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보이는 전시와 연극의 나라 [문화전반]

나의 최초 예술탐방기
글 입력 2018.06.19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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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이는 전시의 나라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시험이 끝난 후 무엇을 할지 상상하며 힘든 수험기간을 견딘다. 나의 경우는 수능이 끝나면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많은 문화생활을 하며 19년간 살았으나 잘 알지 못하는 서울 곳곳을 누비고 싶었다. 그래서 수능이 끝난 다음 날, 매일 아침 일찍 등교하던 학교 대신 당당하게 미술관으로 향했다. 내가 고른 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이었는데, 단순히 수험표를 가져오면 무료입장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가봤던 단체관람이외에 처음 내발로 미술관에 가 전시를 보게 된 것이다.

2015년 수능이 끝난 가을에는 안규철 작가의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라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전시, 특히 현대미술 전시를 처음 접해본 나로선 추상적인 제목과 난해하게 다가오는 현대미술의 조합이 어려워 ‘전시는 나랑 안 맞는구나‘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전시가 끝난 후 일상생활을 하면서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던 전시물들이 자꾸 떠올랐다. 절대 만날 수 없는 레인들 안에서 수영하는 금붕어들은 같은 길을 가고 있으면서도 소외감을 느끼는 현대인들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 작품 같은 경우는 사랑이 희미해져서 더이상 사랑이 보이지 않는 나라로 전시의 주제가 해석될 수 있다. 엄마, 어린 시절 등 관객들이 그리워하는 것들이 적힌 포스트잇으로 가득 채워진 아주 커다란 <기억의 벽>은 사람들의 진심 모여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옆을 스쳐가는 평범한 관객도 나와 같은 전시를 보며 비슷한 것들을 그리워하는 보이지는 않지만 커다란 공동체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관련 없어 보이던 모든 전시물들이 보이지 않는 사랑이라는 주제 속에서 천천히 하나가 되어 내게 다가오며 전시 이후에 큰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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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철 <아홉마리 금붕어>


대학생이 된 후로 많은 전시회를 보러 다녔지만, 처음 본 전시는 여전히 좋은 전시로 남아있다. 포스트잇 쓰기 같이 작지만 생각을 요하는 질문들에 관객이 답변함으로써 관객들이 전시를 완성해나가고, 전시 공간 자체가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공간이 하나의 또 다른 전시물로 느껴졌다. 또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감정인 ‘사랑‘을 예술적 감각으로 재구성해 큰 울림을 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에게 전시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을 깨주고, 다른 작품들을 접할수록 다시 보고 느껴보고 싶은 나의 최초의 전시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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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벽>



안보이는 연극의 나라


그렇다면 나의 최초의 연극은 언제였을까. 연극은 많은 문화장르 중 멀게 느껴지는 편이었다. 우선 공연의 규모든 자본의 규모든 뮤지컬이나 영화보다 작아 홍보를 크게 하기가 쉽지 않은 특성 때문에 인지도가 낮았다. 또 영화나 책은 시공간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었으나, 소규모연극이라면 일부러 연극 시간에 맞춰 혜화까지 가서 숨어있는 극장을 찾아가야한다는게 막 성인이 된 나에게 어렵게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덕후가 올려주는 연극 평들을 종종 확인해보고, 검색해보며 연극 역시 나의 대학교 1학년 버킷리스트로 올랐다.

많은 연극들을 본 것은 아니지만, 연극은 한정된 공간과 예산의 제약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마다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 대중적인 극과 실험적인 극, 오락용 극과 주제의식이 뚜렷한 극처럼 극의 종류가 다르면 배우들의 발성도 다르다. 예를 들어 작년에 관람한 <쉬어 매드니스>는 관객들이 극에 참여해 배우들과 소통하며 범인을 찾는 극으로, 시종일관 배우들의 농담조인 하이톤 목소리가 극장을 가득 채운다. 반면 내가 처음으로 발품을 팔아서 본 연극 극단 신세계의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가에게 묻는다>는 세월호에 대한 극으로, 교육방송으로 느껴질 만큼 세월호에 대한 사실들에 대해 배우들이 나열한다. 허나 그들의 목소리는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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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본 연극은 분류하자면 실험극에 해당하고, 실험극 중에서도 아주 적은 자본이 들어간 소규모극이었다. 연극이 어렵게 느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자꾸 발걸음이 혜화로 향하게 되는 건 배우들의 목소리와 표정들이 마음속에 오래 남아있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 있었다는 점만 빼고는 자신들의 삶의 가난함을 숨김없이 토로하며 좋은 국가를 만들어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 보통의 소시민과 다를 게 없었다.

연극이 끝난 후 극장 옆 카페에서 마주쳤을 때 나에게 약간의 놀라움만 주고 스쳐지나갈 수 있게 한 무명배우임에도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이 극에서 목청 높여가며 보여준 울분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남아 마음 한 켠을 불편하게 하고 연극을 회상해보게 한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마음에 남는 배우의 목소리와 표정이 있으면 좋겠다. 바쁜 삶에 쉼표, 물음표 혹은 느낌표가 될 수 있을 테니까.
 

[김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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