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최첨단 세계 밀양림은 어떤 세계일까 [공연]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나, SF뮤지컬
글 입력 2019.03.18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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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나"


제목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다르게, 이 공연은 로맨스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 극에서 등장하는 키워드의 공통점은 모두 어두운 것들이다. 최첨단 자연환경을 가진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극 중에서는 '인공 하늘', '인체 테라포밍'이라는 신 이식 기술이라던가, 신체 접촉 없이 서로의 몸을 스캔하여 하는 원격 섹스 '바디 스캔 섹스'같은 기술이 등장한다.


사람이 사는 곳이지만, 사람이 운영하지 않는 곳 밀양 림이라는 곳이 이 공연의 배경이다. 마침 며칠 전에 봤던 연극인 <하거도>와는 굉장히 대비되는 주제라 시놉시스를 접하는 순간 무척 끌렸다. 사람이 만든 곳은 어디든 결국 부패하게 되기 마련인데, 사람이 다스리지 않는 곳이라면 그곳은 과연 어떤 세상일까.


*


하지만 사람이 운영하지 않는다고 해서 마냥 좋은 곳인 것만은 아니다. 얼마 전에 아트인사이트에 올라온 글 중, <해리포터를 삐딱하게 보기로 했다>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선과 악을 규정짓는 프레임에서 탈피했기 때문이었는데, 마찬가지로 사람이 관여한다고 해서 다 악해지는 것은 아니고 사람이 그 관계에서 사라진다고 해서 유토피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없는 대신, 밀양림에서는 최첨단의 기계에 의지하게 된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술의 발전은 결국 인간의 생활 발전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생각하는 쪽이었다. 아무리 큰 희생이 일어나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결국은 인류에게 이득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 전, 그 생각을 완전 뿌리를 뽑히는 일을 당했다. 한마디로 보이스피싱을 당했다. 일하던 중, 갑자기 본인을 확인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 은행 직원인 누구를 아느냐고 물었다. 귀가 좋은 편이 아니라 다시 물어보았더니 상대방은 답답해하며 이름을 다시 말해주었고 나는 모른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은행 직원이 내 명의로 작년 말쯤에 대포통장을 두 건 만들어서 큰돈이 오갔다며, 내가 혐의가 있는지 아니면 그저 피해자인지 법원에 증거자료를 제출해야 해서 녹음을 한다고 했다. 철석같이 그 사건을 믿었던 이유는 12월쯤에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그래서 2월 중순에 주민등록증을 새로 만들었어요! 지금 그래서 임시주민등록증을 갖고 있어요!"라는 쓸데없는 소리를 상대방에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속이기 쉬운 상대였나, 스스로가 한없이 한심하고 사기꾼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너무나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중간중간에 의문점이 너무 많이 생겨서 "그럼 제 주민등록증도 그 사람에게서 발견되었나요? "어떻게 제가 그 은행계좌  있는 줄 알고 거기서만 개설을 했죠?", "그럼 제 계좌는 이제 못 쓰는 건가요?" 등등 계속 질문을 했다. 내가 말이 너무 많은가 생각했던지 상대방은 나에게 녹음을 한 뒤에 질문을 하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지금 바쁘냐고, 누구랑 같이 있느냐고, 어디서 일을 하느냐고 해서 뭐 어디 동에 있는 어떤 카페에서 누구랑 같이 일한다고 그런 것까지 다 설명을 했으니 보이스피싱범들의 표적이 될 것이 정말 뻔했다. 1대 1로 녹음을 해서 증거자료를 제출해야해서 타인의 목소리가 녹음되면 안 된다기에 카페를 나왔지만, 그 곳은 역세권의 한복판이라 차가 쌩쌩 달리고 사람들도 많이 지나다녔다. 걱정이 되어 차가 많은데 어떡하냐고 했더니 차는 괜찮다고 했다. 적어도 그때 의심을 했어야 했다. 솔직히 사람의 목소리가 큰지, 차가 소리가 큰 지 어린 아이도 알텐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사람들을 피해서 전화를 계속해서 받았다.


상대방은 녹음 이후에야 본색을 드러냈다. 어떤 계좌에 어떤 통장이 있고 몇개 있고 잔액이 얼마인지를 확인했다. 나는, '저 돈이 없는데..'라고 말했는데 그건 거짓말이 아니고 진짜였다. 내가 만든 것에는 돈이 2만원도 안되게 있다고 말하고, 엄마가 만든 통장에 적금을 들여서 어릴때부터 많이 넣어놨다고 했더니 상대방이 통합계좌어플을 깔라고 했다. 전화를 끊지말고 인터넷에 접속해서 어플에 들어가서 공인인증서로 로그인을 하면 자기명의로 된 계좌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로그인을 했더니 내가 만든 적 없는 은행에 계좌도 있었고, 진짜 유출된 게 아닐까 의심도 들었다. 상대방이 계좌를 하나하나 확인하게 하더니 잔액을 물었는데,  적금을 들었다고 생각했던 계좌에 돈이 정말 없어서(정말 몇만원) 잔액을 말했더니 상대방이 어이없어하면서 '적금 들었다면서요?'라고 했다. 나는 내가 정말 몰라서 그런건데 그게 거짓말로 법원에 제출이 될까봐 엄마한테 물어보고 바로 연락드린다고 연거푸 사정을 했는데, 상대방은 내 애원을 들어주지 않고 내일 오전 중으로 다시 전화한다고 하고 끊었다.


그때까지도 그게 보이스피싱인지 모르고 엄마한테 전화해서 울면서 법원에 대포통장 혐의로 넘어갔다고 서럽게 말했더니, 엄마가 듣자말자 사기꾼이라고 그랬다. 우리엄마는 워낙 평소에 사기꾼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서 내가 아니라고, 진짜 그렇다고 우겼다. 도대체 무슨 확신을 갖고 그랬는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모르겠지만, 오히려 내가 엄마를 설득할 뻔했다. 다시 일을 하러 들어갔지만 머릿속에는 법원 걱정 뿐이었고 보다못한 실장님께서 일찍 일을 끝내고 보내주셨다.


마칠 때 휴대폰을 보니 가족들이 '검찰청 사칭 보이스피싱'에 대한 링크를 보내놓아서 읽어보고 완전 똑같단 걸 발견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112부터 시작해서 118,  마침 은행에 남아있던 잔돈 1원까지 다 사라지고 0원만 남아서 완전 놀래서 은행, 카드회사 어디든 다 전화하고 휴대폰 가게에 가서 번호를 바꾸고 초기화를 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후불 교통카드가 빠지는 날짜였는데, 통장 잔액이 부족해서 통장에 남아있던 돈만 다 빼간 듯 했다.


*


며칠간 정신없이 아이디의 흔적을 지웠다. 어제는 퇴근 후 새벽 3시까지 계정에 연동된 사이트를 모두 탈퇴했다. 확인해보니 네이버 아이디로 전국 방방곳곳에서 로그인을 한 기록이 잡혔다. 윈도우7로도 로그인을 하는 걸 보니 좋은 컴퓨터를 쓰는 것 같지는 않다. 수많은 피싱 관련 사례를 읽어보니 앱을 설치하게 해서 바이러스를 심어, 112나 검찰에 연락하려고하면 자기네들한테 다시 연락이 가게 한다거나 핸드폰에 있는 연락처 데이터를 빼간다고 한다. 많은 사례들을 보니, 보이스피싱 인수책, 인출책, 수거책 다양한 무고한 알바들을 고용하고 자기들은 안전하게 해외에 있어서 막상 신고를 하고 고발을 해도 억울한 사람들이 잡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한번 이메일 계정 연동된 곳 비밀번호가 뚫리면 다른 모든 사이트가 뚫리는 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평소에 비밀번호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라 어제 계정들을 탈퇴할 때 전부 비밀번호 찾기를 했는데 이메일만 알면 모든 게 풀리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 일은 나의 사흘, 나흘을 빼앗고, 집에 누가 숨어있을까봐 심신의 불안정을 주어 며칠간 혼란스럽고 두려움에 잠을 못 들게 했지만,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제대로 깨우쳐준 일이었다. 귀찮아서 '바로 로그인' 기능을 애용하곤 했던 것이 이렇게 내 정보를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거란 사실을 알았고,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전화상으로 사람을 이용해먹는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안전하게 살고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 어딘가의 컴퓨터에는 이 모든 사람들의 정보가 모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도, 그리고 나는 돈이 없어서 이용 대상이 되지는 않았지만 돈만 있었으면 바로 털릴만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내 얘기를 들으면 다들 돈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했고, 나도 물론 그렇게 생각한다. 핸드폰을 바꾸고 뭐 사이트들을 탈퇴한다고 해도 또 어딘가에선 나의 정보가 다 기록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며칠간의 내 행동은 소용없는 일일수도 있다. 마치 잃어버린 주민등록증처럼, 이미 다 예정되어있었던 일인지도 모르겠다.


최첨단이란, 기술이란 그런 것이다. 직접 보지도 못하는 곳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나를 알고 있고, 내가 몇살이고 성별이 무엇인지, 더 심하면 어디 사는지 정도를 모두 알고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정리해놓을 것이다. 그 세상은 비밀이 없는 세상이고 청렴할 수도 없는 세상이다. 무서웠다. 방에 문을 이중으로 걸어잠그고, 옆집에 주인아줌마가 살고 있고 동네에 친구들이 많이 살고있지만, 바로 옆에서 얼굴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아 오한에 시달렸다. 저녁에 다니곤 했던 한강 러닝도 최근 며칠동안은 전혀 하지못했다.


*


요즘 넷플릭스에서 보고 있는 '엠브릴러 아카데미'에서도 기계가 나온다. 새 아파트들에는 집 안에서 엘리베이터를 불러 올 수도 있다. 보일러나 에어컨 단순한 기계를 넘어서서 좀 더 세밀해지고 정밀해지고 모든 네트워크가 연동되어 있다. 그것만큼 편리하고, 또 그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나>에서는 그 최첨단 세계를 어떻게 연극으로 표현할 지 무척 궁금하다. 사실 연극을 새로 접할 때마다 느끼는데, 이렇게 다채롭고 다양하고 다각적인 인간 세계를 그 작은 극장 위에 올려놓고 보여준다는 것이 놀랍다. 그리고 그 연극을 보고 나왔을 때 내 생각보다 더욱 더 깊은 것을 만나게 된다. 어쩌면 이렇게 넓디 넓은 세상의 다양한 인간과 생각을 그 작은 무대에 집합시켜놓은 것이기에 연극을 보고 나오면 그토록 피곤한 것일까. 한 사람이 살면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2시간 안에 다 보고 나오기 때문에 그렇게도 힘든 걸까.


다만 한 가지 궁금점은 이런 주제를 다루면서 왜 하필 제목을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나>로 지었는지 의문이다. 제목 때문에 로맨스 분야로 착각하게 되어 사람들의 선택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나
- 창작 SF뮤지컬 -


일자 : 2019.03.16 ~ 03.31

시간
화, 수, 목, 금 8시
토, 일 4시
월 쉼

장소 :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티켓가격
R석 60,000원
S석 40,000원

제작
극단 듀공아

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과학창의재단

관람연령
중학생이상 관람가

공연시간
90분





극단 듀공아


듀공아.jpg


듀공(Dugong)은 산호초 근처에 서식하는 바다 동물이며, 몸길이가 3미터에 달하는 데, 전설 속의 인어와 매우 닮았다. 희귀한 동물이라 많은 사람들이 듀공을 모른다. 물고기 '듀공' 같은 세상의 희귀한 것에 관심을 갖는 극단 듀공아는 그 동물을 부르는 것을 뜻한다. "듀공아!"


세상에 숨겨진 것, 희귀한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듀공아라고 부른다.


극단 듀공아는 연극, 뮤지컬, 음악극 등을 제작하며 교육과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이다. 극단 듀공아의 프로젝트 중 어둠을 주제로 한 13개의 작품을 만드는 십삼야 시리즈는 15년부터 계속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십삼야 시리즈 외에도 SF연극 '스페이스 치킨 오페라' 시리즈, 음악극 '이나라를 떠나라', 연극 '파라노이아 극장 -망상력 검출 실험실' 등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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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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