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블레이드 러너 2049 - 인간성의 경계에서 열린 새로운 가능성들 [영화]

마이너에 대한 고찰 04
글 입력 2019.03.2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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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의 영화, 감독 드니 빌뇌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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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 빌뇌브 감독의 작품들을 보면 공통적인 특징이 드러난다. 필자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 <에너미>, <블레이드 러너 2049> 총 세 가지의 작품을 보았는데, 모든 작품에서 ‘안개’가 나오고, 카메라가 안개 속에 묻힌 어떤 곳을 익스트림 롱 샷으로 천천히 담아내는 장면이 처음으로 나온다. 새로운 세계로의 입장인 것이다.

그렇게 드니 빌뇌브의 작품 속에 입장한 후에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하는 나 자신을 발견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의 영화를 볼 때 계속해서 물음표가 생기지만, 영화 내의 사건들은 비교적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서사의 명확성과 명확성 속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의문점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사실 관계에 대해 집착하게 하기보다는 영화의 중심에 있는 주제에 대해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성’이라는 본질에 대한 물음을 담고 있는 <블레이드 러너 2019>의 후속작을 드니 빌뇌브 감독이 제작한 것은 그야말로 적절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글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안에 끊임없이 생성된 논의들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논의되는 인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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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러너 2019>에서는 주인공 데커드의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리플리컨트들(레이첼, 로이 등)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면,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서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존재들을 제시해 인간성에 대한 논의를 환기시킨다. 가령 기존의 리플리컨트들과 복제물 사이에 서 태어난 스텔리네, 그녀의 복제물 K, AI 조이 등 단선적인 복제인간만이 아닌 다양한 유형을 제시한다.

나는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중심적으로 나타나는 비인간적 존재들과 인간의 결정적 차이는 ① 수단적 목적으로 탄생 ② 인조적(이식된) 기억 ③ 잉태 불가능으로 인한 생물학적 한계, 총 세 가지라고 판단했다. 이 세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인간성에 대해 고찰을 하다 보면 다양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첫 번째로 복제인간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수단적 목적으로 탄생된다. 이는 블레이드 러너 2019에서 2049에 오기까지 여러 장면을 통해 표현되는데, 먼저 리플리컨트들은 인간을 위한 우주 식민지 개척과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다. 이후 넥서스 8은 인간 중심주의 운동에 의해 학살당하며, 대정전 이후 남아있는 넥서스 8 또한 인간에게 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다. 그뿐만 아니라 리플리컨트들이 발전하는 과정 또한 인간의 필요가 강력한 동기로써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발전은 마치 어플리케이션의 업데이트와도 같았는데, 넥서스 6이 갑자기 감정을 가진 후 인간에게 반역하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부터 기억을 심은 넥서스 8을 만들고, 대정전을 일으켜 인간에게 해를 끼친 넥서스 8을 보고 인간에게 절대복종하는 새로운 리플리컨트를 만들기도 한다. 이후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영화 후반에 나오는 월레스의 의미심장한 대사는 리플리컨트들이 그토록 얻고자 했던 잉태의 기능조차도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두 번째로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기억’은 특히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한다. 기억이 인간성을 대변할 요소라는 것은 쉽게 증명된다. 예를 들어보자면 <블레이드 러너 2019>에서 레이첼 은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억을 근거로 제시하고,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를 목표했던 타이렐사도 리플리컨트를 더 인간스럽게 만들기 위해 기억을 삽입한다. 그렇다면 ‘기억’에 대해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 우선 영화에서의 ‘기억’의 개념은 영화 <공각기동대>의 ‘Ghost’와 비슷하다. 다만 <공각기동대>에서는 명확한 방향으로 ‘Ghost’를 다루는데 Ghost를 해킹당한 이들이 자아를 잃는 장면과 신체를 잃었지만, Ghost만을 가지고 정체성을 보존하는 주인공을 보여주며 물질적 신체가 아니라 영혼과 기억이 인간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반면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는 기억에도 다양한 변수를 제공하며 ‘인간성을 대변할 기억’의 기준에 대해 질문한다. 가령 보통의 리플리컨트는 제작된 기억을 이식받고, K는 누군가의 실제 기억을 이식받으며, 인간도 리플리컨트의 경계에 있는 스텔리네는 온전한 자신의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초기에는 기반 기억을 가지지만, 각자 서로 다른 경험을 쌓아 가는 리플리컨트들의 기억은 ‘인간적’ 기억이 될 수 없는가? 이식된 기억이지만 누군가가 실제로 경험한 기억을 가진 K가 쌓은 기억은 복제된 기억 위에 얹어진 것이기에 의미가 없는가? 또 리플리컨트로부터의 출생으로 탄생한 존재들은 ‘인간적 기억’에 대한 논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가? 또한 이들이 쌓은 갖은 경험으로 인한 감정들은 모두 인조적 기반에 의해 무의미해지는가?

마지막으로 이전까지 리플리컨트들은 출산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이 ‘출산’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출산을 통해 탄생한 리플리컨트는 더 이상 기억 이식이 필요 없게 되어 ‘인조적 기억’과 ‘잉태 불가능’의 차이점이 제거되고, ‘수단적 목적으로 탄생’의 차이까지 위협한다. 그러나 여전히 첫 번째 요소도 단정 지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영화 후반의 월레스와 데커드의 대화에서 월레스는 데커드와 레이첼의 만남, 사랑, 그리고 출산 모두 인간의 계획 아래에서 이루어진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즉, 리플리컨트의 생산을 위해 출산의 기능이 필요했던 인간들이 계획적으로 스텔리네를 출산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리플리컨트 출생 기능이 그들을 온전히 비인간적 존재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결국 인간-비인간의 경계를 담당하던 이 세 가지 요소는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애매한 경계에 놓이게 되고 역설적으로 인간-비인간의 경계를 흐리는 요소가 되었다. 이에 관객들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그렇다면 인간-비인간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동시에 ‘과연 리플리컨트들을 비인간이라 규정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포괄적 이접 측면에서의 블레이드 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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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제 A와 B의 관계가 ‘or’이라고 했을 때, ‘A가 참이고 B가 거짓’, ‘A가 거짓이고 B가 참’, ‘A 가 참이고 B가 참’ 총 세 가지 경우가 가능하다. 이때 제한적 이접에서는 논리적으로 봤을 때 앞의 두 경우만이 가능하다고 보지만, 포괄적 용법에서는 세 경우 모두 가능하다고 본다.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정확히 진실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춘 영화이기보다는 다양한 측면에 있어 경계에 놓여있는 영화라는 점에 주목해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제시된 두 가지 상황의 관계를 포괄적 이접의 관점에서 분석해보려 한다.

내가 초점을 맞춘 <블레이드 러너 2049> 두 가지 명제는 다음과 같다.

A : 리플리컨트의 모든 것은 인간이 계획한 것이다.
B : 어느 순간이 지난 후에 리플리컨트의 행위들은 인간이 예측하지 못한다.

먼저 명제 A가 거짓이고 명제 B가 참인 상황이 되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리플리컨트의 출산이 가능해지면서 리플리컨트들의 자손들에 대해 인간이 전혀 관여할 수 없게 된다면 리플리컨트가 인간 하에 종속된 존재가 아닌 하나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여태껏 리플리컨트가 독립된 주체가 아님을 얘기할 때는 그들의 모든 요소들이 인간의 계획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자발성이나 주체성을 가진다고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블레이드 러너 2049>에 나온 리플리컨트들의 다음 세대가 모두 출산에 의해 탄생되고, 인공적인 기억에 의존하지 않으며, 결정적으로 인간이 그들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들은 독립된 주체로서의 지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들을 ‘인간’으로 간주해야 할지, 아예 다른 ‘새로운 종’으로 받아들일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

두 번째로 만약 명제 A가 참이고 명제 B가 거짓이라면, 또 다른 측면에서의 고민이 이어진다. 영화 후반부에 월레스는 데커드에게 그가 레이첼과 사랑에 빠지고 아이를 낳은 것조차 인간이 의도한 바일 수 있다는 대사를 하는데 이를 확대해석했을 때 영화 전반에 펼쳐지는 리플리컨트 간의 일들이 모두 인간들의 계획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만약 이 상황이라면 복제인간의 모든 행위는 인간에 의한 것이며, 이는 곧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의미한다.

또한 복제인간들이 그토록 원하던 출산의 과정마저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수단적으로 행해진 것이니 더욱이 복제인간의 인간성에 대한 논의는 무의미해진다. 다만, 영화에서 진행되는 모든 것들, 가령 K와 조이의 사랑, 러브의 죽음, 데커드와 스텔리네의 만남 등이 모두 인간의 철저한 계획 하에 이루어진 것이라면 리플리컨트가 가지는 감정을 진실된 것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그에 따른 인간의 복제인간에 대한 윤리에 대한 논의가 생길 것이다.

만약 명제 A가 참이고 동시에 명제 B도 참이라면, 리플리컨트의 모든 것은 인간의 계획 아래 이루어지면서 어느 시점이 지나면 인간은 리플리컨트의 행위를 예측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가정 아래에 영화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새로운 상상이 가능하다. 다시 한번 월레스의 대사에 초점을 맞춰보면 리플리컨트가 출산의 기능을 가진 것은 인간의 의도 아래에서 가능했다. 즉, 리플리컨 트의 출산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데커드와 레이첼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출산이라는 목적까지의 과정은 인간이 설계할 수 없다고 생각해보자.

다시 말해 인간의 필요에 의해 ‘출산 기능’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고, 이 과정에서 리플리컨트 사이의 알 수 없는 인터랙션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2016년 화제가 되었던 알파고의 학습 능력처럼 그 과정에 인간이 절대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지만, 결론적으로 ‘출산’의 기능을 갖게 하는 것, 바둑에 대해 학습하게 하는 것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복제인간 사이에서 더 많은 가능성이 발생할 수 있다. 인간은 창조주이자 리플리컨트의 모든 것을 관장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관장할 수는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둘의 관계에 대한 또 다른 논의가 나올 가능성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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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인간성을 주제로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관객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이와 같은 질문은 드니 빌뇌브의 절묘한 표현법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고, 163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 동안 끊임없이 철학적 질문과 답을 하게 했다. 그 결과 관객들이 한 가지의 결과를 선택해 상상하기보다는 활짝 열려있는 다양한 가능성들을 검토해보면서 영화에서 제시한 내용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김윤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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