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해리포터를 불편하게 여겨보기로 했다 [도서]

글 입력 2019.03.13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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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를 불편하게 여겨보기로 했다


영어 점수를 올리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문제집을 풀거나 단어집을 암기하는 등의 '정석적인'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원서 읽기였다. 해리포터 1편, 마법사의 돌을 고른 것은 비교적 만만해보이는 책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밤에 자는 척 불을 꺼놓고 핸드폰 조명을 키면서까지 읽고 싶던 그 몰입감을 다시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해리포터는 내게 동화 이상의 의미였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콩쥐팥쥐, 흥부전 등 어릴 때부터 알아왔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 어떤 것도 해리포터만큼 나를 가슴 뛰게 하지 못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내용을 이미 대략적으로 알고 있어도, 책 속의 유머와 해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언어 실력이 부족해도 여전히 J.K. 롤링이 구축해낸 세계는 너무도 흥미진진했다. 나는 왜 해리포터가 사람들을 이토록 매혹시켰는지에 대해서, 며칠이고 침을 튀기며 설명하고 줄줄이 글을 써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완전히 다른 주제 의식을 표명하기로 마음 먹었다.


해리포터를 불편하게 여겨보기로 했다. 일종의 성역처럼 찬미의 대상이 되어왔던 책이지만, 잠시만 그 환상적인 꿈에서 깨고 '프로불편러'가 되어보기로 했다. 읽으면서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있었다. 15살에 처음 읽었을 때는 티끌만큼도 느껴지지 않던 감정이었다.




그리핀도르는 선의 상징, 슬리데린은 악의 상징?


해리포터에만 해당되는 질문은 아니다. 대부분의 동화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왜 꼭 악한 사람은, 지독하게 악해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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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에 명확한 경계가 있는가? 이건 마치, 인간의 인식능력은 완전한가, 혹은 심지어 인간은 신격화될 수 있는가, 라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학문이 진리를 추구하지만, 수학의 점근선처럼 진리는 결코 그 완전한 모습을 나체로 드러내보이는 법이 없다. 학자들의 치열한 이론 다툼을 보다 보면, 진리는 오로지 '신의 책'에만 써 있어서 우리는 그 신의 책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책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절대 '완벽하게' 알 수는 없다. 그렇다면, 선과 악에 관한 내 질문에 대해서도 '완벽한 이분법은 성립할 수 없다'고 대답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애매모호한 경계라고 해서 그 경계가 실재하지 않는다고 단정짓는 것은 위험하다. 선에 가까운 것, 악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아무런 오류가 없다. 하지만, 내가 제기하고 싶은 의문은, 왜 동화책에 등장하는 악인들은 악에 가까운 사람이 아닌 절대적으로 악한 사람처럼 등장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는 기실 우리의 일상과도 유리된 모습이다. 선의 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이코패스들, 예컨대 연쇄살인범들이 뉴스에 등장하기도 하지만 삶 속에서 이와 같은 악을 마주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대다수는 선과 악의 연속선 위에서 존재하는 주변인들과 함께 복닥거리며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실망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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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의 배경이 되는 마법 학교 호그와트에서 학생들은 네 개의 하우스 중 한 곳으로 배정받는다. 그리핀도르, 후플푸프, 레번클로, 그리고 슬리데린. 이 중 서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의 대립이다. 소설에서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해리포터, 론, 헤르미온느 삼인방을 비롯하여 그들의 정신적 멘토가 되는 덤블도어 교장, 공정함의 아이콘인 맥고나걸 교수, 해리를 끔찍히 사랑했기에 그를 보호할 수 있었던 그의 부모님 등은 모두 그리핀도르인 반면, 사람들이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는 악의 화신 볼드모트를 비롯해 그를 추종하는 말포이 가족, 말포이의 비열한 친구들 크랩과 고일은 모두 슬리데린이다. 해리포터는 말포이를 어찌나 싫어하는지, 심지어 비마법 세계에서 그를 그토록 괴롭히던 사촌 '더들리'조차 말포이 앞에서는 착해보일 거라고 한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주요한 서사의 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이 '하우스 점수'를 놓고 대결하는 과정에서 해리포터와 친구들이 하는 역할에 대한 것이고, 둘째는 악의 화신 볼드모트가 잃어버린 힘을 되찾기 위해 영생을 가져다줄 '마법사의 돌'을 찾아나서지만 해리포터의 활약에 의해 저지당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것이다. 두 가지 축에서 모두, 해리포터와 그리핀도르는 승리한다. 특히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슬리데린의 승리를 축하하며 꾸며졌던 기숙사 홀이 그리핀도르 장식으로 다시금 바뀌는 장면은 모종의 '권선징악' 이미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또다시 묻고 싶다. 슬리데린이 그렇게 나쁜가? 그리핀도르가 상징하는 용기, 사랑, 우정, 지혜 등과 같은 덕목들은 물론 중요하며 언제고 우리 삶에 머물러야 하는 요소들이다. 그렇더라도 슬리데린의 특성으로 제시되는 전략적 사고, 권력에 대한 욕망, 목표에 대한 집념 등이 과연 배척되어야 하는 가치인가?

우리의 부모님은 어려서부터 밥상머리에서 '학창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해야 나중에 번듯한 직장을 잡고 무시당하지 않으면서 살 수 있다'라고 한바탕 연설을 하시고는 했다. 물론 그것이 무조건 바람직한 연설이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악착 같이 노력해서 명예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을 비하할 수 있는 것인가?




통쾌하지 않더라도 재밌는 동화를 꿈꾸며


만일 누군가가 '학생들에게 사회 교사가 가르쳐야 할 단 한가지의 덕목이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나는 '다원적 가치에 대한 존중'이라고 답할 것이다. 칼 포퍼가 열린 사회의 기준으로 제시했던 것처럼, 민주주의가 성립하기 위해서 시민들은 대담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하고 누구의 의견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닫힌 사회는 결코 민주주의가 될 수 없으며, 만일 그런 사회에서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된다면 이는 허울 뿐인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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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나는, 조금은 대담하게 '새로운 동화를 꿈꿔봐야 할 시기가 왔다'고 주장하고 싶다. 기존의 동화들이 수행해왔던, 바람직한 가치관의 확립을 위한 시도들이 실패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처럼 사랑과 우정의 의미도 깨닫지 못한 채 권력과 위계에만 몰두하는 삶을 사는 것은 우리가 지양해야 할 삶이다. 하지만, 이러한 '권선징악형' 동화들만 접하다보면, 아이들은 악을 너무나도 증오하게 된 나머지 자신의 기준에서 판단한 악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쉽게 범하게 될지 모른다. 혹은 '악은 나쁜 것'이라는 필연적 문장을 주입받은 나머지 악이 왜 악인지에 대한 합리적 논증조차 없이 무차별적 비난만을 퍼붓는 습관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꿈꾸는 새로운 동화는 악이 징벌받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유도하는 동화는 아니다. 통쾌하지 않더라도, 현실을 과장하거나 부풀리지 않더라도 담담히 우리의 삶을 노래하기에 나 자신을 객관화하도록 도와주는 동화를 꿈꾼다. 동화의 독자들이 극단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싫어할 것이라 단정할 필요도 없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닮았다. 입체적인 인물들이 만나 자꾸만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는 이야기, 바람직한 삶을 살고 싶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데도 어쩔수없이 실수하고 고꾸라지는 평범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아이들은 금세 좋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무엇보다도, 착한 사람만큼이나 관용적인 사람이 필요한 시대다.
 



[이창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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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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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햠
    • 슬리데린 외길인생 11년차인데 격하게 끄덕거리면서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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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창
    • 2019.03.15 23:3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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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햠격하게 공감해주셨다니, 글을 쓴 사람에 대한 최고의 칭찬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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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쿠코리
    • 말씀해주신 주제에 상당히 공감합니다. 다만 죽음의성물에서 스네이프와 덤블도어의 인물묘사를 통해 롤링여사도 권선징악의 프레임을 비틀어 보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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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창
    • 2019.03.15 23:3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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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쿠코리오, 말씀해주신 건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네요. 스네이프의 반전은 기존 동화들의 한계라면 한계였던 부분을 뛰어넘었다고 충분히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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