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급노동이 갖는 지위, '일하지 않을 권리' [도서]

자본주의가 만든 유급노동의 지위를 깨버리자
글 입력 2018.11.15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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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에 나는 노동문제를 여성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수업을 듣고 있다. 얼마전 교수님이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신 책 리스트 중 가장 눈에 띄는 제목의 책을 한 권 읽었다.


데이비드 프레인의 '일하지 않을 권리'


책은 사실 여성학적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지 않지만, 관련 수업을 듣고 있는 만큼 자연스럽게 여성학적 견해를 더해가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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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한국에서는 워라밸, 즉 일-생활 균형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잦은 야근,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의 불분리가 수많은 사람들을 피로하게 만들어 소득보다 저녁이 있는 삶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결과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사실상 한국에서의 워라밸은 직장을 구할 때 야근 문화가 보편화된 곳은 아닌지를 우선시하거나 개인적으로 취미생활이나 휴식을 즐기려는 경향성 정도로 존재한다. 사회 구조적인 변화나 유급노동을 아예 벗어나는 선택에 대한 존중 등 현대에 ‘일’이 가지는 위치와 가치에 대한 성찰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 때문에 지친 개인들과 기업 간에 가장 높은 효율성을 찾을 수 있는 타협점을 찾는 과정으로 보이기도 한다.

 

<일하지 않을 권리>에서 저자인 데이비드 프레인은 자본주의 사회가 ‘일’의 지위를 끌어올림으로써 어떻게 노동자들을 착취해왔는지를 자본주의의 역사적 과정과 정시근무에서 벗어난 삶을 택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제시한다. 그가 지적한 바처럼 워라밸에 대한 논의가 나아가고 있는 양상은 일 요구와 스트레스 받지 않는 삶을 적절히 균형잡으며 살아야 한다는 책임을 개개인에게 전가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근로자들은 유급노동을 통해 받은 스트레스를 다음날도 일할 수 있도록 자신의 돈을 들여 해소시킨다. 이 과정에서 소비는 촉진되고 다음날이면 또 다시 돈을 벌기 위해 이제 막 회복한 몸뚱이를 끌고 다시 유급노동 시장에 나가는 것을 반복한다. 시간을 둘러싼 정치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면 이같은 챗바퀴는 계속 반복될 것이라는 저자의 지적은 분명 우리 사회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개개인의 푸념과 같은 차원에서 말하고 듣던 ‘일하지 않을 권리’를 보다 구조적인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을 이 책을 읽고 깨달을 수 있었다. 유급노동이 가지게 된 사회적 지위를 자본주의의 권력이 어떻게 필요에 따라 견고히 해 왔는지를 설명한 지점들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유급노동의 신성화와 그에 뒤따르는 무급노동의 무가치화가 여성들에게 덧입히는 이중굴레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여성들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라는 이중의 틀 안에서 노동자로서, 여성으로서 착취되어 왔다. 때문에 프레인이 지적한 자본주의의 노동자에 대한 억압에 대해 읽을 때마다, 필연적으로 한 겹 이상 더해지는 여성 노동자들의 족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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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저자는 오늘날 노동 시장에서 성과를 측정하기가 쉽지 않아지자 노동자를 ‘성격’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늘어나는 상황을 설명한다. 기업에서 적극성, 협력성 등 노동자에게 긍정적인 성격적 요소들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개인의 개성을 본다는 간사한 표피 안에 감춰진 몰입도 높은 업무 방식을 통한 착취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요구되는 성격적 요소들은 헌신적이고 열정적이고 진취적인 것 등인데,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평가에는 여기에 ‘여성으로서 갖춰야 할 성격적 요소’들 이라는 또 하나의 틀을 추가한다. 예전에 친구가 숏컷으로 머리를 자를지 말지를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나중에 면접을 볼 때는 어차피 머리를 길러야 하기 때문에” 머리를 자르는 것을 포기했다. 흔히 면접을 볼 때 여성 지원자들은 단정한 단발 머리나 긴 머리 등을 기본으로 요구받는데, 이에 벗어나면 기업이 원하는 “고분고분하며 시킨 일은 잘 하고 성격은 너무 세지 않아 여성혐오적 발언도 농담으로 넘길 수 있어 물의를 일으키지 않을 여성”에 부합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생각인 것 같다. 여성 노동자들은 말과 행동으로 평가되는 성격 검열에 더해 외적인 요소에 대해서도 검열되고 통제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로서의 여성이 받는 사회적 검열은 소비 늘리는 사회에서 더욱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소비 늘리는 사회에서 현대인들은 세밀해진 소비 상품들과 서비스들을 필요한 행위로 속이는 자본주의의 은근함에 속거나 이미 일하느라 파김치가 되었기 때문에 쉽게 소비한다. 이런 소비들은 모여서 자본주의 사회를 굴러가게 만들지만, 소비자이자 노동자인 개개인에게는 또 다시 돈을 벌러 일터에 나가게 만드는 굴레를 만든다. 흔히 여성들은 이런 소비 행위에 더욱 쉽게 노출된다. 근래에 많이 논의되고 있는 사회적 ‘코르셋’이 한 몫을 한다. 출근하기 위해 여성들은 화장품, 스타킹 등의 소비재를 지속적으로 구입한다. 여성의 외모에 대한 세밀한 품평들은 더 다양한 소비재를 만들어 내는 가장 쉬운 촉진재의 역할을 한다. 눈꼬리 모양에 대해, 속눈썹 길이에 대해 세밀하게 평가내리는 것은 곧 섀도우, 하이라이터, 아이라이너, 마스카라, 뷰러 등등의 상품들이 팔리게 만든다. 여성에게 씌워진 코르셋은 여성을 보다 많이, 더 자주 소비하게 만들고 이에 드는 비용은 온전히 개인이 떠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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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여성들이 겪는 고통 외에 ‘일하지 않는’ 여성들이 자본주의 하에서 겪는 고통도 상당하다. 저자가 지적한 바처럼, 유급노동에 대한 사회적 지위는 유급노동하지 않는 자에 대한 멸시로 이어진다. 유급노동과 무급노동의 엄격한 이분화는 돈을 벌지 못하는 행위는 ‘일’이 아니라 취미나 쓸모없는 행동으로 취급한다. 가장 대표적인 무급노동 중 하나는 가사노동인데, 이는 주로 여성들이 맡는다.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은 분명 계속 몸을 움직이고 정신을 쏟아야 하는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주부는 집에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사는 존재로 평가받는다. 자본주의가 무급노동을 무가치화시키면서, 주부들도 스스로를 표현할 때 “집에서 논다”고 표현하며, 이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상황은 여성들이 자기 방어를 할 수 없게 만든다. 무급노동하는 여성은 자본주의에서 최고의 가치로 평가받는 돈을 벌지도 못하며,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가치를 찾을 수 없어 더욱 가정에 의존적이 된다. 노동에 종사하더라도 무급노동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일뿐 대단한 일은 아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해내야 하는 것으로 취급된다.

 

다시 성별 구분없이 노동자들을 다루는 책의 내용으로 돌아가서, 일 중심 사회에 대항하는 선택을 한 인물들과의 인터뷰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저자에 따르면 그들은 공통적으로 자본주의가 가져오는 기존 생활양식에 대한 거부로써 일을 줄이거나 유급노동에서 벗어났다. 또한 적게 소비하는 것을 적게 일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도 물질주의적인 삶의 태도를 벗어나는 태도로 보인다. 저자는 이들의 삶이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마냥 무가치하고 생각없는 도피성 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피력한다. 동시에 이들이 갖게 되는 사회적 소외감이나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명예스러움 등에 대해서도 말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점도 감추지 않는다. 이런 흐름은 자연스럽게 일 중심 사회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일은 단순히 개인 차원에서 논의될 것이 아닌 사회적으로 구조의 문제를 짚으며 토론해야 할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일 하지 않을 권리도 존중받는 사회라는 더 열린 민주사회’라는 이상에 대한 제시인 것이다.

 

이런 논의가 활발해지고, 결과적으로 무급노동과 유급노동이 같은 취급을 받는 사회가 올 가능성은 사실 꽤 낮아보인다. 저자가 소개한 기본소득과 같은 정책은 사실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실현되기 힘들다고 느껴진다. 아직까지도 우리는 선진국을 표방하면서도, 그들의 경제적인 우월만을 추구할 뿐이지 그들의 복지에 대한 모방에 대해서는 훗날로 미뤄두는 경향이 강하다. 단기간에 성장해 아직도 사회에 먹고 사는 문제를 최선의 가치로 추구하는 이들이 많아서인지, 취업난에 허덕여 개개인의 경제력 회복을 우선시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자본주의가 가져온 사회적 억압에 맞춰 이리저리 휘둘려왔다는 것이 증명된 만큼, 경제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은 분명해 보인다. 누구나 쉽게 자신이 하는 일(그것이 유급이든 무급이든)에 대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려면, 더 많이 논의하고 더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도록 일이 차지하는 지배적 위치를 해체하는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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