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angle] Episode 1.5. 해방, 그 이후

숨 막혀 죽더라도 꽃과 꽃 향기가 입 안 가득해서 숨 막히고 싶어
글 입력 2018.07.19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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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angle}
Episode 1.5. 해방, 그 이후
 
     
[4월 16일]
 
To Do List
 
멈춰 보기
나를 위로하기
나를 그만 싫어하기
힘들 땐 펑펑 울기
죄책감 그만 느끼기
심호흡하기
나를 그만 묶어 놓기
절벽 끝에 가지 않기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는 불행을 상상하지 않기
나를 위로하기
안아 주기
울 것 같으면 그냥 울기
우는 나에게 이유를 묻지 않기
내일을 좀 더 기대해 보기
잘하고 있다고 믿어보기
심호흡하기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말해 주기
나를 믿어보기
나를 안아 주기 위해 힘내보기
조급해 하지 않기
숨쉬기
짐을 내려놓아 보기
나를 사랑해 보기
안아주기
입에 가득 찬 꽃들을 상상해 보기
혀에 닿는 보드라운 꽃잎 느껴 보기
현실에서 그것의 느낌을 잊지 않기
눈 감고 멍 때리기
내일의 시간을 응원하기
자기 전에는 잠시 모든 걸 잊기
천천히 숨쉬기
편하게 잠들기
Good Night
 
   
[5월 6일]
 

숨 막혀 죽더라도 꽃과 꽃 향기가
입 안 가득해서 숨 막히고 싶어
잘근잘근 꽃잎의 씁쓸함과
기분 좋은 꽃 내음 숨 쉴 틈 없이 느끼면서

- 혼잣말
 
 
 
[5월 8일]
 
별다른 생각 없이 글로 적은 상상을 그리고 싶어졌다.
느낌이 너무 좋았다. 입 안 가득 꽃이 가득 차버리는 숨 막힘. 이유는 나도 아직 모르겠다. 

 
[5월 9일]
 
글들을 다시 살펴보려고 첫 번째 에피소드를 다시 읽었다. 그리고 이유를 알았다. 해방을 꿈꾸며 그렸던 그림 속에서 꿈꾸던 개화가 드디어 내게 일어났나 보다. 가득가득했으면 좋겠다. 할 수 있는 한 이 순간이 많이 길어졌으면 좋겠다. 야금야금 코로 음미하는 향기는 상상만으로도 좋았다. 야금야금.
 
 ​
[5월 13일]

1.jpg
 

다 그려 버렸다. 그러니까, 생각할 틈조차 없이.
 
그냥 답답함에 잠겨 버리니 손 뻗어 간 게 종이와 팬이었고, 그려 버린 게 이 그림이었다. 한 시간 걸렸나, 이렇게 빨리 그려 버린 것도 처음이라 완성하고 나니 얼떨떨했다. '내가 정말 답답했었구나'라는 막연한 기억뿐. 그만큼 손이 바르게 앞서갔고 이성이 감성을 결국 쫓아오지 못했다. 나의 감정을. 답답함을 억지로라도 토해 버려서라도 없애고 싶던 감정 말이다. 열심히 헛구역질을 했다. 내장이 뒤틀리는 기분을 머리로 느꼈다.
 
내가 해방을 그렸던 그 기나긴 시간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비교도 안 되게 짧은 시간 동안 완성된 해방. 망설임이 전혀 없었다. 생각 없이 펜이 가는 것 같으면서도 망칠 거라는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 거칠면 거친 대로, 어긋나면 어긋나는 대로, 그 그대로 이 그림이 완성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점이 곧 완성의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그림은 정교한 공예를 위한 것이 아니니까. 감정을 토해내는 해방을 바라던 소원의 발현이다. 불완전한 사람이 토해내는 불완전한 소원이기에 불완전함 그 자체로 완성인 것이다. 어쩌면 나의 모든 그림이 그럴 것이다.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리고 나는 정신없이 펜을 마무리하고 나서 힘든 감정이 많이 덜어진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머리가 굳은 기분이어도 이 그림의 이전 보다는 들고 있는 무게가 많이 가라앉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그림을 한번 보고, 밤이 늦어 집으로 가기로 한다. 호흡이 가쁜걸 보니 여전히 집중하면 숨을 안 쉬는 습관을 달고 있나 보다. 어쩌면 내가 그래서 집중을 오래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근데 심각하게 고쳐야 하는 습관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대로 있어야 할 것만 같다. 어쩌면 나의 속도를 조절해 주는 습관인 것 같아서.
    
[5월 14일]
 
급하게 하루를 보내고 마무리하는 밤중에, 아직 연필 선을 지우지 않은 게 생각나서 책상 위를 정리하다 말고 스케치북과 지우개를 꺼냈다.
 
...

한번 지우개로 선을 긋다가 멈췄다. 뭔가 거칠게, 잔영처럼 남아있는 연필 선을 지우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이 그림의 존재와 그 때의 감정을 말해주는 그림자 같아서.
잠시 생각하다 지우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내 이름을 적는다. 이 자체로 완성이라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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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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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더 많은 해방을 그려 낼지, 이 해방은 얼마나 나의 곁에 머물지 조금 호기심이 생긴다.
하지만 역시 거기까지만 하기로 한다. 나는 또 이 질문을 언젠가 꺼낼 것이기에.
나는 이렇게 읊으면서도 앞으로의 내가 이 글을 어떻게 읽게 될지 상상해버린다. 습관이란 게 정말 무서운 거긴 한가 보다. 물론 나는 아직 나의 이런 습관이 좋지만.
    
   

 
*
 
next.
 
너희 셋 다 똑같아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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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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