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8.28. 비 온 뒤 맑음
스페인행 비행기 안에서
17시간의 비행 중 첫 30분은 매우 설레고 그 후 2시간 정도는 편안하나 이후부턴 그 시간이 꽤 답답하고 지루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루함을 달래줄 요량으로 들고 온 책 한 권, 여권과 필요한 서류 및 환전한 돈을 담은 소중한 가방을 끌어안고 잠을 청해보았으나 긴장한 탓인지 잠은 안 온다. 옆을 보니 한 아이를 데려오신 아주머니가 영화인지 드라마인지 무언가를 재미있게 보고 계신다. 승객들은 빨리 자라고 비행기 불도 다 꺼졌기에 개인 등을 켜고 우선 가져온 책을 펴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분인 최은영 작가님의 신작 '내게 무해한 사람'. 본래 단편 소설은 즐겨보지 않았던 내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신작이라 평도 별로 없는 이 책을 망설임 없이 스페인 가는 길까지 가져온 것은 오로지 최은영 작가님이 쓴 소설이기 때문이었다.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쇼코의 미소'라는 책 덕분이었다. 분명, 이는 소설이었지만 책을 읽으며 주인공이 느낀 감정 하나하나가 나의 감정같이 느껴졌고 또 그 과정에서 신기하게도 상당한 위로를 받았었다.
'내게 무해한 사람'은 어떤 내용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넘긴 책장에는 새로운 삶을 향해 출발하는 순간 읽기에는 조금 무거운 마음들이 담겨 있었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수록 코를 너무 많이 훌쩍이게 되어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좀 밝은 책이나 들고 올 걸 왜 이런 책을 들고 왔을까. 처음으로 책 한 권을 다 읽지 않아도 잠시 책을 덮을 수 있는 단편 소설의 이점을 느끼며 이번에는 영화나 볼까 하는 마음으로 영화 목록을 살펴본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비행기에는 유난히 슬픈 영화가 많은 것일까 아님 내가 평소와 달리 별거 아닌 것도 슬프게 느끼고 있는 걸까. 어쩌면 나는 마땅히 울 수 있는 이유를 찾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