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속 진실과 거짓 <굴레방다리의 소극> [공연]

글 입력 2019.03.1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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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아현동, 어둡고 낡은 지하방. 벽지는 이미 뜯어진 지 오래고 신문지가 듬성듬성 붙어져 있다. 빛이라고는 화장실 환풍구보다 조그만 창에서 들어오는 흐릿한 빛이 전부다. 아버지와 두 아들은 함께 생활하며 아버지의 지휘 아래 매일매일 연극을 펼친다.

그렇게 소극을 준비하는 것으로 연극은 시작된다. 거실 소파에 아버지, 왼쪽 방에 첫째 아들 한철이, 주방에 둘째 아들 두철이가 등장한다. 두철은 연극에 사용되는 소품들을 매일 마트로 사러 간다. 어김없이 마트 봉지에서 소품들을 꺼내는 두철은 갑자기 당황하고 초조해 한다. 봉지가 다른 사람과 뒤바뀌어 소품들을 준비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 뒤바뀐 봉지와 함께 돌이킬 수 없는 연극이 시작된다.

그들에게 이 봉지는 희망이었을까, 비극의 시작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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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진실을 캐다.


그들은 소극을 준비하고 시작한다. 계속해서 그들의 연기가 펼쳐진다. 연변사투리로 쉴 틈도 없이 계속해서 일인다역을 하며 이야기가 이어진다. 대략 누가 나오는지, 대충 무슨 내용인지 감을 잡아가던 도중, 연극이 갑자기 중단된다. 소품이 다른 음식으로 바뀌었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연극을 중단하고 두철이를 때린다.

연극을 하고 있을 때는 그렇게 호흡이 잘 맞았는데 현실에서는 아버지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저항도 못 하고 맞으며 죄송하다고만 한다. 이를 보면서 자식들이 얼마나 아버지에게 복종하고 그의 말을 믿고 따르는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연극이 재개되고 이 이야기가 과연 그들의 진짜 옛이야기일까 물음이 생기면서, 자식들은 이 연극을 그만두고 싶어하는 것 같으면서도 계속하는 모습에 그들의 진실을 캐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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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가리는 존재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연극의 핵심적인 내용을 포함한다. 스포일러가 존재한다.

연변에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형제들과 유산 상속 문제로 다툰다. 아버지는 결국 형제를 죽이게 되었고 닭볶음탕을 만들던 어머니는 이에 매우 놀라 비명을 지른다. 집 앞마당에서 놀던 한철이와 두철이는 주방에 가 어머니를 보고 큰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챘고,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자신의 눈을 가리느냐, 눈을 뜨고 진실을 마주하느냐. 한철이는 큰 두려움에 전자를 택했고 두철이는 문을 열어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도망치라고 말한다.

이윽고 서울에 오게 되었고 굴레방 다리 어두운 지하방에 정착하게 된다. 그는 모든 무서운 존재가 자신을 쫓아오고 있어 이를 피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려 지하방에 들어와 자신을 덮치려고 하는 존재들을 따돌리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빛도 함께 덮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 그들의 관계를 잘 알게 된다. 이 이야기는 아버지가 말하다가 한철이가 대신해서 계속 이어나간다. 어릴 적 눈을 가린 이후,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고 아버지가 눈을 가리며 아버지가 말하는 대로 생각하게 되고, 아버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

하지만 두철이는 다르다. 어릴 적 진실한 기억을 생생히 마주하고 있고, 매일 마트에 가며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아버지가 말하는 어둡고 잔인하며 무서운 세상에 관해 의심하고, 따뜻한 대화와 미소가 있는 세상을 향해 나가보려고 한다. “연극에 진실이 있긴 있어요?” 이런 말대꾸를 연극 도중에 한다. 아버지는 우리의 연변 이야기를 연기한다고 말하지만, 두철이는 사실 그 이야기에는 진실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버지에게 무서움을 극도로 느끼며 순종적으로 연기를 하는 그의 모습에 너무 안타깝고 함께 그에게 진정한 눈을 뜨라고 말하고 싶었다.



연극의 정의



1. 배우가 각본에 따라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말과 동작으로 관객에게 보여 주는 무대 예술



그들은 각본에 따라 움직인다. 각본에 없는 소품을 준비하거나 맞지 않는 대사를 하면 아버지에게 혼이 난다. 아버지는 그 굴레방다리의 소극에 박힌 사람처럼 밖에 나오지도 않고 현관문을 5개가 넘는 잠금장치로 굳게 닫고 연극을 한다. 너도 연기상 트로피를 받을 수 있다며 설득하고 완벽한 연극을 추구한다. 하지만 관객은 없다.

그들에게 관객은 바로 자신들뿐이었다. 연극 도중,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자 아버지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경계한다. 이를 보면 그들은 항상 그들끼리의 연기를 하는데 이를 과연 연극이라고 할 수 있을까 따져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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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남을 속이기 위하여 꾸며 낸 말이나 행동.



<굴레방다리의 소극>을 보고 나와서 그들이 하는 소극이 연극이 맞을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연극의 정의를 찾아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들의 소극은 연극의 첫 번째 뜻보다 두 번째 뜻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 한철이는 눈을 가리며 연변에서의 기억을 잊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연극의 내용을 아들들이 믿게 하려고 연극을 매일매일 수없이 행한다. 조금이라도 틀리면 아버지는 폭력을 행사한다. 이 소극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그러한 훈육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연극을 강요해왔다면 그들의 소극 속 내용을 자신의 연변 시절 기억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속이기 위한’ 소극을 이어나간다.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려고 했던 두철이도 마찬가지다. 두철이가 어린아이였을 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기억을 믿는 것보다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꾸며낸 말이나 행동을 반복적으로 강요한 아버지 때문에, 두 아들은 남을 속이는 척하면서 자기 자신들을 속였을 것이다. 이 소극, 연극은 언제 끝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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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결국 끝난다.


모든 연극에는 끝이 있다. 그들의 굴레방 다리의 소극도 그렇다. 남을 속이기 위해 꾸며내는 말과 행동도 결국 속이지 못하고 결말을 맺는다. 아버지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아들들도 속이지 못하고 전부가 진실을 알게 된다.

그들의 소극은 비극적인 결말로 끝난다. 하지만 ‘뒤바뀐 봉지’로 그들이 얻게 된 것은 너무나 중요한 무거운 것이었고, 관객들을 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그 봉지로 인해 나도 진실을 캐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평범했던 그들의 소극 일상에 침입자가 나타났고, 숨기고 잊고 싶었던 진실도 밝혀지기 때문이다.

또한 그 봉지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굴레방다리의 소극도, 그들도 끝이 나게 만들었다. 현대인들, 각자가 잊고 싶은 기억들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다고 판단하면 더욱 지워버리고 싶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사고로부터 스스로 배제하고 그러한 진실을 잊고 거짓을 행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 연극은 결국 끝난다고, 자신을 온전히 마주 보라고 <굴레방다리의 소극>은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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