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샤를-리샤르 아믈랭이 '보여주는' 쇼팽

글 입력 2018.11.2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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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의 시작, 녹턴 제20번 c#단조, Op. posth.



‘녹턴’은 매우 비극적인 느낌으로 사작한다. 그러다 중간부분에는 활기차게 살아났다가 후반부, 곡의 마무리는 다시 시작과 동일하게 비극적으로 마쳐진다. 그래서 들을 때 마다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다. 이번 샤를-리샤르 아믈랭 공연의 첫 곡은 ‘녹턴’이 이었다. 녹턴을 실황으로 듣는 건 이번 공연에서 처음이었는데, 좌중을 압도하는 화려한 스킬이 아니어도 한음 한음이 또렷하게 들려오는 소리들에 가슴 한 구석을 찌릿하게 만든다. 녹턴을 시작으로 앞으로 샤를-리샤르 아믈랭이 보여주는 쇼팽이 무척 기대되었다.




공연의 연장선, 프로그램 노트



‘재기발랄함, 탁월함, 힘과 열정의 측면에서 폴로네이즈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가능한 가장 즐거운 방식으로 이 대작에 표현되어 있다.’(Hugo Leichtentritt)


보통 공연 프로그램 북에 담긴 비평이나 해석은 잘 보지 않는 편이다. 보게 되면 어떠한 ‘편견’을 가지게 되고, 개인적인 감상을 보다 넓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 노트도 공연이 종료된 뒤 봤는데, 자세하고 재미있는 설명이 담겨있었다. ‘이 곡은 이런 느낌이다’가 아닌, ‘이 곡은 이렇게 되어 만들어졌고, 누구는 이런 느낌 또 누구는 이런 느낌으로 말한다’라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악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프로그램 북 또한 공연의 연장선, 일부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자세한 음악적 설명이 공연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줘서 좋았다.


다음은 프로그램 북 중 담긴 영웅 폴로네이즈 곡의 해석 일부이다.


“폴로네이즈의 시작을 알리는 도입부에는 열정 그리고 행동의 대담함뿐 아니라 위엄과 단호함이 있다. 곡의 주제에서는 강함, 끈질김, 위로 올라가는 열망을 듣게 된다. 강함은 옥타브와 저음부에 의해 전해지며, 끈질김은 도입부 프레이즈의 계속되는 반복으로 만들어진다. 위로 향하는 동안 으스대는 주제는 건반 위로 그리고 충만한 절대적인 울림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덧붙이자면 영웅 폴로네이즈는 가장 적절한 곡의 순서였던 것 같다. 피아노 공연은 집중력이 필요한 것이라, 보다 더 집중된 공연을 보기 위해 곡을 미리 들어봤는데, 사실 ‘졸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곡의 구성 대부분이 잔잔하고 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간의 영웅 폴로네이즈는 경쾌하고 힘있는 곡의 구성과 우리에게 익숙한 멜로디로 공연의 집중도를 더욱 높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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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음악, 발라드 제1번 g단조



영화 ‘피아니스트’의 명장면 속 등장하는 음악이다. 독일 장교 앞에서, 목숨이 위태롭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이 곡을 연주한다. 그래서 들을 때 마다 영화 속 장면이 떠오른다. 사실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주인공이 숨어 지낼 때 피아노를 두고 (들킬까 차마 치지는 못하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장면이다.


이런 피아니스트에게 어쩌면 생의 마지막 일지도 모를 연주를 하게 된 주인공의 감정, 그리고 혼신을 다해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마지막으로 그를 바라보는 독일군의 표정까지, 모든 순간이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래서 영화를 떠올리면 이 음악이, 이 음악을 떠올리면 영화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발라드 1번은 나에게 가장 애절하고 극적인 음악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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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을 시작으로 즉흥곡, 영웅 폴로네이즈와 발라드, 그리고 앵콜곡인 바흐와 슈만까지.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피아노를 연주하는듯, 샤를-리샤르 아믈랭이 들려주는 맑고 또렷한 음들이 가슴을 울려왔다.


공연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곡을 두고 수많은 연주자가 연주를 하는데, 이렇게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쇼팽이 이 곡을 만들 때 어떤 기분으로 만들어 낸 것일까.


“음악이 있으면 따분한 순간도 진주처럼 빛나니까”


영화 ‘비긴 어게인’ 중 한 대사이다. 음악은 장벽이 없다. 말 없이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다. 그래서 음악은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것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음악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지만 매번 이해할 수 없고 신기한 것들 투성이다. 음악은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처럼 만들어야 하고, 연주자마다 보이는 음악이 다르니 저마다 그려내는 특징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샤를-리샤르 아믈랭이 ‘보여주는’음악이 ‘이런 것’이라는 걸 알았기에, 그것 만으로도 아주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나정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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