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건반위 그와 나의 거리

프레디 켐프 피아노 리사이틀, 에튀드 그 이상의 에튀드
글 입력 2018.07.25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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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켐프 피아노 리사이틀
"에튀드 그 이상의 에튀드"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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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반 위 그와 나의 거리가 가장 가까워지는 시간이 왔다. 예술의 전당에 들어서며 그 규모와 웅장함에 매혹되어 공연이 시작하기 전부터 예술의 전당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콘서트 홀 내부로 처음 들어갔을 때의 느낌이란, 저 무대 위에 도도하게 놓여진 피아노와 마주 했을 때의 느낌이란 쉽게 글로 담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자리에 앉아 공연이 시작되자 더 영롱해진 피아노의 자태와 머리를 짧게 자른 켐프의 깔끔한 모습이 눈 앞에 나타났다. 이 리사이틀은 카푸스틴의 통통튀는 리듬으로 시작해 대중적인 쇼팽의 선율로 중간을 장식하고, 마무리는 라흐마니노프의 웅장함으로 끝맺는 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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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푸스틴의 에튀드는 화려하지만 연주회의 시작인지라 절제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연주자의 손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최대한 소리로라도 리듬을 느끼며 곡을 들으려 노력했다. 손이 보이지 않아도 왼손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리듬을 포착할 수 있었다. 정면에서 손 대신 켐프의 발과 눈을 맞출 수 있었는데 댐퍼 페달만 밟는 게 아니라 왼발로 소스테누토 페달까지 활용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넘치는 에너지의 선율이 피아노를 타고 전해졌고 점점 리사이틀에 집중해 들어가는 켐프의 모습에 나도 점점 켐프에게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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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에튀드 10-1번을 연주한 뒤 오랫동안 손을 푸는 모습이 보였다. 빠르면서도 긴 쇼팽의 여정을 시작하려는데 컨디션이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걱정도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켐프는 난이도가 높은 10-2번을 마무리한다. 상대적으로 음표 수가 적은 3번에서 쉬어갔으면 했지만, 그는 상당한 빠르기로 일명 ‘이별의 곡’을 연주했다. 빠른 속도가 유튜브에서 들었던 빠르기와 달라서 기대했던 느낌과는 달라 아쉬웠지만 후반부 절정에서는 그 느낌을 살려 자신의 모든 감정을 실어서 연주했다.

반대로 10-8번에서는 너무 빠른 연주에서는 오히려 벗어나 조급한 느낌은 지우면서 동시에 본인의 감정은 절제하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듣는 입장에서는 매우 차분하고 기분 좋은 쇼팽 에튀드의 절정을 맛볼 수 있었다. 이처럼 예상을 벗어나기도 하면서 켐프는 흔들림 없이 순서대로 12곡의 쇼팽 에튀드를 마무리 했다. 대중적인 곡도 많고, 워낙 쇼팽을 좋아하는 프레디 켐프 덕분에 정말 만족스러운 쇼팽 에튀드 연주를 감상할 수 있었다.

켐프는 쇼팽 에튀드의 수많은 속주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감정이 치우칠 때는 감정을 실을 줄 아는, 어느 부분에 감정을 실어 연주해야 할 줄 아는 연주자이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1위와 호각을 다퉜던 그의 연주는 탄탄한 기본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혼을 불어넣을 수 있는 지점까지 올라서 있다. 그 스타일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곳이 쇼팽의 에튀드를 연주하는 건반 위라고 생각한다. 기교로 만들어내는 놀라움과 예술적 감정의 조화는 유려한 연주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어쩐지 무대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나와 켐프의 거리는 오히려 더 멀어진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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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미션 후 2부, 라흐마니노프의 곡들은 아름다운 선율로 채워졌던 1부의 곡들보다는 훨씬 웅장하고 거대했다. 라흐마니노프의 손은 일반 사람들에 비해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여 더 넓은 음역대를 활용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게다가 라흐마니노프 에튀드는 한 곡 한 곡의 진행이라고 느껴지기 보다는 9개의 에튀드가 하나처럼 이뤄진 교향곡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긴장을 놓치지 않으며 듣다가 프리뷰에서도 가장 기대를 했던 9번 에튀드가 시작 되었을 때, 나는 이 리사이틀의 끝이 왔다는 걸 직감했다. 다른 에튀드들은 9번을 위해 연주된 것처럼 마지막 에튀드는 나에게 엄청난 전율을 주었다. 웅장한 소리의 피날레 '따다다다당', 이처럼 멋진 마무리를 9번 에튀드가 아니면 어떤 곡이 할 수 있었을까? 끝나는 시간이 오자 2시간동안 오로지 피아노 하나, 연주자 한 명에 매료되어 있는 느낌에서 벗어나게 되어 너무나 아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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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이 끝난 후의 피아노
 

아쉬움도 잠시, 2부가 끝이 나고 꽤 긴 시간의 박수와 환호성이 이어졌다. 다시 무대로 올라온 켐프는 아직 서투른 한국말로 “쇼팽의 왈츠”라고 말한다. 아직 이 시간이 끝나지 않았구나, 나는 다행히도 에튀드의 감동을 머금고 몇 분간 더 앉아있을 수 있었다. 켐프가 연주한 쇼팽의 왈츠는 리듬이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뒤이어 연주된 폴로네즈도 에튀드와는 다른 매력의 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베토벤 비창 2악장, 프리뷰를 쓰면서 들었던 곡인지라 현장에서 듣게 되어 정말 감격스러웠다.

감격을 뒤로한 채 나는 연주회 감상의 느낌을 객석을 떠나지 않고 천천히 적어보았다. 이곳은 에튀드의 역사를 이어가는 현장이다. 세 거장의 역사를 프레디 켐프라는 역사가가 쓰고 있었다. 그의 손에서 살아난 카푸스틴, 쇼팽,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는 마치 역사책에 쓰여진 것들처럼 계속해서 전승될 것이다. 그 역사서를 보고 나는 한 걸음 더 켐프에게 가까워졌지만, 그는 한 걸음 더 멀어질 것을 확신한다. 프로그램 북에 적혀있는 것처럼

"에튀드는 발전할 것이며, 프레디 켐프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에튀드, 그 이상의 에튀드를 나는 보았고 들었다. 클래식이 줄 수 있는 감명과 교양 속에서 나는 2시간동안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정말 놀랍고 아름다운 경험을 했다. 리사이틀을 듣고 집에 가는 길에는 오토튠으로 가득 채워진 노래는 접어두고 재생목록을 카푸스틴, 쇼팽, 라흐마니노프의 에튀드로 채웠다. 연주회를 보고 온 그날 만이라도 세 거장의 에튀드를 마음 속에 남기고싶은 마음이었다.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 언젠가 켐프와 다시 만날 날, 그 감정을 다시 꺼내어보고싶다.





Review 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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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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