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반려견과 이별할 준비 [기타]

저는 아직 준비가 덜 됐어요
글 입력 2019.01.3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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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강아지를 소개합니다.

이름: 애니
별명: 짱애니
견종: 말티즈
나이: 11살
특이사항: 선천적으로 꼬리가 없다.
성격: 말티즈는 참지 않지만 겁이 많음
특기: 떼쓰기, 어리광부리기
취미: 언니들 무릎과 배 위에서 자기
좋아하는 것: 고구마, 피카추 인형, 보쌈



하얀 강아지에게 붙는다는 흔한 강아지 이름인 두부, 백구, 흰둥이가 아니라 애니인 이유는 작명자인 내 탓이었다. 첫 만남은 중학교 2학년, 동네 아주머니네 어미 개가 새끼를 낳았다며 팔뚝만한 새끼 강아지를 아빠가 데려온 날이었다. 당시만 해도 동물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대책 없이 강아지를 데려온 아빠에게 알아서 키우라며 다그쳤다. 그리곤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강아지 이름을 정할 때 내 눈에 들어온 건 사료통의 라벨, '애니'였다. 그길로 애니가 된 강아지는 제 이름이 왜 애니인지도 모른 채 애니라고 부르면 돌아봤다. 강아지 이름에 담긴 무심함 때문에 훗날 친구 한 명이 왜 이름이 애니냐며, 네 성은 장씨가 아니냐는 말에 그제야 자각하며 놀라기도 했다. 그때껏 성을 붙여 짱애니-하고 잘만 불러왔는데 성에 악센트를 주지 않으면 어감이 안 좋다는 걸 그 친구의 말에 깨달은 것이다.

그 후로 고등학교를 기숙사로 다니면서 애니에게 신경 쓸 여유는 더욱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집에 오면 나를 반겨주던 애니를 위해 간식 정도는 챙겨오던 나였지만 목줄을 매고 매일같이 산책을 해야 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래서 집 앞 마당이 애니에겐 세상의 전부였을 거다.

그러다 점차 미디어에서 강형욱이라는 반려견 훈련사가 자주 등장하고 배워가며 반려견 문화를 학습하게 되었다. 그제야 그간 많이 놀아주지 못한 미안함과 애니의 외로움을 알게 되었다. 서울살이를 위해 본가를 떠난 언니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애니가 불쌍했다. 어찌나 마음이 쓰이던지 매일 밤 외롭다며 우는 애니가 꿈속에 등장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결국 작년 봄에 애니를 서울로 데려왔다. 동생과 함께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 오면서 집주인에게 강아지를 데려와도 된다는 허락을 맡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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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애니와 처음 산책을 했던 날은 잊히지가 않는다. 한적한 시골 흙 마당만 뛰놀던 녀석에게 쌩쌩 달리는 차들과 끊임없이 사람이 오가는 도시의 시멘트바닥은 낯설기 그지없었다. 한참을 움직이지 않고 주위만 경계하던 첫날에 비해 요즘은 그래도 제가 먼저 가고 싶은 곳으로 걸음을 재촉하니 장족의 발전이다.

되도록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동네 산책을 시켜주려는 나의 노력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기도 한다. 보호자인 내게 양해를 구하지 않고 대뜸 애니를 만지는 중년의 아주머니들과 밖에서 볼일을 본다고 다그치는 어르신(물론 항상 뒤처리를 위해 대변봉투를 지니고 다닌다), 가만히 걸어가는 애니를 일부러 놀래키려 워!! 하고 소리를 지르는 고등학생 남자와 저 멀리서 애니를 향해 달음박질치며 달려들어 혼비백산한 애니의 모습을 즐기는 20대 중후반의 남자까지. 처음 몇 번은 미친X라며 욕을 하고 분개하다가 계속 그런 일이 반복되자 그제는 내가 보호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책했다. 좀 더 강경히 대응해야 했고 그러지 마라 주의를 줬어야 했는데. 소심하고 물러터진 주인 때문에 가뜩이나 겁도 많고 예민한 애니가 긴장을 놓지 못하고 계속해서 사람을 경계하는 건 그야말로 악순환이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반려견을 가족처럼 아끼고 돈을 쓰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바라보고 유난이라 질책하는 모습들을 자주 마주한다. 얼마 전 할머니 생신을 기념해 모인 가족모임에서 친척 중 한 분이 강아지에게 돈 쓰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왜 동물병원에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부으냐고. 동물에겐 주어진 수명이 있고 그것을 어기지 말라고. 강아지를 유모차에 태워 다니는 건 너무 꼴사납다고. 순간 욱하는 마음에 반박하려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물론 한국에서 반려인의 펫티켓 문화가 미성숙한 만큼 비반려인의 반려견 인식도 성숙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 예전의 내가 그랬듯 '반려견'이 아닌 '애완견'이란 인식을 쉽게 바꿀 수 없단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이제 그런 소리엔 귀를 막아버렸다. 서로 다른 삶의 가치관을 존중해주는 배려가 필요한데 대상이 강아지라고 너무 쉽게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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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애니를 바라보다 심란해질 때가 잦다. 올해로 11살이 된 애니는 더 이상 웃지 않는다. 그렇게 잘 웃던 애가 어느 순간부터 한 번을 웃어주질 않는다. 온 집안을 종횡무진으로 뛰놀던 말괄량이가 이젠 종일 잠들어 있다. 깨어있는 시간보다 내 무릎에서 잠을 자는 시간이 더 많다. 그리고 이제는 반길 힘도 없는지 현관문을 열면 달려 나오던 애가, 내가 방에 들어설 때까지 잠자코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어리광도 늘어서 빤히 나를 바라보다 이내 관절이 아프다며 제 다리를 깨물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애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언니 나 여기가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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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의 시간은 너무 빨라서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기껏해야 15년의 짧은 생은 추억을 쌓아 깊이 정들었을 때 떠나가려 한다. 애니의 1년은 나의 7-8년이었고 애니의 하루는 나의 일주일이다. 그래서 나는 애정없이 무심했던 지난 시간을 매일같이 후회한다. 눈이 마주치면 항상 미안하다는 소리를 해서 동생이 듣기 싫다며 그만하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지난날을 사죄해서 말 못한 강아지의 설움을 알아주겠다 용서를 빈다. 강아지를 키우는 것도 처음인데 빠르게 늙어가는 생명을 돌보는 것 또한 처음이라 모든 게 두렵고 다가올 이별이 무섭기만 하다.

그 결과 평소에 즐겨보던 동물농장이 티비에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린다. 유기견을 비롯한 아픈 강아지 이야기가 나오는 프로그램은 시작과 동시에 눈물을 쏟는다. 어느 아침, 애니가 조금만 밥을 안 먹어도 하루종일 걱정하고 제발 한 입만 먹으라 무릎을 꿇고 사료를 들이민다. 생전 해보지 않았던 북엇국도 만들어봤고 애니가 기운이 없던 어느 날은 너무 걱정된 나머지, 수업을 하다가 뛰쳐나와 그대로 동물병원으로 직행했었다. 애니가 어리고 활기찰 땐 알지 못했던 시간의 소중함은 노견이 되어 어기적 걷기 시작하면서 깨닫고 있다. 남은 하루하루가 너무도 소중하단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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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친한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그녀가 기르던 반려견이 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그 아이도 노령견이라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친구가 매일 사료를 갈아 주사기로 입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며칠 뒤 결국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랑하던 반려견의 장례를 치르고 동네 술집에서 만난 그녀에게 괜찮냐는 질문을 건넸다가 금세 일그러지는 얼굴을 바라보며 무어라 위로의 말을 할 수 없었다. 아직도 그녀의 집에 놀러 갈 때면 거실 한쪽에 모셔둔 작은 유골함이 보인다.

그 후로 그녀 앞에서 강아지의 '강'도 꺼내지 않았다. 특히 무지개다리를 건넌 그녀의 강아지 이름은 금기어였다. 아닌 척해도 무척 슬프고 힘들어 보이던 친구를 위한 일종의 애도였다. 그리고 일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바뀌지 않는 그녀의 핸드폰 배경화면을 보며 슬픈 그리움을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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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왔을 때 가장 막내였던 녀석이 어느새 사람나이로 치면 60세인 할머니가 되었다. 더 이상 숨가쁘게 웃지 않고, 가슴털이나 겨드랑이쪽 털이 나지 않고, 이가 많이 빠져 무언갈 씹는 데도 힘들어 보이지만 여전히 내게는 아기이다. 언제까지고 곁에 있을 것만 같은데 하루가 다르게 기운이 없어지는 애니를 보며 우리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는 걸 실감한다.

모든 생명엔 끝이 있어서 헤어지기 마련이란다. 하지만 그 끝은 다가오기 이전엔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얼마나 슬픈지, 어떻게 얘가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할지. 이별을 전제한 만남이란 걸 이제야 체감하는 중이다. 이렇게 작고 마른 아이인데 나중에 기력이 완전히 떨어져서 여기서 더 마르면 어떡하지. 그럼 큰일인데… 귀가 안 들려서 내 목소리도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집에 아무도 없을 때 가버리면 어쩌지. 도저히 나는 싸늘해진 녀석을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애니와의 이별을 준비한다. 조금 더 오래 준비하면 떠나보냈을 때 덜 슬플까 하고. 그러나 그러기엔 시간이 마냥 부족하다. 나는 아직 이별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마 그 준비는 영원히 끝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 길에 먼저 떠난 강아지가 마중을 나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린 제일 늦게 만나자, 애니야. 언니랑 딱 10년만 더 건강히 살다가 가렴.




[장재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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