모든 인물이 입체적이고 그래서 애착이 가지만, 오늘은 주인공 이경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려 한다. <마음의 숙제>는 현재 15회까지 연재되고 있고, 아직 초반부라 이경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매력을 느꼈다면, 앞으로의 연재분들을 함께 보면서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도 알아가기를 바란다.)

이경은 정말 ‘인간다운’ 인간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도시가 품은 고독하고 쓸쓸한 영혼’이라고 정의하고, 함께 일하는 회사 동료는 그녀를 ‘무심하고 무던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지만, 사실 이경은 첫사랑의 경험으로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뿐 타인에게 마음을 열 줄 알고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의 불안정한 감정들은 계속해서 뒤집히고 또 전복된다. 가끔 그런 이경의 모습은 이기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우리 안의 모순적이고 변덕스러운 마음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어쩔 땐 이경의 기분에 누구보다도 격하게 공감하면서, 어떨 땐 이경의 모습이 가장 싫어지기도 한다.

한편 이경 외에 동네 사람들은 흡혈귀이다. 지금까지는 이들이 불안정한 이경에게 인간적인 가르침을 주는 내용이 많았지만, 앞으로는 그들의 이야기가 더 진행될 것이다. 그들이 처음부터 흡혈귀는 아니었다는 것을 웹툰 중간중간에서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이 흡혈귀가 된 사연이 무엇인지, 또 밝음과 따뜻함 속에 분명히 존재할 각자의 상처가 무엇인지 점차 드러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인간이 아니게 된 존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또 그 이야기에 울고 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대사들


그냥 보기엔 가볍게 볼만한, 일상적인 웹툰 같지만, 천천히 책을 읽듯 인물들의 대사, 독백, 그리고 이야기들을 읽으면 우리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이경은 주민의 등에 업혀
옆집에 가게 되었다.
내내 사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좋든 싫든 타인과 섞여 살아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마음의 숙제> 5화 중


어설픈 자학으로
대충 얼버무릴 수도 있지만
이제 이 사람들한텐 그러고 싶지 않다.
솔직함이 약점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일이 어렵지 않은 곳이었으면 좋겠다.
이곳만큼은.

<마음의 숙제> 10화 중


이경이 동네 주민들에게 경계심을 가졌던 시작부터 이제는 이곳 사람들을 특별한 이들로 받아들이기까지의 변화는 이경의 독백으로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독백은 단순히 이경의 생각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이기도 하고 우리의 바람이기도 하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함께’ 해야 하는 운명인 것, 그리고 이왕 함께해야 한다면 ‘어떠한 함께’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 나는 저 독백이 그래서 우리의 삶과 닿아있다고 생각한다.

이것 외에도 <마음의 숙제>에서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겪고 있고 느끼고 있지만, 말로는 정리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생각들이 줄줄이 이어져 나온다. 개인적으로 대부분의 명언이나 명대사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무언가가 새롭게 태어나서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느끼고는 있지만 말로는 정의하지 못한 것들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소해 보이는 <마음의 숙제>는 우리가 고개를 주억거릴만한 생각들이 스토리로 가시화되었고, 대사들로 정리되어있기 때문에 더 소중한 작품인 것이다.

*

계속해서 말하지만, <마음의 숙제>는 결코 강하고 자극적으로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이끌지 않는다. 그러나 잔잔함 속에서의 감정의 동요는 우리가 이 이야기에 이끌려갈 만한 충분한 동기가 된다. 그리고 이 웹툰은 무엇보다 감정의 묘사 그리고 감정의 나눔의 기능을 잘 해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한 번 보기 시작한 뒤로는 계속해서 이끌릴 수밖에 없다. 현재 계속해서 연재되고 있는 이 웹툰이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우리의 마음을 깨울 것인지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보려 한다.


[김윤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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