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데미안》 흑과 백의 세계에 끼어든 무지개 [도서]

글 입력 2018.04.1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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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의 갈림길에 서 있는 인간에게는 으레 흰색과 검은색 물감이 있는 팔레트가 주어진다. 선이 악에 물들면 거뭇해지고 악이 선을 받아들이면 희어진다. 그러나 이토록 단편적인 흑백론이 인간의 무궁무진한 모습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가? 붉은색의 인간도 있고, 노란색의 인간도 있다. 그 중간 즈음의 다홍색 인간도, 빨강에 더 가까운 선홍색 인간도 존재한다. 매일 지는 노을빛도 그 색을 정의하기 어려운데 날마다 새로움을 거듭하는 인간은 어떠하겠는가. 하지만 인간은 그들의 무지갯빛 가능성을 망각한 채 어느새 다시 흑과 백의 구분에 얽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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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클레어 역시 그중 하나였다. 그는 평화롭고 안정적인 ‘밝은 세계’에 몸을 담은 채 무질서한 ‘어둠의 세계’를 탐닉한다. 아벨인 체하지만 카인에게 매료된다. 금기된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애써 억누르던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나고 카인의 어두운 세계 그 실체와 직면하게 된다. 그의 우주를 뒤흔든 ‘카인은 잘못하지 않았다’는 가정과 함께.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성장 이야기이다. 보통 성장 이야기라고 하면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체득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기 마련인데, 이 책은 독특하게 그 구분을 허무는 과정을 기술한다. 흑과 백으로 나뉜 어린 소년의 세계에 다른 색깔들이 포함됨으로써 이분법이 무너지고 세계가 확장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것은 다양한 인물들과의 만남으로 인해 이뤄진다.
 


다른 세계와 조우하다


성장의 서사는 싱클레어와 그 주변 인물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프란츠 크로머, 막스 데미안, 알폰스 베크, 베아트리체, 피스토리우스, 크나우어, 에바 부인 등 인물들의 세계와 조우하며 싱클레어는 차츰 자신의 세계를 넓힌다.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방황하던 성장 초기의 싱클레어는 기존의 세계에 편입하고자 한다. 나고 자란 밝은 세계에서 벗어나 크로머의 어두운 세계로 편입하고자 하며, 그에 실패하자 다시 밝은 세계를 그리워하며 그로 회귀한다. 이분된 싱클레어의 세계는 데미안으로 인해 그 경계가 무너진다.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굳게 지키고 있던 기존의 체계를 뒤엎으며 어두운 세계라는 이름으로 감춰진 수많은 것을 폭로하기 시작한다. 학생임에도 술과 향락을 즐기는 알폰스 베크를 만났을 때는, 예전이었다면 어둠의 세계로 치부하고 힐난했을 그의 생활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꿈꾸던 이상이 현현된 여성 베아트리체를 사랑하고 괴짜 음악가 피스토리우스와 오랜 대화를 나누며 풍부한 감정과 경험을 축적한다. 자신을 두려워하고 동경하는 크나우어를 만나고, 마지막으로 이상 그 자체인 에바 부인을 마주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렇게 여러 인물을 거치며 성장하는 서사의 전개는 다양한 내러티브를 이질감 없이 조화시키며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거대한 성장의 과정을 간결하고 명료하게 그려낸다.
 


스스로 표지를 획득하다


그래서, 결국 싱클레어는 누구를 만난 것이며 무엇이 되었나? 그 언젠가 본 사랑하는 여성의 모습이기도, 데미안의 형상이기도, 어머니의 얼굴이기도 한 싱클레어의 이상은 마지막에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으로 현현한다. 이에 대해선 그녀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설부터 데미안부터가 실존하지 않는 환영이라는 설, 싱클레어가 곧 데미안이라는 해석까지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는데, 필자는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현현했든 싱클레어가 만난 것과 된 것이 일치하며 그것은 모두 싱클레어 자신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그는 성장의 과정 끝에 자기 자신을 맞닥뜨리고 자신의 이상을 완성시켰다. 여러 색이 난무하던 혼란 끝에 마침내 자신의 하늘에 무지개를 띄운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 창세기 4:14~15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싱클레어의 모습은 카인을 닮아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크나우어는 싱클레어의 아우라에 호기심을 가지고 그를 경외한다. 마치 싱클레어가 데미안에게 그랬듯이 말이다. 카인 그리고 데미안과 같이 싱클레어 역시 자신의 표지를 획득하고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세계를 구축해낸다. 더 이상 밝고 어두운 세계에 구분하는 잣대는 그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자아는 타인의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완성된다. 싱클레어는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로 합일시키는 것이 아닌 다양한 타자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채택하여 온전히 자신을 완성시켰다. 알에서 부화하려고 노력한 끝에 그는 그토록 소망하던 ‘아브락사스’가 되어 자유로이 날갯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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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를 알아차리기 위해서


사실, 싱클레어의 사고 과정은 다소 현학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사춘기의 격렬한 생각과 감정의 변화가 여실히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감상 또한 모든 사고를 이분하여 유형화하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자연의 생리와 인간을 스치는 모든 것 하나하나에 골몰하고 고뇌함은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이다. <데미안>은 그 과정을 어린아이의 것으로 방치하지 않고 섬세한 빛을 포착하여 인간이 어느 한 시기에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생각의 무질서를 아름답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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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색깔을 갖는다. 그러나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색안경을 벗지 못한다면 아무리 화려한 색깔이라도 한낱 무채색뿐이다. 이 대작은 더욱 진실한 눈으로 그것을 목도할 수 있도록 안경을 벗고 깊게 통찰해야 함을 시사하며 현대사회에도 요구되는 고차원의 가치를 주창한다. 우리는 그에 그치지 않고 저마다의 무지개를 띄우기 위해 팔레트에 더욱 다양한 색깔의 물감을 짜 놓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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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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