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유 있는 미스테리 책 '스위밍 레슨'

잉그리드를 잃은 잉그리드의 삶
글 입력 2019.04.07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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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난 지금 해변에 앉아 있어요. 마지막 편지를 계속 미루면서 이미 당신의 책들 사이에 끼워 놓은 편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죠. 잼병과 수선화를 가지고 들어온 첫 수업을 기억하나요? 당신은 학생들에게 가장 어둡고 비밀스러운 진실에 대해 물었죠. 지금까지 편지를 빌려 내 비밀을 이야기했네요. 이 편지와 나머지 편지들을 발견하면 꼭 찢어서 태워 버려요. 절대로 아이들이 읽게 하면 안 돼요.

- 본문 중에서


미스테리 장르로 분류된 스위밍 레슨을 읽어나갔다. 표지에는 무언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듯한 여성이 그려져 있다. 어떤 내용을 담은 책인지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미스테리 장르, 그리고 어두운 표정의 한 여자. 어떤 사연이 있을까라는 호기심과 함께 사건을 함께 풀어나가고자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유 있는 미스테리



현재의 이야기와, 과거 잉그리드가 길에게 쓰는 편지가 교차되며 전개된다. 초반에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잉그리드가 애처롭게 편지를 보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하지만 그 편지의 이유를 생각보다 쉽게 알아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도달하기도 전에 남편 길의 행동을 통해 짐작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길은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잉그리드는 그로 인해 가정이, 그녀의 인생이 망가져버렸다.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 남편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이 그녀를 지옥으로부터 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잉그리드가 가정을, 그를 떠난 이유는 너무나 명확했고 당연했다. 내용에 몰입하면 몰입할수록, 잉그리드를 응원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좀 더 빨리 벗어나지 그랬어 라는 안타까움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나는 이유 있는 미스테리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떠나야만 하고, 이 상황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과거부터 지금까지 잉그리드와 같은 선택을 한 여성이 극소수이기에 그래, 미스테리로 분류될 수 있겠다 싶었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꾸리게 된 가정 그리고 이기적인 남편과 살아가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접하곤 한다. 이들은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지켜내고자 묵묵히 참는다. 건강하지 않은 침묵이 당연시 된다는 의미이다.

 

가정을 위한 여성의 희생이 당연시 되는 암묵적인 정서가 이 책을 미스테리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잉그리드를 잃어버린 잉그리드의 삶



대학교수인 길 그리고 학생 잉그리드. 이 둘은 20살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졌고 임신과 함께 급작스럽게 부부가 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온 세상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던 이들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그리고 이 고통은 여자인 잉그리드에게 더욱 버겁게 다가온다.


20대 초반의 잉그리드는, 문학에 뜻이 있고 다가올 미래에 큰 꿈을 품었을 평범한 학생이었다. 임신으로 그녀는 학교를 졸업할 수 없었고, 육아로 문학에 대한 꿈은 저버릴 수밖에 없었으며, 사회에 자신의 이름을 걸 기회도 잃게 된다.


반면 남편 길은 임신과 결혼이라는 똑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고픈 공부를 지속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나간다. 육아는 아내에게 미룰 수 있고, 3개월 만에 다른 여자를 만나도 용인될 수 있는 든든한 남성 중심적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잉그리드와 길의 상황의 무게는 다르다. 여자인 내게 잉그리드의 이야기는 남일 같지 않았고, 그녀가 받았을 고통을 떠올리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단단히 굳어져 깨지기 쉽지 않은 남성 중심적 사회와 어쩔 수 없는 생물학적 차이는 무력감을 느끼게 만든다. 어딘가에서 잉그리드의 삶을 살고 있을 여성들에게 응원과 공감 외에 어떤 힘을 실어줄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답을 떠올리기 쉽지 않다.


‘이제 마지막 수영을 하러 가요’ 잉그리드가 남긴 마지막 편지이다. 마지막 수영은 수많은 탈출구를 따지고 따져 선택한 최선의 탈출구였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프다. 차가운 바다가 그녀에겐 이곳보다 더 따뜻했으리라 믿으며 책을 덮어본다.






스위밍 레슨
SWIMMING LESSONS


지은이: 클레어 풀러(Claire Fuller)

옮긴이: 정지현

분량: 372쪽

정가: 13,800원

출판사: 도서출판 잔

발행일: 2019년 3월 18일

판형: 130×195(mm) / 페이퍼백

ISBN: 979-11-965176-3-2 03840


[고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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