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애도하는 마음이 필요한 이유 [기타]

글 입력 2019.04.07 17:0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170118003541_0_99_20170118222504.jpg
 


살아있는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앗아가는 역설적인 시간 안에서 죽음은 종종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곤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에서 역사 수업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많은 죽음을 간접적으로 접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 나는 교과서 한 권에 적힌 수많은 전쟁과 학살, 고문과 고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과 죽음이라는 피와 상실의 역사를 딱 그 얇은 텍스트의 분량만큼 안타까워하고 슬퍼했다. 그 와중에도 수업 시간이 끝나고 이어질 점심시간을 간절히 기다리면서 말이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매일같이 일어나는 너무 많은 죽음을 가볍게 목격하면서 점점 애도의 시간은 짧아지고, 상실에 무뎌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과거에는 각종 전염병으로, 전쟁과 굶주림으로, 그리고 잔혹한 독재와 학살로 바로 옆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인식하고 두려워했다면, 최소한 그런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자부하는 현재에는 각종 환경 문제, 재난 상황, 그리고 범죄라는 또 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도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과거의 사건을 망각하고 점차 죽음을 외면하고 회피해야 하는 소재 거리로 여기기도 한다.




죽음을 구경하는 사람들



141.jpg
정해민, <Playground>, 디지털 페인팅
215×3040cm, 2017 부분



작품의 검은 배경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참혹하고 암담하다. 이 안에는 한가로운 수영장에 돌연 소용돌이가 일어 침몰한 대형 여객선과 생체를 난도질하는 수술을 흥미로운 볼거리로 여기는 관객들이 있다. 이들은 죽음을 구경하는 것을 즐긴다. 이렇듯 무감한 인간상과 각종 사건이 혼란스럽게 뒤엉킨 모습은 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사회적 이슈가 끊임없이 수용되고 재생산되는 지금의 디지털 사회를 쏙 빼닮았다.



“신문 읽기라고 불리는 가증스럽고 음란한 행위는 지난 24시간 동안 우주에서 일어난 모든 불행과 재앙들, 5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전투, 살인, 파업, 파산, 화재, 독살, 자살, 이혼, 정치인들과 배우들의 잔인한 감정들. 그런 것들에 신경도 쓰지 않는 우리를 위해 특별히 흥분되고 긴장되는 아침의 오락거리로 변형시키며, 이것은 카페오레 몇 모금과 대단히 잘 어울리게 된다.”


- 알랭 드 보통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中



지하철 안에서도, 식사를 마치고 다음 일정을 기다리면서도, 그리고 자기 전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할 때도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인터넷 랭킹 뉴스를 차례대로 클릭해본다. 그 짧은 순간 사람들은 거대한 산불 소식에 충격을 받고 각종 범죄 사건에 분노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엄청난 불길로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지 못한다. 게다가 안타깝게 희생된 피해자에 대한 애도보다도 피의자 얼굴 공개를 요구하는 분노의 목소리를 우선으로 내며 지극히 무심한 순간을 보낸다.



151.jpg
 
 

이렇게 관음이 일상이 되고 죽음에 무뎌지는 사회에서 우리는 인간성을 회복하고 삶을 존중하기 위해 애도하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흔히 나의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하지만, 사실 마냥 남의 일도 아니다. 누구나 살면서 그와 비슷한 상실의 고통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나는 자신의 어머니를 잃은 엄마의 슬픔, 엄마를 잃은 어린 아들의 슬픔, 그리고 형제를 잃은 친구의 슬픔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한 사람이 오는 건 한 세계가 오는 것이라 했는데, 정말인지 그들은 마치 세계를 잃은 듯한 슬픔과 괴로움에 빠져 있었다. 한 사람의 가치관, 삶의 방식, 관계 맺은 사람들, 그리고 접했던 지식과 그 사람만이 겪었던 사회 문화적인 경험까지. 사람을 잃는다는 건 그 모든 것을 저버리는 일과 다름없다. 그가 삶에 남긴 흔적이 너무도 많아서 하나하나 잘 보내주기 위해서는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애도는 단지 슬프고 괴로워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찬찬히 상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가 입었던 옷, 좋아했던 음식, 그리고 즐겨 보았던 것들을 보내주고 그와의 생각과 감정의 교류를 더는 이어갈 수 없음을 인정하는 마음의 태도를 지녀야 한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대게 삶의 무게를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물론 많은 개인이 슬퍼할 겨를도 없이 일상으로 쫓기듯 내몰리고, 과도한 정보와 이슈가 쏟아지는 정신없는 사회에서 깊이 마음을 쓰기란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당장은 눈앞에 보이는 얼마 뒤면 지고 말 꽃들, 미세먼지 탓에 보기 힘들어진 푸른 하늘, 그리고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같이 점차 사라지는 것들에 조금씩 관심을 기울이고 안타까움을 느끼며 애도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박민영.jpg
 

[박민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