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당신은 누구신가요?

나의 이야기이자, 당신의 이야기인
글 입력 2018.02.27 22:09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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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질문 하나 먼저 하겠습니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너무 어렵다고요? 그렇다면 이 원론적인 질문을 조금 더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당신이 잘한다 할 수 있는 것 5가지만 이야기해주세요.’
‘당신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요?’


이 질문들도 어렵다고요? 걱정 마세요. 이상한 게 아니랍니다. 저도 그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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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년 전 일이네요. 유망한 PD가 되겠다는 꿈 하나로 대학에 온 저는 열의에 가득 차있었답니다. 밤새 촬영하고 편집하느라 꾀죄죄해진 선배들의 모습이 제 눈엔 그리 멋져 보일 수 없었습니다. 무거운 장비를 들고 그들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일도 그리 재밌을 수 없었죠.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동안 좁디좁은 책상 속에서 꿈꿔오기만 했던 일들을 몸소 경험하고 있으니 마치 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대2병 혹은 대3병이라고도 하죠. 전공에 대한 확신은 점차 얕아지고 의구심‧회의감‧불확실함과 같은 감정들이 섞여 미래에 대한 불안함만이 점점 짙어지는 시기말예요. 이 시대의 흔한 청년들처럼 저도 피해갈 수만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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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 늘어지게 누워 TV보며 하하 호호 웃는 게 삶의 낙이였으며 하루일과 끝에 맥주에 곁들여 보는 영화 한 편이 인생의 비타민이었는데,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때의 기분은 정말 슬프더군요. 자꾸 뭐가 거슬리고, 분석하게 되고, 나는 왜 저렇게 못할까라는 생각에 참담해졌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일수록 능력에 대한 의구심은 당사자를 더 쉽게 자괴감에 빠뜨리는 것 같아요.

불안함은 낮밤을 가리지 않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강의를 듣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갑작스레 찾아와 저를 흔들어 놓았죠. 가장 힘들었던 건 잠자리에 들 때였어요. 잠을 자려 눈을 감으면 생각은 끝도 없이 깊어졌어요. ‘나는 무얼 해 먹고 살지’, ‘이 길이 나의 길이 맞긴 한 걸까’와 같은 질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종종 ‘나는 왜 사는 걸까’와 같은 원론적 질문에 이르기 십상이었습니다.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공상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 말 없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아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오규원,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생각이


별다른 수가 없었던 그 시기의 저는 나름의 해결책으로 경영학을 복수전공으로 선택했죠. ‘어디든 취업이라도 하자’라는 어린 생각으로 선택한, 말 그대로 궁여지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불안함이 해결되기는커녕 더 깊어져만 갔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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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판단한 저는 휴학을 하게 됩니다. 휴학을 하는 동안 스펙을 쌓는 것도, 여행을 다니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저의 가장 큰 목표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더 나아가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나의 판단으로 걸어온 길인데 마치 방향을 잃고 망망대해에 버려진 배가 된 기분이었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확신을 얻고자 하는 일들에 몸소 부딪혀보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를 벗어난 만큼 더 직접적인 현장에 뛰어들고 싶었습니다. 프로들과 함께 현장에서 촬영도 해보고, <시네마 천국>처럼 영사실에서 영화도 틀어보고, <아트인사이트>라는 플랫폼에 글도 써보고, 여기저기 혼자 여행도 다녀봤죠. 가능한 잡을 수 있는 기회는 다 잡으려 했고 없는 기회는 발품을 팔아서라도 마련하려 했습니다.

이렇게 해보니 어느 정도의 결론은 나오더군요. 내가 이 일을 업으로 삼아야할지 말아야할지 이런 것들이요. 아무래도 직업은 현실과 직결되는 일이다 보니 내가 좋아하고 말고의 문제보다 더 복잡한 문제들을 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대학생이고, 추후에 휴학이라는 선택을 하게 된다면 좋아하는 것들을 원 없이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어떤 결과를 얻게 될지는 미지수겠지만 그 결과에 후회 없을 만큼 진하게 말예요.





휴학을 끝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저는 저의 길을 아주 똑바르고 명확하게 걸어가고 있습니다......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여전히 저는 흔들리고 불안하며 미래에 대한 걱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해도 ‘나에 대한 확신’ 여전히 불투명하니까요.

저는 요즘 그저 현재에 집중하며 단순히 살려고 노력한답니다. 행복해지려고요. 제가 그리 긴 인생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생각이 복잡해질수록 결국 그 생각의 끝은 불안과 우울뿐이더군요. ‘우리들의 미래’ ‘우리라는 존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도 복잡하기 그지없어, 그 속에서 행복해지려면 오히려 반대로 단순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네요.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갈까.
이제 우리 무엇을 할까.
어디든 어디든 무엇이든 무엇이든.
청춘은 다 고아지.
도착하지 않은 바람처럼 떠돌아다니지.
나는 발 없는 새.
불꽃같은 삶은 내게 어울리지 않아.

/이제니, 발 없는 새



[김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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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꼬마천사
    • 젊은이의 고뇌가 그대로 담겨있네요 응원하겠습니다
      응원과 더불어 제가 드리는 조언은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자나요 문제는 실패 한 후에
      자신있게 훌훌 털고 일어나는 용기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젊다는 것은 도전할수 있다는 것 ~~ 당신의 젊음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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