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를 잘 알지 못해서 [도서]

약간의 거리를 둔다
글 입력 2018.12.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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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고민이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좋은지, 잘하는 일을 하는 게 좋은지. 내가 잘하는 일은 뭘까. 좋아하는 건 뭘까. 나를 잘 알지 못해서 고민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이 여행에 필요한 준비물은 약간의 지성과 약간의 용기가 전부다. 목숨 걸고 적진에 뛰어들 정도의 용기까지는 아니라는 말이다. 처음에 던져지는 사람들의 비웃음이라든가, 금전적으로 힘겨운 시절을 참아내는 정도의 용기만 있으면 된다. 그마저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따른 잠시의 시련이므로 그다지 괴로운 일도 아닐 것이다.


아마 좋아하고 잘 하고의 문제를 떠나 누군가의 시선이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를 알려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가는 길과 다른 길을 가다 보니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받을 수도 없다. 그래서 더 불안하다. 그 불안을 이기지 못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엄마 친구들이 엄마에게 말한다. “딸은 지금 뭐해? 그래도 지금은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지, 적지 않은 나이인데” 왜 남의 딸에게 걱정이 많을까. 걱정이 맞을까. 친구의 딸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말에 안심하면서 자신의 자식은 뭐라도 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누구나 그렇듯.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아닌 나보다 덜 한 사람을 찾기 마련이니.


인생에서 ‘기호’를 갖는다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타인의 평판을 신경 쓰는 사람은 자신의 기호가 아닌 주어진 기호대로 따라가는 사람이다. 기호가 없는 사람처럼 위험한 존재는 없다. 그들에겐 타인의 조종에 의해 흥분하게 될 소질이 있다.


커피가 쓰다. 설탕 넣는 내게 친구는 말했다. “왜 설탕을 넣어?, 커피 맛을 모르는 구만” 커피는 기호음료다. 마시는 방법도 모르는 사람이라 말하는 친구를 보면 쓴 맛 그대로 인상 찌푸리며 마셔야 할 것만 같다. 각자에게 취향이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만 아니라고 말하기에 눈치 보여 그렇다고 답한다. 그렇게 내 취향과 아닌 것의 차이를 헷갈리게 된다. 나의 기호를 잃어버린다.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는 것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겠다. 하루들이 쌓여 나를 나로 만들어줄 수 있으니. 이것저것 불안한 생각으로 하루를 버리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다 보면 어느새 내 기호들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앞에 문제가 닥쳤을 때마다 쉽게 결론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오늘 당장 대답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무리가 있다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는 것이다. 나답지 않게 명확한 결론을 앞세우는 것이 왠지 위험하게 느껴졌다는 뜻이다. 그때마다 하루나 이틀 밤을 푹 자고 이삼 일을 별일 없이 보내버린다. 무턱대고 가만있는 건 아니다.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로 복잡하다. 그렇게 시간을 끌며 버티는 도중에 최선의 대책도 아니고 결코 현명한 해결법도 아니지만 제법 나다운 결론, 훗날 나의 어리석음을 후회하지 않을 정도의 대답이 나오는 것을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경험해왔다.


항상 시키는 일만 하다가 선택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혼란스러웠다. 선택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터라 어렵다. 하루 종일 잠만 자거나 밀린 드라마를 보면서 선택을 미뤘다. 아무리 해도 그 선택의 순간은 도망가지 않았다. 그래도 잠시 머리를 식혀준 탓일까. 나에게 준 틈 덕분에 편해진 마음으로 선택할 때가 있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지내온 인생에서 운이 좋았던 순간과 운이 없었던 날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음에 동감하게 되었다. 어차피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과 싸워온 세월들이다. 열심히 노력했다고 해서 부와 권력과 행복이 뒤따라오는 것도 아니고, 게으르고 머리가 나쁘다고 해서 밑바닥에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 소소한 발견의 재미를 알아나가는 것도 지혜라고 해야겠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인생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인생은 좋았고, 때론 나빴을 뿐이다.


재미있는 삶을 보내는 친구를 보면 내가 보낸 하루들이 싫어진다. 잘 살지 못하는 기분이랄까. 남들 눈에 나도 나대로 잘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하는데, 왜 난 모르겠지. 만족스럽지 않다. 너무 평범하다. 평범하고 싶지 않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내고 내일도 오늘과 같을 거라 생각하면 내 삶이 좀 무료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일, 집을 반복하고 싶진 않은데.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나와 적당한 타협이 필요하다. 난 그 타협조차 하기 싫은 것 같지만. 그냥 놀고만 싶은 건가. 일은 하고 싶지만 아무 일은 하고 싶지 않고, 나와 맞는 일을 하고 싶은데. 또 그런 일은 (늘) 경쟁이 세고. 도대체 난 어쩌고 싶은 걸까.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은 건가. 에너지 쏟는 일이 너무 귀찮다. 나도 모르게 조금 지친 것 같다.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 그것이 내 삶의 미의식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죽기 전까지 막연히 흘러가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저항하기보다는 당당하게, 그리고 묵묵히 주변 사람들과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고 싶다. 한집에서 같이 사는 가족일지라도 실은 서로 고독하다. 왜냐하면 각자 나름대로 살아갈 것을 신에게 명령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삶들은 누구 하나 칭찬해주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훌륭하게 완결되어 빛난다. 자기 행위를 타인에게 평가받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은 버둥거릴 수밖에 없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고 있다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행복하다는 자신감이 중요하다.


애쓰지 않아도 나는 나일 수밖에 없다. 잠시 나답지 않은 선택을 했더라도 결국 나는 나로 돌아오게 되어있다.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다가 나를 되돌아보게 되니까. 나는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있다.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왼쪽 배가 아프며, 평소엔 많이 먹지만 식욕이 없어 우울할 때도 있다. 이 증상으로 지금 내 생활에 만족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생각해보면 난 일상의 변화에 동기 받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하기보다 아르바이트하기 싫어 오늘 하루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다. 씁쓸하다.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일하기 싫다고 오늘 하루가 빨리 끝나길 바란다니. 그래서 결정했다. 일을 그만두기로. 내 시간이 천천히 흐르도록 하루의 변화에 동기 받으며 나를 나대로 살고 싶다고. 갑자기는 아니다. 여러 생각을 했고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난 결정했다. 불안하지만 여행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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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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