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프지만 사실적인_ 스위밍 레슨

글 입력 2019.04.08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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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나서도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어떻게 작성하면 좋을까 생각하며 말이다. 리뷰를 작성하고 있는 이 순간까지도 어떻게 글을 써야할지 많은 고민이 된다. 서정 미스테리라던 <스위밍 레슨>은 내게 있어 너무나 폭력적인 작품이었다. 간식을 먹으며 읽기 시작한 이 책은 나의 식욕을 바닥 저 끝으로 떨어뜨렸고, 사람을 계속 멍하게 만들었으며 마음을 아프게 했다. 끝까지 읽기조차 힘들었던 <스위밍 레슨>을 읽고 난 후의 솔직한 내 모습을 적자면 이러하다.


책은 길 콜먼이 서점 2층 창문으로 인도에 서 있는 죽은 아내 잉그리드를 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처음 시작만 보면 누가봐도 미스테리 장르의 책이다. 죽은 아내가 인도에 서 있는 것을 보다니. 약간은 판타지스럽기까지 한 시작이었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잉그리드의 편지를 통해 비밀이 하나하나 드러나게 된다.




줄거리



잉그리드는 대학 교수와 학생으로 만나 결혼한 남편 길 콜먼과 살아온 이야기를 수십 통의 편지에 담아 책 곳곳에 숨겨 두고 사라진다. 경찰과 기자들은 그녀가 익사했다고 발표한다. 그리고 12년 후, 길은 서점 2층 창가에서 인도에 서 있는 아내를 봤다고 확신한다. 길은 서둘러 그녀를 따라가지만 해변 산책로 난간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 플로라와 낸은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 그들의 집인 스위밍 파빌리온으로 돌아온다.


어머니가 죽지 않았다고 믿는 작은 딸 플로라와 현실을 직시하는 큰딸 낸, 두 자매의 어머니이자 유명 작가 길 콜먼의 아내 잉그리드 콜먼. 밤새 잠들지 못하다 새벽이면 차가운 바닷물에 몸을 의지해야 했던 그녀는 정말 죽은 것일가까? 길과의 만남부터 결혼생활, 이별까지 수수께끼처럼 긴 세월 책 속에서 침묵하던 그녀의 편지가 하나씩 발견되며 비밀이 하나 둘 수면 위로 떠오른다.


소설은 길 콜먼의 집 스위밍 파빌리온을 배경으로 현재 시점과 과거에 잉그리드가 쓴 편지들이 교차 전개된다. 현재 시점에서는 이제 나이 들고 병들어 침대에 누운 길 콜먼, 플로라와 낸, 플로라의 남자 친구 리처드가 어린 시절 가족과 잉그리드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하고, 잉그리드의 편지는 아내이자 두 딸의 어머니이며 순수한 여성으로서의 속마음을,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스런 이야기들을 고백한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동안 독자는 잉그리드의 마음을 읽고 현재 남은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소설의 마지막까지 온갖 상상과 추측을 해 나간다.




폭력적인 책



개인적으로 이 책은 굉장히 폭력적인 책이라고 생각한다. 잉그리드에게도, 그리고 독자들에게도 말이다. 아이, 남편, 집, 남자는 다 걸림돌이 될 뿐이며 공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던 잉그리드는 그의 스승이자 20살 차이가 나는 대학교수 길 콜먼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공부가 가장 중요하다던 그녀는 대학교에서 퇴출되었고, 임신과 유산을 반복했으며, 남편은 수 많은 외도를 저질렀고(그녀의 절친을 포함하여), 남편의 혼외자식이 있기도 했으며, 자신의 글을 남편에게 도둑맞기까지 한다.


가장 폭력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했던 장면은 임신과 유산에 관련된 부분이었다. 남편인 길은 여섯 명의 아이를 가지고자 했고, 그녀가 임신을 하면 그는 "여섯 명 중의 둘째야, 기억하지?"와 같은 말로 그녀에게 여섯명의 자녀에 대해 세뇌시키듯 반복하여 말했다. 아이를 유산한 잉그리드에게 바로 다음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구토를 하는 그녀를 보며 "혹시.... 벌써 가능한 걸까?"라는 말을 내뱉는다. 마치 잉그리드가 길의 아이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임신을 위한 기계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길에게는 혼외자식이 있었고, 잉그리드는 임신만 5번을 했으며, 그 중 2번의 출산을 겪었다. 이 과정들이 세세히 담긴 잉그리드의 편지를 읽으며 정신적인 폭력을 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 잉그리드가 있었다면 얼마나 힘들고 아팠을까.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실적인 책




아무 느낌도 없었어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모성애가 샘솟기를 기다렸죠. 우리 엄마가 나를 처음 봤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 내가 물어보자 엄마는 나를 낳자마자 무척 사랑했다고 했어요. 겉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 p.180


엄마에 대한 생각도 바뀔 수 밖에 없었다. 생각과 감정, 선택, 상황에 대한 판단력을 가진 실체가 있는 존재. 플로라는 부모에게 '아버지 역할'이 왜 '어머니 역할'과 의미가 다른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 p.328



<스위밍 레슨>을 읽으며 계속하여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임신을 하고 결혼을 하며 잉그리드가 겪었던 삶과 결혼과 임신 후 82년생 김지영의 삶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경력단절, 모성애의 감정, 기혼여성이 느끼는 사회 등등 모든 것이 똑같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가진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이 나를 멍하게 만들고 마음을 아프게 한 이유는 이 책의 내용들이 소설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현실에서도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임신과 결혼으로 인해 바뀐 그들의 삶과 환경이 한 번에 덮쳐옴을 느끼고 경험한 그들은 현실이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책을 읽으며 길이라는 사람에게 계속하여 환멸감을 느꼈으며 여성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난 지금 해변에 앉아 있어요. 마지막 편지를 계속 미루면서 이미 당신의 책들 사이에 끼워 놓은 편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죠. 잼병과 수선화를 가지고 들어온 첫 수업을 기억하나요? 당신은 학생들에게 가장 어둡고 비밀스러운 진실에 대해 물었죠. 지금까지 편지를 빌려 내 비밀을 이야기했네요. 이 편지와 나머지 편지들을 발견하면 꼭 찢어서 태워 버려요. 절대로 아이들이 읽게 하면 안 돼요. - p. 354



세상에는 비밀스러운 진실들이 존재한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속으로는 감추고 있는 진실들 말이다. 이 세상은 이러한 비밀스러운 진실들로 뒤덮혀 있을 것이다. 길이 자신의 편지를 보기 바라지만, 자신의 딸들은 이를 몰랐으면 하는 잉그리드처럼 이러한 진실들을 내보이고 싶으면서도 숨기고 싶을 것이다.


<스위밍 레슨>은 여성의 삶과 비밀스러운 진실과 같은 소설같으면서도 현실같은 내용이 가득 담겨져 있는 사실적인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더욱 거부감, 불쾌함, 불편함과 같이 감정이 뒤덮었는지도 모른다.




"수영은 전혀 힘들지 않아요. 난 오히려 수영을 하면 편안해져요."



잉그리드는 길이 돌아오지 않는 날이면 수영을하고, 편지를 썼다. 그녀는 유산을 하여 병원을 찾았을 떄도 "그럼 수용도 하지 말라는 말씀인가요?"라는 질문을 한다. 그만큼 수영은 그녀에게 중요하고 소중한 일이었다. 아마 옷을 모두 벗고 수영을 할 때면 엄마로써의 자신과 아내로써의 자신을 잊고 온전히 잉그리드가 되는 시간이지 않았나 싶다. 그녀만의 시간,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순간말이다.


그녀는 "이제 마지막 수영을 하러가요. 부표가 있는 곳까지, 아니면 좀 더 멀리 갈지도 모르겠네요"라는 말을 끝으로 마지막 편지를 마친다. 그녀는 마지막 편지를 쓰는 순간 그녀의 딸 낸에 대한 걱정을 한다. 제발 낸이 모두를 보살피고 뒤치다꺼리하는 엄마 역할을 하기 못하게 해달라며, 그 아이가 자유롭게 해달라며 말이다. 자신의 딸이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원하며 자신이 자유를 갈망하듯 자신의 딸도 자유롭기를 바란다.


과연 그녀는 알몸으로 수영을 하던 그녀의 모습처럼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책에서는 잉그리드가 죽었는지, 아니면 살아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내용이 담겨있지 않다. 누군가는 살아있다고, 또 누군가는 죽었다고 생각하며 살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녀가 부표가 있는 곳을 넘어 조금 더 멀리까지 헤엄쳐 자유롭게 살고 있기를 바란다. 그녀를 위한 꿈을 꾸고, 그녀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그녀만의 삶을 마음껏 만끽하며 추운 바닷속만이 아닌 땅 위에서도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김태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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